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22. 연예인 걱정은 정말 시간 낭비일까?

글 입력 2024.01.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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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장래희망을 ‘가수’라고 적은 적이 있었다. 당시 우물 안에 살던 초등학생이 동경할 만한 직업은 연예인밖에 없었다. 몇 년 뒤 새로운 꿈을 발견하고 가수의 꿈은 금세 접었지만, 아직도 나는 종종 유명한 연예인을 동경한다.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하고 특별한 재주도 없는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빼어난 외모와 재능으로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탄탄한 경력을 쌓아가는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꼭 연예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연예인이,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돌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와 비슷하거나 더 어린 나이에 원하는 일을 찾아 전력으로 노력하는 그들이, 노력을 뒷받침해 줄 외모와 재능을 가진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팬들에게 사랑받는 그들이 나이를 먹어가도 하루하루가 막막하기만 한 나와 비교하면 선택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방송에서 연예인이 힘듦을 토로하면 꼭 이런 댓글이 달린다. ‘연예인 걱정은 시간 낭비’ 금언처럼 내려오는 이 말의 맥락은 단순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엄청난 부를 누리는 연예인이 아무리 힘들어도 평범한 일반인보다 힘들겠냐는 뜻이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예인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사고를 목격하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이 쌓이면서 나는 오래전 묻어둔 그 질문을 다시 꺼낼 수밖에 없었다. 연예인 걱정은 정말 시간 낭비일까?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명과 암



2017년 12월, 샤이니 종현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으로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졌다. 별다른 구설수도 없고, 데뷔부터 주목받아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저렇게 재능이 있고 인기가 많으면 당연히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줄 알았다. 곧 발표된 그의 유서는 내가 얼마나 생각이 짧았는지를 알려줬다.

 

추모하듯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생전에 그가 나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데뷔 무대를 지켜봤던 초등학생 때의 순간이, ‘링딩동’에 중독되어 매일 같은 가사를 흥얼거렸던 중학생 때의 순간이,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잠에 들었던 고등학생 때의 순간이, 그의 솔로곡 ‘좋아’의 뮤직비디오 해석 영상을 보며 천재성에 감탄했던 대학생 때의 순간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단 한 순간도 그가 불행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빛났으니 당연하게 행복할 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연예인들의 정신 건강이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오랜 케이팝 팬이기도 하고,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아이돌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중학생 때 그저 좋아서 외우고 다녔던 지드래곤의 ‘소년이여’의 가사가 문득 생각났다.

 

‘사람들은 말해 내가 부러워 가진 게 너무 많아 / 연예인들은 다 편하게만 살아 / 딱 하루만 그 입장이 돼 봐라 /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걸 알아’

 

단 하루도 그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한 나는 보이는 대로 믿었다. 몰랐던 이면을 발견하고 나서는 연예인 걱정은 시간 낭비라는 말에 더욱 강하게 반발하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소비하다가 충격적인 뉴스 소식으로 그 힘듦을 뒤늦게 깨닫는 것보다 차라리 시간 내어 그들을 걱정하고 싶다고.

 

그 뒤로도 공황장애로 활동을 중단하는 이도 있었고, 종현과 같은 길을 간 이도 있었다. 물론 일부 사례로 연예인을 그 자체로 ‘힘든 직업’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모든 직업의 종사자가 저마다의 고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예인이 지녀야 하는 태생적인 고통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내가 ‘태생적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신 건강에 관심을 가질수록 연예인은 오히려 힘들지 않은 게 이상한 직업이라는 결론이 섰기 때문이다. 무너진 정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스스로 노력하면서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는 태도와 불규칙한 생활이 얼마나 해로운지 실감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연예인에겐 일상이다.

 

최근 심각한 우울감에 휩싸인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그날 있었던 특이 사항이라고는 내가 잠을 두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수면 부족이 감정을 어디까지 끌어내릴 수 있는지 실감한 뒤 ‘데뷔하고 나서 세 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다’라는 누군가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직업 특성상 들쭉날쭉한 수면 시간과 밤낮이 바뀐 생활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것만으로 정상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크게 혼난 어느 날, 집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 한 명의 싫은 소리에도 이렇게 움츠러드는데 대체 연예인들은 어떻게 그 수많은 대중의 평가를 견디는 걸까. 물론 주목받는 직업을 선택했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그 몫에 악의적인 비방이 포함된 건 아니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사소한 잘못 하나에 신나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범죄자까지 감당할 필요는 없다. 연예인 걱정이 시간 낭비라면, 연예인을 비난하는 건 시간 낭비가 아닌가?

 

 

 

걱정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



연예인의 푸념이 듣기 힘든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많은 직종이 그러하지만, 특히 연예계의 수익 구조는 기형적일 정도로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연예인 걱정이 시간 낭비라는 말 뒤에는 한 연예인이 힘들다고 할 때 그 모습을 촬영하는 스태프는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을 거라는 근거가 뒷받침된다.

 

방송국에는 정식 계약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인력이 대부분이다. 최저시급은 물론 업계 특성상 출퇴근 시간도 정해지지 않은 채 일하는 이가 대다수다. 2016년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PD가 편집하다가 과로사로 사망해 많은 이에게 큰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연예인이 또 자주 마주치는 건 소속사 직원들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역시 적은 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곳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언젠가 한 아이돌의 자체 제작 콘텐츠를 보다가 한 직원이 맡는 방대한 업무량을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는데, 최근 인터넷에 공개된 유명 기획사의 평균 연봉을 보고 업무량과 비교되는 금액에 탄식하기도 했다.

 

평범한 일반인이 주 52시간은커녕 잠자는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며 적은 돈으로 일하는 근로자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 중에 전자에 공감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업계 노동자의 임금이 적은 것에 연예인이 막대한 수익을 가져간다는 점도 일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 더욱 그 분노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불합리한 구조가 연예인 걱정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일상에서 돈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그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돈으로 해결될 수 없는 심리적인 압박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구조를 비판하는 것과 연예인의 고충을 외면하는 것은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

 

한국 사회는 부와 행복이 비례한다고 맹신한다. 물론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부도 어느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축적되면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밝혀졌다. 돈이 많으니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다.

 

애초에 타인의 직업을 함부로 재단하는 태도부터 잘못되었다. 가끔 특정 직업이 부럽다고 생각되면 ‘누군가의 일이 쉬워 보이면 그건 그 사람이 일을 잘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연예인은 특히 화려하고 빛나는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인생을 쉽게 산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밝은 모습만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의 내면이 멍든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손쉽게 재단되는 직업은 많다. 어쩌면 이 사회는 남을 걱정하는 능력 자체를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넘쳐나는 SNS상의 과시 속에서 항상 남들은 나보다 행복하고, 세상에선 내가 제일 불행하다는 피해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어떤 직업의 부조리가 발견되어도 그 직업을 택한 사람들의 멸시로 담론이 이어지는 경우를 댓글창에서 여러 번 보았다.

 

건강한 소통은 타인의 맥락을 상상하는 것에서 나온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도 그 이면에 내가 모르는 고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에서 진심 어린 걱정이 나올 수 있다. 연예인 걱정보다 시간 낭비인 건 그들은 당연히 배불리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편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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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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