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맨발을 위한 청춘 [영화]

글 입력 2023.11.1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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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 한국 맨발의 청춘 영화 작품에서 두수는 레슬링장, 안나는 음악회를 통해 자신들이 삶에 서로를 초대한다. 서로가 다른 환경 속에서 향유하는 취미마저 극과극이라는 것을 장소라는 비유를 통해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기에 인상 깊게 본 대목이다.

 

원작 소설 속 두수의 공간은 야구장이다. 일본야구의 발전이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소설 창간 당시 일본 사회에서 야구가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을 때 였다는 점, 일본과 다르게 한국야구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맨발의 청춘은 야구를 차용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 정서에 맞게 두수의 취미 공간이 야구장에서 레슬링장에서 각색되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예술은 사회와 문화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고 생각하기에 원작과 비교하여 영화를 감상하며 일본과 한국의 다른 사회상을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양아치란 말이야“라는 원작의 대사가 바뀌어 영화 속에서는 아버지는 수감자고 어머니는 갈보였단 말이야 라고 외치는 두수의 대사는 미군정 시기를 거친 한국의 시대상이 녹아 변환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알게 모를 벅참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원작과 맨발의 청춘을 비교해 감상하는 것이 재미있어 원작과 동명의 일본 영화 진흙투성이의 순정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다. 1963년 개봉작이었으나 한국의 맨발의 청춘과 다르게 시네마 컬러인 사실이 가장 돋보였다.

 

1967년부터 한국영화에 시네마 컬러 시대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1974년 별들의 고향이 컬러라는 것이 다시 한번 생각났다.

 

세가지 작품을 통해 내용이라는 재료는 같지만 이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세 작품 모두가 다른 구성과 연출방식을 띄고, 그것들이 당시시대상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우리가 역사 속 남겨진 예술을 공부해야하는 이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점퍼를 입고 사랑하는 이와 생을 마감한 세 주인공의 이름들은 나에게 큰 여운을 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맨발의 청춘이 담고 있는 한국의 시대상황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한국의 극명한 계급의 격차 요안나 부모와 두수, 안나의 관계의 세대차이 . 젊은 세대가 사랑을 매개로 당시 계급간의 장벽을 투쟁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이 비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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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들에게는 죽음만이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이자 성취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함도 느껴졌다.

 

맨발의 청춘을 감상하고 문득 사의 찬미라는 대표곡을 남기고 김우진과 함께 사라진 성악가 윤심덕이 생각났다. 그들의 이야기가 1969년 안현철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는 것과 맨발의 청춘이 1964년에 개봉했다는 점을 보아 개인적으로1960년대 청년사회의 반향은 “넘을 수 없는 사회질서 속 울부짖는 청춘들의 저항”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영화 속 “송충이는 솔잎이나 먹고 자라기 마련이다” 라는 말을 들은 두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자신과 같은 처지인 아가리를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두수가 자신과 같은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이를 패는 장면은 넘을 수 없는 사회의 벽에서 결국 현실순응이나, 자기자신을 학대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인생을 담아내는 연출이었다.

 

그가 살고 싶은 세상은 계급과 부로 나뉘는 세상이 아닌 학처럼 어디든 경계없이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염원이 무색하게도 두수의 독백 이후 바로 연출 된 장면은 화려한 장례절차를 밟는 안나와 초라하게 아가리의 수레에 놓여진 맨발의 두수다. 안나쪽과 수레를 번갈아 보는 아가리의 시선 이동은 무력한 관객의 마음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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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인 나는 화면 속 줌 아웃되어 가는 아가리를 바라보며 떠나는 또 다른 청춘인 아가리의 삶 속 종착역에는 일말의 빛이라도 존재하기를 염원하며 스크린을 떠났다.

 

그들이 꿈꾸던 한국의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내용은 순수한 멜로드라마지만 이 영화 속 시대를 헤아려본다면 젊은 세대가 꿈꾸던 유토피아는 결국 쟁취할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냉정한 잔혹드라마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두수와 같은 청춘인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기에 1960년대 청춘이 살았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일까.

 

 

[배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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