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한 입 파먹기 시리즈] 한국의 미, 브라질의 미 - ② “우리는 식인종이다”

‘다른 종족을 먹어 치워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글 입력 2024.01.0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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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편에서는 ‘한국의 미’를 찾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을 다루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식민 지배로 손상된 한국 예술을 재정의해, 근대화 과정에서 겪은 상처에서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죠. 35년간의 식민 지배.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과제가 남아있을 정도로 한국인의 정신에 큰 상처를 남긴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지배 역사가 300년이면 어떨까요?

 


[크기변환]Desembarque de Cabral _Oscar Pereira da Silva.jpg

브라질 원주민의 관점에서 본 브라질 '발견'의 순간. Oscar Pereira da Silva의 그림.

 

 

 

브라질이 브라질이 아니던 시절에


 

한국의 약 열 배나 되는 기간동안 브라질은 포르투갈과 그 외 유럽 국가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습니다. 브라질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조금 복잡한데요, ‘브라질’이라는 나라 이름의 유래가 이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포르투갈은 브라질 영토에서 가장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 경작품인 브라질 나무(염료 나무)에서 지금의 나라 이름을 따 왔습니다.

 

다시 말해 현대의 브라질이라는 국가는 원래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1500년 포르투갈이 ‘발견한’ 나라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죠. 그 이전에 살던 수백, 수천의 원시 부족의 삶은 기록으로 남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지배를 받으며 브라질 사람들은 오랫동안 ‘본토의 것은 원시적이다’라는 유럽 열강의 가스라이팅을 받아왔습니다. 같은 종족을 먹고, 옷을 입지 않으며, 부족 단위로 사는 것은 미개한 것이라는 주장이죠. 자연스럽게 유럽의 것, 서구 열강의 것이 더 좋은 것이고 더 고급의 것이라는 시선이 만연하게 됩니다.

 

그러니 독립 이후 근대에 들어선 브라질의 문화적 과제는 ‘유럽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크기변환][포맷변환]Pintura de Theodor de Bry baseada no relato de Hans Staden que retrata um ritual de canibalismo.jpg

한스 스타덴(Hans Staden)의 기록을 바탕으로 Theodor de Bry가 그린 브라질 원주민 부족의 식인 풍습.

 

 

 

식인종임을 인정하다


 

식인주의. 동족을 먹어 치우는 무시무시한 행위입니다. 의식적이기도 하고, 생존 전략에 따른 것이기도 한하죠. 앞으로 브라질이라 불리게 될 그 아름다운 땅에 포르투갈인들이 첫발을 내딛던 순간에도, 몇 원주민 부족에는 이런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928년 브라질의 문인 오스바우지 지 앙드라지(Oswald de Andrade)는 엄청난 선언을 합니다.

 

 

오직 식인주의만이 우리를 단결시킨다


 

[크기변환][포맷변환]manifesto antropofago.jpg

오스바우두 지 앙드라지, '식인주의 선언' 전문

 

 

핵심은 이렇습니다. 식인주의는 실제로 존재했고, 그것은 브라질의 자랑스러운 문화적 관습이라는 것이죠. 이것을 ‘식인주의 선언’이라고 합니다.

 

브라질은 여러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게 된 사회로 성장했고, 오히려 그렇기에 외부(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문화적 요소를 ‘먹어 치워’ 더 나은 것, 즉 브라질의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식인주의 선언의 주된 주장입니다.

 

이는 ‘우리를 지배했던 유럽의 주류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만 말하는 기존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식인주의의 개념은 빠르게 브라질의 모더니즘을 이끌며 예술계에 확산되었습니다.

 

 

[크기변환]프랑스인 02.jpg

<내 작은 프랑스인은 얼마나 맛있었나>는 브라질 땅에 도착했다가 낙오되어

식인 부족 사회에 들어가게 된 백인 프랑스인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브라질의 식인주의를 보여주는 영화 한 편


 

이런 ‘문화적 식인주의’를 조금 더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1971년 영화 <내 작은 프랑스인은 얼마나 맛있었나(이하 ‘내 작은 프랑스인’)>입니다.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선교단의 일원이었던 한 프랑스인이 낙오되어 어떤 원주민 부족 사회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 부족은 다른 식인 부족의 침략을 받고, 프랑스인은 약 일주일 후 부족의 제물로 바쳐질 운명에 처합니다.

 

그는 결국 처형되고, 잡아먹힙니다. 그의 좋은 부분을 부족 사람들이 먹고 흡수할 수 있도록 말이죠. ‘먹어 치워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는 식인주의의 개념이 눈앞에 명확히 보여지는 영화입니다. 놀랍게도 한스 스타덴이라는 독일인이 약 수개월간 식인 부족 사회에서 생활하며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실화를 기반한 픽션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분류되는 브라질의 ‘모더니즘’ 기간(1922년~1960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따라서 시대적으로는 모더니즘의 이후인 ‘트로피컬리즘’ 작품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그 내용에 모더니즘의 핵심 개념인 식인주의를 잘 보여줍니다.

 

모더니즘을 닮은 트로피컬리즘 작품이라… 네, 트로피컬리즘은 바로 브라질의 모더니즘, 즉 브라질의 근대화 시기에 나타난 의견들을 그 뿌리로 합니다.

 

 

* 3편에서 계속

 

 

류나윤_컬쳐리스트.jpg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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