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의 정상성은 사랑밖에 없다 - 뮤지컬 렌트

정:상적 (명사) 1. 상태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것.
글 입력 2024.01.11 13:4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정:상적 (명사) 1. 상태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것.


정상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의 삶에서 얼마나 폭력적일지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한다. 비정상적이라는 말은 즉 틀렸다는 뜻이 되고, 틀렸다는 것은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고통받게 된다. 나도 한때는 평범함을 꿈꿨던 적이 있다. 평범하지 못한 스스로가 지극히도 비정상적인 존재 같았고, 그렇기에 평범한 타인을 동경했다.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이고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살았기에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정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학생 때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의 여자 선생님이 있었다. 담당하는 과목은 영어였고, 짧은 숏컷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허스키한 보이스와 냉소적이면서도 털털한 성격을 갖고 있던 선생님이다. 으레 그런 스타일의 선생님들이 그렇듯 아이들은 아닌 척하며 그 선생님의 수업 시간을 기다렸고, 수업은 지루함보다는 즐거움이 감도는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날 수업에 지루해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잠을 깨우겠다는 명목하에서 어릴 적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 어떤 여자애가 나를 학교 뒤의 주차장으로 부른 적이 있어. 그리고 되게 쭈뼛거리더니 나한테 편지를 주는 거야. 무슨 편지인가 해서 읽어봤더니 러브레터더라고. 읽다가 그 자리에서 편지를 찢어버리고 바닥에 버렸어. 그 애는 울더라.


누군가 '너무해'라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자, 그 선생님은 두 눈을 크게 뜨고 황당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너무하긴 뭐가 너무한데? 걔는 정상이 아닌데 당연한 거 아냐? 그다음에 내가 그 애, 동성애자라고 소문냈어. 나중에 그 선생님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그 선생님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편지지를 고르고 편지에 자신의 마음을 꾹꾹 담아 쓰며 용기 내 수줍게 내밀었던 그 여자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찢겨 버려진 편지지들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이 자신을 소문냈던 순간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그런데도 선생님에게 사랑이란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의 범주 내에서 벗어나면 기꺼이 당사자 앞에서 마음을 짓밟아도 되는, 그런 것일까. 그것이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정상인 것일까.

 

 

[2023뮤지컬렌트] La Vie Boheme.jpg

 

 

뮤지컬 렌트에는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이 나오지만, 대한민국의 문화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드랙퀸. 모두 아직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렌트 내에서 처음 보는 두 남녀는 섹슈얼한 은유를 내뱉으며 유혹하고 유혹당한다. 집세조차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기는 상황에서 재개발하겠다는 집주인에게 재개발 반대는 물론이고 집세조차 내지 않겠다고 버티기도 한다. 에이즈에 걸린 두 남성은 서로를 그 누구보다도 소중히 아낀다. 양성애자 여성의 전남친과 현여친이 함께 탱고를 추기도 한다. 꿈을 좇겠다며 취직도 제대로 하지 않고 버티고,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재개발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사이버 랜드'와 '음매'를 외치고 젖을 빨아 먹는 시늉을 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정상적인 모습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대상을 사랑한다. 자신의 꿈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한다. 길을 잃은 관광객들이 비록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드랙퀸 엔젤은 친절함을 잃지 않고 길을 안내해 줬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싸우는 레즈비언 커플 조앤과 모린은 결국 사랑을 이기지 못해 다시 만난다. 돈이 없어 꿈을 버리고 현실을 택했던 베니와 로저는 결국 다시 현실을 버리고 꿈을 선택한다. 에이즈에 걸린 콜린스와 엔젤은 에이즈 환자의 모임에 나가며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환자들과 함께 서로를 보듬는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사실 뮤지컬 자체도 정상적인 플롯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다.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띠고 있지 않는다. 메인 커플의 이야기를 주로 하되 그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다른 서사들을 채워 넣지 않고, 다양한 서사들이 뒤섞여있다. 뮤지컬이라는 예술 특성상 전달력이 굉장히 중요함에도 이따금 관객들은 '이 캐릭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거지?' 의문스러울 때도 있다. 확고한 주제를 메인으로 가져가지 않으며 동성애, 꿈, 사랑, 에이즈, 재개발, 마약 등 수많은 주제가 극에서 던져지고, 그 안에서 캐릭터들은 당연한 일상을 보낸다. 관객들에게 참으로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은 흥행에 성공하여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횟수의 공연을 올리며 그 존재를 증명해 냈다. 

 

 

[2023뮤지컬렌트] Rent_로저(장지후), 마크(정원영) 외.jpg


 

선생님의 앞에서 눈물을 흘렸을 소녀를 떠올려본다. 선생님의 시선에서는 그녀가 그 누구보다 정상이 아니겠지만, 내 눈에는 그 누구보다도 정상이었다. 자신의 사랑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 사랑의 본질을 그 누구보다도 충실히 따른 그 여자아이를 떠올리며, 렌트 속 캐릭터들을 떠올리며. 역시 사랑의 정상성은 사랑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김푸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