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주머니를 통해 이어지는 인간관계 [도서/문학]

담뱃갑 사이즈의 아담한 시, 주머니시
글 입력 2023.11.1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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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시'라고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주머니시는 주머니에 쏙 넣어 다니기 좋은 사이즈의 시입니다. 사이즈를 어림잡아 이야기 하면 담뱃갑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얼마 전 sns를 둘러보다가 주머니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총 20장의 넉넉한 양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흥미로운 일일까요? 주머니시의 판매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짤막한 소개 글이 적혀있습니다.

 

‘쪽지를 받아본 경험이 있나요? 조그마한 종이에 소중하게 눌러쓴 글자들이 빼곡한, 글 솜씨가 조금 서툴러도 받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쪽지를요. 주머니시는 이 작은 쪽지에서 시작했습니다.’

 

20명의 시인이 20개의 시를 독자들에게 건네며 주머니시의 나눔은 시작됩니다. 작지만 내용이 빼곡한 주머니시는 시인의 인스타그램, 시인 이름, 시 속 대표 문장을 앞면으로 시작해 길게 늘어진 뒷면의 시까지 알찹니다.

 

특정 작가나 시인과 계약해서 구성하고 판매하는 것이 아닌, 매번 주머니 시리즈마다 작품 공모를 통해 이루어지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독자들은 신선하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시와 작가를 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책이나 시집을 선물하기는 부담스럽지만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주머니시는 제 할 일을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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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머니를 통해 많은 감정을 전달합니다. 서로 손을 잡기도, 누군가를 생각하며 주머니 속에 물건을 챙겨오기도, 마음을 따스히 녹여주기도 합니다. 주머니시는 담배처럼 적당한 거리와 관계의 타인과 더 친밀감을 쌓기 좋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술을 마시는 도중 담배 한 개비를 나눠피듯 주머니시는 긴장된 관계를 사르르 녹여줍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적당한 거리의 타인과 더 깊이 있게 얘기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택시 기사님. 그날 하루의 고민거리나 속상했던 일을 가는 길에 털어놓으며 후련한 마음으로 내립니다. 한 번 보고 마는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에서 솔직함이 더 커집니다.

 

새벽 편의점 앞 벤치에서 하는 허심탄회한 이야기들.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깊은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감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주머니시는 그런 역할입니다. 시를 읽으며 느낀 감정과 공감되는 구절을 전하면서 요즘 하는 생각, 가치관, 고민을 말할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 주머니시를 선물했습니다. 제가 느낀 감정을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출퇴근 시간, 통학 시간에 잊고 있던 시를 꺼내어 읽어보면서 어렴풋이 생각나는 저를 시 속에 녹여내면 좋겠습니다.

 

함께 공유하는 시간 속에 주머니시가 자리를 잡고, 새로운 추억이 또 하나 생겨납니다. 주머니시는 독자들이 시의 분위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타민시, 시거랫 등으로 희망적인 내용, 조금 깊고 어두운 내용으로 20장의 전반적인 주제를 고를 수 있는 것도 재밌습니다.

 

양쪽 주머니에 두 개의 시집을 넣어두며 매일매일 다양한 감정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 만나는 사람,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비타민시를 선물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비타민을 먹은 듯이 시를 향유하면서 에너지를 얻고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거나, 읽기에는 부담스럽지만 마음 한 편에는 예술적 향유를 원하는 누군가에게는 행운 같은 만남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삶의 곳곳에 감정과 따스함이 넘친다면 충분한 문학적 향유를 끝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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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개비처럼 서로 주고받으며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지라도 시를 통해 마음을 나눈다면 다소 차가운 사회가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추운 겨울날이 시작되는 요즘, 주머니시를 통해 사르르 녹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가볍게 추천합니다.

 

 

[안윤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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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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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머니시
    • 안녕하세요. 안윤진 에디터님. 저는 주머니시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송유수라고 합니다. 다름 아니라, 해당 글을 주머니시 SNS 계정에 소개하고 싶어 인용을 허락 받고자 댓글 남깁니다. 메일 주소를 찾지 못해 댓글로 남긴 점 양해 바랍니다! pocketpoem.mail@gmail.com 으로 회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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