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에르베 튈레展 - 제 3의 감각을 깨우는 전시

감각 너머로
글 입력 2023.11.1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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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순수한 그림



그림이 이토록 천진난만할 수 있을까? <에르베 튈레展>의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받은 인상이었다.

 

심지어 에르베 튈레는 예순이 넘은 연배가 지긋한 노년의 작가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이제 막 태어난 순수한 아이의 눈망울을 들여다보는 듯 했다.


자유로운 드로잉,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형형 색깔의 향연은, 침잠하던 나의 영혼에 다시금 숨결을 불어넣는 듯 했다. 숨죽여 잠들어있던 밤하늘에 또다시 불꽃이 일렁였다. 마치 에르베 튈레는 나에게 소리를 치는듯 했다. "다시 깨어나"라고!


이처럼 강렬한 인상을 받은 건 오랫동안 순수미술을 한 개인적 배경이 한몫했다. 특히 에르베 튈레와 나는 작업스타일이 굉장히 닮았는데,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순수함, 호기심, 창의적인 시도를 보며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에르베 튈레의 그림은 활어처럼 펄떡이는 감정의 결정체였다. 본디 감정이란 복잡다단하여 인지조차 어렵기에, 튈레의 그림에 담긴 감정을 형용할 수 있는 표현이 명쾌하게 떠오르진 않았다.

 

그러나 기쁨, 호기심, 열정, 희망, 우울, 불안, 절망 등 각양각색의 뜨거운 감정이 생생한 붓터치에 녹아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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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가 아닌 '창의 발상가'


 

에르베 튈레는 1958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광고회사에서 아트디렉터로 10여 년간 일을 한 뒤, 90년대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였다. 1994년 어린이책을 처음으로 출판하였고, 현재까지 80권이 넘는 책을 발표하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에르베 튈레는 단지 책 출판에만 전념하지 않고, 현장에서 아이들과 직접 만나서 소통하며 워크숍 및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점이다.

 

내가 예술의전당의 한가람미술관 전시장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우연히 에르베 튈레의 사인회가 열리고 있었다.

 

자국이 아닌 타국의 아이들까지 직접 만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사인을 해주는 튈레의 모습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튈레는 작가가 책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와, 그의 애독자인 아이들과의 소통하는 즐거움을 아는 진정으로 살아숨쉬는 창의 발상가였다.


에르베 튈레를 작가가 아닌 발상가라고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그의 유명한 감성놀이 책 '색색깔깔'은 모순적이고 상식을 깨는 단어를 조합하여, 그에 걸맞은 그림을 소개한다. '빨간 레몬', '노란 바다', '하얀색 피'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단어를 서로 연결하여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창의적인 발상은 한창 성장기인 아이들에게 비상한 두뇌활동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어느덧 뇌가 굳어진 성인들에게도 참신한 영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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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은 시각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에르베 튈레는 아이들에게 책을 단순히'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의 책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책을 꾹꾹 누르기도 하고, 책장과 함께 손뼉을 치게 된다. 책 속의 안내 문구와 그림을 따라가면서, 점입가경의 광경에서 두 눈을 뗄 수 없다는 듯 흠뻑 빠져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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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은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으로 완성된다”, “그림책은 예쁜 그림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담아내고 표현해야 한다.” - 에르베 튈레

 

<에르베 튈레展>은 오감을 자극하는 것 이상으로 잠재된 창의성을 깨우는 전시였다.

 

'빨간 레몬'을 보며 혀끝이 시린 게 아닌, 난생처음으로 눈이 시큼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책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나의 전형적이고 무딘 사고방식에도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에르베 튈레의 전시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그 너머의 감각을 깨울 수 있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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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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