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늘을 마음껏 사랑할 것, 뮤지컬 '렌트' [공연]

글 입력 2024.01.1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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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뮤지컬렌트] 포스터.jpg

 

 

 

내일은 없어, 오직 오늘 뿐.


 

주변에서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이 뭐냐고 물어보면, 주저 없이 <렌트>라고 답했다. 심지어 <렌트>를 관람하기 전에도 그랬다. 고등학생 때, 뮤지컬 쪽으로 진로를 잡으며 여러 종류의 뮤지컬 관련 서적을 읽었었다. 그렇게 세상의 유명하고 다양한 뮤지컬을 공부하면서 <렌트>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인생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공연을 올리기 하루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조나단 라슨의 비극부터 동성애, 에이즈, 마약중독 등 사회적으로 꺼려지던 소재를 무대에서 대놓고 표현한 점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남녀 주연의 중심 이야기를 조연들이 서포트하는 개념이 아니라, 8명 배우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한다는 게 다른 뮤지컬과 차별화된 렌트만의 매력 포인트였다. 그래서 언젠가 뮤지컬을 만들 수 있다면 이처럼 비주류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가득 채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극 중 등장하는 ‘보헤미안 정신’을 본받고 싶었기에, 한창 “No Day But Today”를 입에 달고 살았던 기억이 있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자는 메시지가 머릿속에 깊이 박혔고, 그때부터 오늘의 삶을 치열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뮤지컬을 보기 전에도 후에도 여전히 저 문구는 인생의 모토가 되어주고 있다.

 

그래서 뮤지컬 <렌트>를 프리뷰 공연에서 처음 만난 순간, 배우들이 온몸을 다해 전달한 에너지를 받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동시에 이보다 내 삶과 밀접한, 어쩌면 내 삶을 관통할 만한 뮤지컬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공연예술에 대한 열망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평생 예술을 하며 살고 싶은 나는, 한평생 예술을 해왔던 그들에게 열정과 투지를 배웠다. 인생이란 촛불이 꺼져가는 순간까지 불을 밝힐 방법을 찾는 모습에 내일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되새겼다.

   

 

[2023뮤지컬렌트] Rent_로저(장지후), 마크(정원영) 외.jpg

 

 

 

친절하지 않은 뮤지컬을 사랑하는 것


 

이러한 의미에서 <렌트>는 나에게 굉장히 소중하고 가치 있는 뮤지컬이다. 그렇지만 모든 관객이 <렌트>를 한 번만 봐도 감동하긴 어렵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일단 8명의 상황과 입장을 모두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리저리 꼬인 관계를 풀어나가는 전개를 지켜보는 것은 물론, 그들만의 예술 철학을 은유해서 버무린 대사와 가사를 듣고 가슴 깊숙이 공감하긴 무리다. (모린의 ‘Over the Moon’처럼 사이버랜드에서 달을 뛰어넘기 위해 “음메-”를 외치는 넘버만 봐도 그렇다. )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화한 작품이기에 친숙하긴 하나 친절하진 않다. 그만큼 관객의 사전 정보가 많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보통 대표 넘버와 시놉시스 정도만 확인하고 뮤지컬을 관람하는 편이나 <렌트>는 달리했다. 당장 예매사이트의 후기만 뒤져봐도 ‘내용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라는 평이 많은 공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인들에게 추천할 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알고 가면 정말 재밌는 뮤지컬이다’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니 극을 관람할 예정인 분들에게 사전에 동명의 영화 <렌트>나 <틱틱붐>을 보고 가길 강력히 권장한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지인 역시 아무 정보 없이 보기에는 다소 난감했다는 후기를 전했다. )

   

오로지 <렌트> 덕분에 친절하지 않은 뮤지컬 또한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동성연애, 양성연애 등 각종 사랑에 대해 외치는 뮤지컬인만큼 일단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꾸벅 졸면서도 영화를 감상하고 극장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프리뷰 공연만 보고 보내주기 아쉬워서 2회차를 돈 후에 리뷰를 작성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방대한 줄거리는 시놉시스를 통해 간략히 소개하고, 여기에는 개인적인 후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시놉시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

열정과 젊음의 에너지가 가득한 영혼들이 있다.

바로, 로저, 미미, 마크, 조엔, 엔젤, 콜린, 베니.

 

이들은 사회가 정한 규칙보다는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하며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로저와 마크는 뉴욕의 슬럼가에 살고 있으며,

건물 주인인 베니가 밀린 집세를 청구하며 갈등이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베니는 로저와 마크에게 집세를 감면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로저, 마크, 미미, 엔젤, 조앤, 콜린 사이의 다양한 관계와 사랑,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스토리를 이어간다.

 

끝없는 열정과 자유를 추구하며 함께 있어 행복했던 이들은

과연 다시 만나 서로 사랑하며 웃을 수 있을 것인가?

 

 

 

렌트와 라슨의 이야기


  

오페라 <라보엠>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렌트>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로저, 마크, 미미, 조앤, 모린, 콜린, 엔젤, 베니라는 사랑스러운 8명의 보헤미안은 꿈과 열정,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다. (여기서 보헤미안이란 보통 집시를 의미하나 19세기 후반 사회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예술가, 문학가들을 일컫는다고 한다. )

 

<렌트>의 음악은 브로드웨이를 빛낸 극작·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록, R&B, 탱고, 발라드, 가스펠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오페레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기에 조나단 라슨의 삶의 기억들-낮에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작업을 했던 것, 친한 친구에게 여자친구를 뺏겼던 것, 에이즈 모임에 참석했던 것, 에이즈에 걸린 친구들이 세상을 떠난 것-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실제로 1996년 1월 26일, 150석 규모의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기 하루 전 대동막 박리로 요절한 라슨을 기리기 위한 흔적 또한 존재한다.

 

바로 렌트의 대표 넘버 ‘Seasons of Love’의 순서를 바꾼 점이다. 원래는 2막의 후반부, 엔젤이 떠난 후에 그를 추모하는 넘버에서 2막의 시작을 희망차게 여는 넘버로 전환되며 더 큰 감동을 선사한다. 결국 <렌트>를 만든 라슨은 떠났지만, 작품은 언론과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불과 3개월 만에 브로드웨이의 네덜란더 씨어터로 극장을 옮겼다. 또한, 비주류층이었던 젊은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는 등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이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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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오늘을 이야기하는, <렌트> 후기



<렌트>는 키보드,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5인조 록 밴드가 송스루 형식에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을 이끌어간다. 우선 여러 장르가 혼합된 음악들이 다채롭게 이어지니 귀가 심심할 틈이 없었다. 록 밴드다 보니 오케스트라에 비해 기쁜 넘버는 확실하게 신나고, 슬픈 넘버는 확실하게 우울하다. 특히 유일하게 전자기타를 다루는 로저의 솔로 퍼포먼스 역시 그의 거센 감정과 맞닿아서 'Tune Up'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다 보니 사실 연주 자체에는 흠잡을 점이 없었지만, 프리뷰 공연에서는 밴드 음량이 너무 커서 그런지 배우들 대사나 가사가 잘 안 들려서 모든 장면을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에 봤을 때는 음향이 훨씬 나아진 덕분에 2회차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8명의 예술가와도 거리감이 좁혀졌고, 그들의 촘촘한 서사나 내면의 깊숙한 감정들을 받아들이기도 수월했다.

 

송스루 뮤지컬이다 보니 넘버가 굉장히 많고, 그만큼 좋은 넘버도 많다. 워낙 유명한 ‘Seasons of Love’는 이것만을 위해 보러왔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일 년의 시간을 분으로 나타낸 52만 5,600분이란 가사를 반복하며, 삶의 가치는 오직 사랑으로 기억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단체 넘버다 보니 극장을 꽉 채우는 화음 파트와 압도적인 실력으로 귀가 호강하는 솔로 파트를 함께 들을 수 있어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2023뮤지컬렌트] Seasons of Love.jpg

 

 

더욱이 각 인물의 존재감과 매력을 발산하는 로저-‘One Song Glory’, 마크-‘Halloween’, 미미-‘Out Tonight’, 조앤-‘We're Okay’, 모린-‘Over the Moon’, 엔젤-‘Today 4 U’, 콜린-‘Santa Fe’, 베니-‘You'll See’부터 연인들이 사랑에 빠지거나 멀어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미미&로저-‘I Should Tell You’나 조앤&모린-‘Take Me or Leave Me’, 엔젤&콜린-‘I'll Cover You’, 무대 위 보헤미안들이 꿈, 사랑, 자유를 노래하는 ‘La Vie Boheme A&B’, 'Finale A&B’, ‘Happy New Year A&B’, ‘Will I?’까지 손으로 셀 수 없이 인상적인 넘버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애 넘버를 뽑자면, 마지막에 언급한 ‘Will I?’라고 할 수 있다. 무대 위에 흩어져있던 컴퍼니가 한 명 한 명 모이며 내일의 두려움을 노래한다. 자신의 고통(에이즈)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누가 자신을 알아주냐고 되뇌며, 내일의 아침을 또 보게 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지는 가사로 이루어졌다.

 

비록 이 넘버는 희망보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노래하지만, 아프고 쓸쓸한 감정을 토로하지만, 가장 밑바닥에 있는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함께 모여 오늘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처음에는 앙상블로 시작해서, 8명의 목소리가 점차 쌓여나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들이 담담히 털어놓는 온갖 감정들이 나에게도 번져서 절로 눈물졌다. (유명한 넘버가 아니라서 프레스콜 영상이 없는 게 한이다. 나중에라도 꼭 올라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결정적으로 넘버가 좋을 수 있었던 건, 극 속 인물들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실력 있는 배우들 덕분이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앙상블 비중이 작다 보니 개인 기량이 확 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일부러 캐스트가 최대한 안 겹치게 2회차를 돌았는데 음향 문제 외에는 딱히 아쉬운 부분이 없었다. 오히려 다들 숨 막히게 잘해서 어쩜 이렇게 환상적인 조합으로 캐스팅했는지 감탄했다. (가장 찰떡이라고 생각했던 캐스트는 로저 역의 백형훈, 미미 역의 이지연, 모린 역의 김수연, 엔젤 역의 조권이다. )

 

 

[2023뮤지컬렌트] La Vie Boheme.jpg

 

 

그뿐만 아니라 8명의 인물이 가진 성격과 개성을 독특한(흔히 말하는 예술가적인) 헤메코를 통해 차별화되게 표현했다. 심지어 배우 별로도 조금씩 다른 포인트를 부여해서 다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와 같은 보헤미안을 한곳에 모아놓은 무대 자체는 극 중 배경처럼 낡은 재개발 지역이라 차갑고 삭막한 철 구조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형형색색의 LED 전구, 스모그 효과와 조명 기술로 크리스마스 이브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무대 전환 없이도 계속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여러 구조물을 각자 다른 시공간처럼 연출한 점이 인상 깊었다.

  

*

 

마크는 카메라를 통해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인 미미-로저, 조앤-모린, 엔젤-콜린 세 연인을 담아낸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미미는 마약을 놓지 못해 아파하고, 로저는 그녀의 죽음이 무서워서 거리를 둔다. 조앤은 자꾸만 바람을 피우는 모린에 신뢰를 잃고, 모린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조앤이라며 적반하장 한다. 가장 끈끈하던 엔젤과 콜린 사이에는 가장 거대한 시련이 닥친다. 엔젤은 에이즈의 악화로 죽을 위기에 처하고, 콜린은 그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사랑을 외친다.

 

결국, 누구보다 사랑의 가치를 잘 알았던 엔젤이 죽으며 남은 두 연인의 사이도 나빠진다. 그렇게 미미까지 죽음이 코앞에 닥친 순간, 기적처럼 눈을 뜬 미미에 모두가 사랑으로 화해하며 극은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사실 <렌트>가 엄청나게 복잡한 이야기 같아도 결국에는 “사랑하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게 예술이든, 꿈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자기 자신이든 사랑하라고 극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으니, 오늘을 마음껏 사랑할 것. 그러다 보면 “Will I?”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I will”이라고 답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랑할 뮤지컬 <렌트>를 다시 보게 된다면 또 어떤 감상에 젖을지 궁금하다. 모두가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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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24/01/06 오후 7시

 

 

[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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