[Opinion] 외로움아 굳나잇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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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잠을 잘 잘 수 있어요?”
한 아이가 묻는다. 빨리 잠들기 위한 나의 노하우를 알고 싶단다. 내가 이런 질문을 받을 만큼 잘 자는 사람이었나. 십대 초반의 아이도 잠에 대해 고민하는구나. 생전 처음 받아보는 질문에 당황스럽다.
“숫자를 세어보면 어때? 하나 둘 하다 보면 잘 수 있겠지?”
“아뇨, 잠이 더 깨요. 정확하게 카운트하려고 깨요.”
“음악을 들어보면 어때? 조용한 음악을 듣다 보면 나른해질걸?”
“아뇨, 이미 해봤어요. 듣다가 더 안 자요.”
“책을 읽어볼까? 몇 장 읽으면 피곤해질 거야.”
“아뇨, 책 읽기 시작하면 집중해서 안 돼요. 다음 내용이 궁금하잖아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란다. 답을 원하는 이 아이를 어떻게 만족시키지. 내가 무슨 죄를 졌길래 아침부터 이런 시련을. 아이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미 해봤구나. 잠들 수 없어 힘들겠다. 그럼 잠들기 전에 보내는 하루는 어때?”
공부, 친구, 가족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이 흡사 래퍼 같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의 일상이 한 바퀴 그려진다. 가사를 감상하니 아이가 잠들 수 없는 이유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여러 모습의 짜증이 밤을 삼키고 있구나. 잠이 문제가 아니구나.
“잠깐, 짜증 난다는 게 무슨 뜻이야? 답답하다는 건지, 슬프다는 건지, 화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있게 말해줘.” 갸우뚱하는 아이와 함께 짜증 네이밍 작업에 돌입한다. 짜증이란 감정의 민낯을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아하, 이러이러해서 아쉬웠구나. 오호, 저러저러해서 억울했구나. 요약하면, 네가 지금 외롭구나.”
여러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에 대해 나눈다. 초등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는 예리함과 성숙함에 놀라면서. 외로움은 많은 사람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지금의 외로움은 외로움과 동행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주고 받는다.
“사실 나도 외로워. 익숙해질 법도 한데 때론 몰려와. 그럼 괜찮은 척하면서 이것저것 하면서 외로움이랑 놀아.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여러 미술품을 소장한 컬렉터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외로움을 통해 그림에 눈을 뜨고 소통하고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더라. 분명 너도 너만의 방법을 찾게 될 거야! 외로움과 친구 하는 법을 찾아가는 좋은 기회일 수 있어 지금이.”
자세히 보면 외로움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수시로 방문한다.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느낄 겨를이 없거나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외로움은 잠이든 짜증이든 각종 탈을 쓰고 방문한다. 각종 소비와 만남을 해봐도 외로움은 어딘가에 숨어있다.
이 녀석의 존재감이 커지는 시기와 시간대를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를 연구해 보면 재미가 쏠쏠하다. 패턴을 알면 녀석을 맞이할 수 있는 것 같다. 네 이놈 또 왔냐 하면서. 녀석을 일찍 경험할수록 도움이 된다.
통화를 마칠 무렵 아이가 하트를 보낸다. 웃는 모습이 천사 같다. 외로움의 티끌조차 묻지 않은 천사.
우리 주위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천사가 얼마나 많을까?
공감 어린 자장가가 시급하다.
[김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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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에델바이스
- 2024.01.22 11: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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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저희 집에도 매우매우 시급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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