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천재 피아니스트들의 숭고한 경쟁 - 크레센도 [영화]

하늘에 있는 예술가들을 위한 연주
글 입력 2024.01.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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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뉴스를 보면 콩쿠르에 한국인이 입상했다는 소식들을 간간히 접했다. 우리나라 음악가들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마다 그들의 남다른 성장과정과 함께 주요 경연 영상이 짧게 편집되어 방송으로 송출되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주요 콩쿠르에서 한국인 입상자는 몇 명일까? 관련해서 찾아보았고 SBS에서 실제로 취재한 내용을 찾게 되었다. SBS 내부적으로 자체 집계한 통계이기에 부정확할 수도 있다는 말을 서두에 깔며 2002년 이후 기준으로 세계 3대 콩쿠르에서 나온 전체 입상자는 286명(이중국적 16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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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중에서 한국이 총 36명으로 러시아 뒤를 이어 2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인 것은 알았지만 클래식 부분에서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처럼 콩쿠르는 나에게 있어 어렵고 이질적인 세계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너무 어렵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클래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음악과 관련된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제대로 접해보기 위한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속된 말로 나한테는 ‘고급문화’였다.

 

피아노와 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들과 같이 초등학교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었다. 물론 뚜렷한 재능과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그만두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피아노는 좋은 취미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막상 배우고 싶다는 강력한 동기는 느끼지 못했고 마음속 로망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로망에 다시금 불을 지핀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 <크레센도>이다.

 

 

 

World is Listeneing


 

이번 오피니언의 주제는 2022년 반 클라이번(Van Cliburn) 콩쿠르를 다룬 영화 <크레센도>이다. 다큐멘터리이며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주연인 것처럼 포스터와 예고편은 나왔지만 해당 영화는 굳이 주연, 조연을 따질 수 없는 콩쿠르 본선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즉 임윤찬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도 주인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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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is listening, 참가자 중 한 명이 연습을 하면서 입고 있는 티셔츠 뒷면에 써져 있던 문구였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슬로건인 줄 알았는데 검색을 해보니 아니었다. 정확히 어떤 티셔츠인지는 모르겠지만 콩쿠르를 관통하는 문장인 것은 명백하다. 세계가 듣고 있다. 피아니스트에게 최고의 영광이자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을 동시에 담고 있는 인상적인 표현이다.

 

아트인사이트 다른 오피니언에서 수차례 언급했지만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삶의 의지와 활력을 되찾는다. 다큐멘터리 등장인물들의 빛나면서 확신에 찬, 매우 살벌하고 날카로운 눈빛. 무아지경에 빠진 눈빛을 보면 도파민이 뿜어져 나온다. 일의 진전이 없고 무기력할 때마다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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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화 <크레센도>가 특별했던 점은 콩쿠르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는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어느 정도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이 한정되어 있는데 우승자 임윤찬뿐만 아니라 반 클라이번 콩쿠르 참가자 모두를 다뤄서 좋았다. 참가자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이들의 진솔한 인터뷰를 들으면 피아니스트로서의 그들의 견고한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우연한 기회로 재능을 발견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의 재능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응원하는 부모님과 주변 지인들의 노력인 점을 알게 되었다. 콩쿠르에 참가하는 마음가짐 또한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점 또한 재미요소이다.

 

콩쿠르 참가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진로 고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능력의 출중함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어느 정도 진로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다해 연주했어요


 

천재들 중의 천재, 천재들이 인정하는 천재, 우승 후에도 변한 것은 없다는 임윤찬의 인터뷰를 보며 정점을 찍은 사람의 마인드는 확실히 다루다는 것을 느꼈다.

 

30명->18명->12명->6명->최종 수상자 3명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 여정 속 참가자들은 극한에 가까운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대한 변수들을 통제한 머릿속. 티끌만큼의 근심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무균실, 클린룸과 같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이들이 초인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임윤찬은 연주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답을 했다. 그저 곡과 한 몸이 되어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연주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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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의 인터뷰를 보면 소심한 성격인 것을 알 수 있다. 조심조심 뱉어내는 그의 생각들을 들어보면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예술, 피아노에 대한 철학이 얼마나 굳건한지 알 수 있다. 수려한 언변이 아니기에 그가 전한 진심은 더욱 깊게 퍼진다.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꾸역꾸역 진심을 다해 적어가는 듯한 인터뷰였다.

 

평소에는 소심한 그도 연주를 시작하면 눈빛이 돌변한다. 다큐멘터리 <디올 앤 아이>의 라프시몬스도 인터뷰할 때의 모습과 디렉팅 할 때의 모습이 정말 다르다. 극단적인 예시 일 수 있지만 이처럼 페르소나를 극명하게 갈아 끼우는 모습을 맥그리거 다큐멘터리에서 봤다.

 

광기를 표출하며 불편한 쇼맨쉽과 언행들을 일삼는 악동 맥그리거는 정작 경기를 준비할 때는 그 누구보다 냉정하고 차분하고 신중하다. UFC 무대에 오를 때의 맥그리거와 무대에 오르기 전 준비하는 맥그리거의 모습은 아예 다른 사람이다.

 

임윤찬의 스승이 말했다고 한다. 본인의 성격을 드러내지 말고 본인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라고.

 

 

 

클래식은 멸종위기


 

다큐멘터리에서 클래식은 멸종위기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콩쿠르는 클래식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강조된다. 예술을 가지고 경연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젊은 예술가들을 건강한 방식으로 배출하는 방법 중 하나인 점은 확실하다.

 

콩쿠르뿐만 아니라 대중가요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들을 배출하거나 기존 가수를 재발견한다. 또한 예술가들도 이와 같은 경쟁과 압박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실황 공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들을 컨트롤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클래식이 멸종되지 않기 위해서는 콩쿠르가 많이 개최되어야 하고 이는 클래식뿐만 아니라 많은 음악 장르들에도 적용되는 내용이다.

 

지인들은 알겠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젊은 예술가들을 배출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콩쿠르 참가들보다 이러한 콩쿠르를 운영하고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재단에 존경을 표한다. 결과적으로 장르가 살아남아야 천재들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유서 깊은 콩쿠르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등 생존을 위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 또한 인상 깊었다. 언젠가 문화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동기부여를 다시금 느꼈다.

 

 

 

예술과 정치


 

다큐멘터리는 예술과 정치가 과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이는 반클라이번 재단을 탄생시킨,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의 일화를 통해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반 클라이번은 냉전 당시 소련에서 개최된 콩쿠르에서 미국인의 신분으로 우승했다. 그리고 그는 카퍼레이드부터 국가적 영웅의 대접을 받았다. 이유는 바로 냉전 시기였기 때문이다. 소련 한복판에서 미국인이 우승을 했기 때문에 당시 미국인들은 소련에 대해 승리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예술이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소련에서는 피아노 광풍이 불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소련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많이 배출되었고 이는 현재의 러시아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좀 더 무거운 정치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스포츠계에서는 국제 대회에 러시아 국적 선수들의 참가를 제한해야 한다는 격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는 곧 예술계로도 퍼졌다. 그리고 세계적인 콩쿠르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도 이 같은 논란을 피해 갈 수 없다. 러시아 국적의 피아니스트들의 참가를 허용할지 여부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도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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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러시아 국적 참가자를 제한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들끼리 포웅을 하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 단순한 경연대회가 아닌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상향을 보여주었다.

 

 

 

하늘에 있는 예술가들을 위한 연주


 

불안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콩쿠르 본선 무대. 참가자들의 상기된 표정과 결과에 따른 기쁨과 슬픔, 아쉬움의 표정. 힘을 다해 연주하는 숭고함이 느껴지는 임윤찬의 연주. 누구를 위해서 연주를 하냐는 질문에 하늘에 있는 예술가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연주를 한다는 인상 깊은 인터뷰를 남긴 임윤찬. 저 세상 재능이라는 심사위원들의 평가. 임윤찬의 강렬한 눈빛.

 

이번 영화를 통해 미지의 세계였던 클래식과 콩쿠르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꼭 한 번 임윤찬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전혀 새로운 음악 다큐멘터리이다.


“계속 이 음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저 음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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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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