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 퀴어 커플의 사랑과 삶에 대하여 [공연]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가 보여주는 퀴어의 재현
글 입력 2024.03.2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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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2022 서울 SPAF(서울 국제 공연 예술제)에서 낭독공연으로 초연되어 2023년 공연을 거쳐 2024년 올해 다시 돌아와 3월 19일부터 31일까지 볼 수 있는 공연이다. 공연이 창작되고 구체적인 연출들이 더 추가되고 덧붙여지며 디벨롭되는 과정에 있었던 2022년과 2023년에는 국립 정동극장의 산하 기관인 세실에서, 그리고 올해는 기획 공연에 선정되어 국립 정동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재은과 윤경이 태어났던 2000년대부터 2099년까지 100년간, 1세기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여성 퀴어 커플인 재은과 윤경은 학창시절을 같이 보내고, 마음을 확인하며 사귀게 되고, 혼인 신고가 반려당하고, 딸 재윤을 키우고, 이혼을 겪기도 한다.

 

 


뒤섞이는 퀴어 커플의 시간성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에서는 2007년부터 2099년까지의 시간 속에서 연도로 표시되는 특정한 시간들이 지속적으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시간이 변화한다. 2010년대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을 키워가던 학창시절과 결혼 후 불화와 위기를 겪던 2040년대, 사랑을 확인한 2020년대, 이혼을 겪은 2050년대 이후 등 여러 시간들이 무작위로 뒤섞이는 ‘모자이크’ 형식이다. 여러 퀴어 이론가들은 주류 사회의 선형적인 시간성과 배치되는 ‘퀴어 시간성’에 대해 탐구해 왔다. 사회적으로 규범적인 시간성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단선적인 발전의 시간성이라면 퀴어한 시간성은 이러한 근대적 진보의 시간성에 대한 위반의 의미를 가지는 혼종적인 시간이다. 퀴어의 시간은 현재, 과거, 미래가 뒤섞이며 규범적 생애주기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회적 배치와도 불화하게 된다. 이 작품의 특이한 형식은 ‘퀴어 시간성’을 연극이라는 공연 무대 위에 구현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성소수자인 재은과 윤경은 입양이라는 방식으로 딸 재윤을 얻는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이성애 가족의 재생산이 아닌 방식으로 아이를 얻고, 재윤에게 ‘엄마들’로 불리며 양육한다. 퀴어에 대한 혐오의 수사를 구성하는 한 단면은 퀴어의 존재가 함의하는 비생식성, 그렇기 때문에 ‘미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성애 중심적 재생산이 ‘정상적 삶’으로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는, 퀴어 이론가 리 에덜만의 논의처럼 퀴어 정치는 재생산적 미래주의와 긴장 관계에 있다. 여성 퀴어 커플의 미래를 그리며, 두 사람 사이의 딸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에서는 성소수자의 가족 이야기를 묘사함으로써 정상성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과 가치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리고 가족과 불화가 언급되는 ‘재은’의 이야기는 기존의 이성애중심적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하는 가족의 위계와 폭력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결말이 단절의 시간성인 ‘비극적인 죽음’으로 귀결되지 않고 성소수자의 노화를 묘사한다는 것 역시 그동안 퀴어를 대상화해 재현하는 미디어의 전형에서 이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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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를 보게 된다면, 극의 제목이 재은과 윤경의 사랑의 여러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흐름이 되는 내용과 대응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제목에 대해서, 창작진은 프로그램북이나 인터뷰 등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이라는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동성애를 ‘우정’ 등으로 여기기에 사랑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제목을 설정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미지의 배반>은 파이프의 그림을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자를 밑에 써 놓은 그림인데, 이미지와 텍스트의 병치에서 나오는 우연성과 임의성을 통해 모순과 역설을 그린 그림이다. 사랑 이야기지만 사랑 이야기로 불리지 않는 (못하는) 모순, 이것이 의도다.

 

미디어 속 동성애는 주류 사회에서 ‘휴머니즘’의 탈을 경유해 다수자의 시혜적인 방식의 관용을 통해 받아들여지거나 저건 ‘우정’이라며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은폐를 겪는다. 그렇기 때문에 퀴어 커플의 재현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지점들은 항상 딜레마의 상황에 처해 있다. 예를 들어 ‘보편적 사랑’이라는 수사, 혹은 해석은 퀴어성을 지움으로써 주류 사회에 안정적으로 편입하려는, 즉 커버링의 전형적 사례다. 그렇다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부정의 형식을 취한 이 극의 제목은 이성애 중심적으로 개념화된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한 적극적이고 급진적인 거부가 된다. 따라서 역설적인 의미를 가지는 이 제목의 문장은 퀴어의 삶에서 발생하는 사회와의 복잡한 경합의 상황을 겨냥하고 있다.

 

또한 이 연극의 제목은 단순히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의 이야기라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퀴어의 일상은 여러 장벽들에 부딪히기 때문에 비퀴어의 일상과 같을 수 없다. 마치 연극 속에서 재은과 윤경의 혼인신고가 수리되지 못한 것처럼. 그리고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 사랑이 지워지는 경향이 있는 한편, 동시에 주류 사회에서 성소수자, 특히 시스젠더 유성애자의 이야기는 항상 연애와 성애적 차원에만 집중하여 낭만화하는 방식의 전형 역시 문제적이다. 또한 성애와 퀴어성을 삭제한 채 성소수자 역시 다른 시민과 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수사 역시 위에서 말했듯이 문제적이다. 결과적으로 퀴어를 재현함에 있어서의 문제는 탈성애화와 과잉성애화 그 모두가 된다.

 

그리고 낭만적 사랑이라는 개념과 영속적이고 깨지지 않는 가족(가정)이라는 규범적이고 정상적인 삶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체화하거나 그 목적이 어떠한 것이더라도 그러한 통념에 따르는 방식으로 퀴어를 재현하는 것은 위계적인 젠더와 섹슈얼리티 규범에 대한 일탈을 지향하는 퀴어 정치를 제도권 내에 포섭시키면서 동시에 그러한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다른 퀴어에 대한 배제가 될 수 있다. 퀴어 가족의 갈등과 불화, 이혼과 별거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는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가 특별한 이유이다.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들


 

이 연극에서 K-POP은 극 전반에 걸쳐서 하나의 배경음악, 혹은 소재로 등장한다.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두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계속 들어왔던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 2013년 중학교에 입학한 재은과 윤경이 추는 엑소의 <으르렁>, 2017년 고등학생 시절 재은이 윤경에게 커밍아웃 했을 때 두 사람이 같이 듣고 있던 엄정화의 <엔딩 크레딧>, 태연의 등 커튼콜에서 세 사람은 <아틀란티스 소녀>에 맞춰서 춤을 춘다. <아틀란티스 소녀>에 나오는 바다 끝과 탐험이라는 키워드가 재윤이 가지게 된 직업과 연관되거나, <엔딩 크레딧>의 가사가 커밍아웃 후 겉으로는 윤경과 평화롭지만 실제로 재은이 겪는 복잡한 심정과 연관되거나 하는 방식으로 작품 속에서 음악은 알게 모르게 장면과 연관된다. KPOP 같은 대중문화의 소비자 중에는 퀴어도 있었고, 퀴어의 문화는 이러한 주류 문화를 전유하며 성장해 나갔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상상력도 돋보인다. 혼인신고서가 수리되지 못해서 그 불수리 사유서를 집에 걸어놓던 시간과 달리 딸 재윤이 어른으로 성장한 세대에는 퀴어 커플의 혼인율과 이혼율이 이성애 커플을 능가했으며, 재윤은 한국에서 동성결혼이 불가능했던 과거를 직접 겪지 못했다. 이러한 미래를 표현함에 있어서 sf적인 표현 방식이 연출로 등장하기도 한다. 심해로 향했던 딸 재윤과 우주를 돌아다녔던 딸의 남편(승혁)의 이야기도 언급되며, 2099년 우주에서 재회했던 재은과 윤경을 묘사하면서 심해와 우주의 모습을 파란 불빛을 통해 표현한다. 이 파란 불빛은 바다에 있던 재윤이 우주에 있는 승혁과 자신이 연결된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틀란티스 소녀>를 연상시키는 이 파란 불빛은 작품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하며, 그 시간들 모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07년 윤경을 처음 만났던 어린 재은이 하늘을 나는 UFO를 봤다며 찍은 사진을 보여줄 때 시작한 관계는 2099년 우주에서 다시 만난 재은과 윤경으로 이어진다. 무대 위의 시간은 연속적으로 흐르지 않지만,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 안에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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