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갑과 을, 자본주의의 슬픈 민낯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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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립영화 중에서도 다수의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잘 전달될만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좋아한다. 다르게 말하면 현시대를 살면서 일어날법한 일들을 소리 내 이야기하는 영화가 와닿는다.
최근 본 독립영화 <다음, 소희>는 현실을 넘어선 실제 이야기로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사건을 다뤘다. 실화 기반이라 가슴에 더 울림을 줬던 영화.
전주 특성화고 반려동물과에 다니던 소희는 다른 여고생들처럼 춤추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소희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힙합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표현하기 좋아하고 웃음기 많은 소녀의 모습은 콜센터에 취직해 고객을 응대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대기업 여사원으로 입학했다며 좋아하던 소희.
실은 그녀가 다닌 회사는 대기업 산하 하청의 하청 콜센터였다. 실습생 신분이었지만 취업을 했다는 사실에 즐거워하기도 잠시 폭언, 성희롱적인 발언은 물론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점점 웃음을 잃어간다. 열심히 고객 응대를 하며 해지방어를 하지만 제대로 된 임금은커녕 근로계약서 내용도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작성돼 있었다. 결국 소희는 극단적 시도를 한다.
영화를 보다 문득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의 취업률, 숫자에 목매는 선생님, 근본적인 문제 어디서부터 무엇으로부터 비롯됐을까?
학교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취업 실적에 매달려야 할 수밖에 없는 선생님, 실적을 바탕으로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 교육청, 숫자로 판가름 되어야 하는 구조.
어떤 곳에서 얼마나 된 임금을 받고 어떤 감정으로 일하고 있는지 귀 기울였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어른들이 보호해 주는 안전한 울타리 아래서 천천히 꿈을 찾아 나갔다면 어땠을까.
소희가 너무 빨리 사회를 알아서 웃음을 알아버린 게 아닐까. 취업특성화 고등학교는 어쩌면 취업양성소가 아니었을까.영화 제목 또 다른 소희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영화 중반부 이후에 형사 유진(배우 배두나)가 소희의 사건을 담담하게 조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진의 시선을 통해 학교의 취업률을 위해 학생들의 하청의 하청에 파견을 넣는 학교의 모습.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내는 회사의 모습이 후반부에 나온다.
소희는 팀장의 자살 사건 이후 매일 야근을 하며 팀 실적을 1위로 끌어올리지만 표준 계약서에 적힌 160만 원을 받으며 절망하며 부당함을 주장하지만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기본급을 지급받는다.
결론적으로 형사 유진은 사회에 맞서서 소희 문제를 사이다급으로 풀어내지는 못한다.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경찰 한 명이 한순간에 바꾸겠는가. 다만 형사 유진은 공적으로 불가능한 수사에 괴로워하며 소희의 아픔과 분노를 함께 공감한다.
소희의 유품인 핸드폰 속 춤 연습을 하며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연습해 동작을 성공해 내는 소희의 모습이 그려진다.
<다음소희>를 볼 수 있게 하는 영화의 힘은 꾸미지 않음 그 자체 같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소희의 모습을 보여준 소희(배우:김시은)의 모습과 이후 소희의 자취를 읽는 유진(배우:배두나)의 간결하고 깔끔한 구조 및 분위기가 극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영화를 보며 이제 막 사회로 나가던 때가 생각났다. 근로계약서 없이 아르바이트를 할 뻔한 기억부터, 사회로 나가니 3개월 수습이라는 이유로 많은 제약이 있었던 시절, TM이라는 일을 해봤던 옛 기억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나는 지금 그리 훌륭한 어른도 힘이 있는 어른도 아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소희를 위해, 또 다른 현장에 나가 있을 소희를 위해 이 영화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아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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