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영영 이지를 잃어버리는 이 감각을 차라리 몰랐어야 했다. [만화]

글 입력 2023.11.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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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웹툰 <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사랑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

 

절대 떨어지기 싫은 사랑, 늘 첫 만남처럼 설레는 사랑, 우정 같은 사랑, 기다려 주는 사랑, 헌신하는 사랑, 희생하는 사랑, 신뢰하는 사랑, 질투하는 사랑…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정의가 달라서 사랑이 인류 보편적 감정으로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랑의 모습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사랑은 강력하다는 것이다. 전쟁통에도 비둘기에 편지와 마음을 담아 날려 보내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떨어지는 아이를 초인과도 같은 힘으로 붙잡게 만들고 눈비를 맞으며 얼마 동안이고 기다리게 만든다. 전쟁도, 중력도, 날씨도 사랑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이 남자의 이름은 ‘차결’이다. 성은 ‘차’, 이름은 ‘결’. 외자다. 차결, 이 남자는 지금 백절불굴의 사랑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그의 적수는, 시간이다.

 

 

 

무한한 기회와 후회와 재회



첫 만남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우연히 열아홉의 차결은 같은 버스에서 동갑내기 태권도 유망주인 ‘남지오’를 만난다. 아무도 없는 버스에서 왜인지 그 앞에 앉아 말을 걸어본다. 평소 같지 않은 용기를 느낀 것. 말 그대로 첫눈에 반했다.

 

차결과 남지오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연애를 시작한다. 부모님을 잃은 차결은 소위 말하는 양아치였지만 지오를 만나며 안정을 찾아가고 태권도 선수로 승승장구하는 지오를 보며 10년간 날마다 애틋이 사랑을 키워갔다.

 

그러나 지오는 차결의 학창 시절 악연 ‘박우진’에게 모종의 이유로 살해된다. 차결은 숨이 멈춘 지오를 안고 자신이 대신 죽게 해달라고 연신 소원한다. 그러고는 다시, 열아홉의 차결로 눈을 뜬다.

 


그리고 내 업보로 널 잃게 된 순간, 남은 평생 같은 건 의미 없어졌다. 죽자고. 여기서 죽어버리자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소원이 이뤄졌다.


- <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 72화

 

 

이제부터 차결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주어진다. 돌아온 차결은 또다시 지오와 사랑하고, 이번에도 지오는 스물아홉에 박우진에게 살해당하며, 차결은 자신이 죽는 순간 열 아홉으로 회귀해 10년을 반복한다. 이 무한한 시간의 루프에서 차결은 지오를 살리기 위해 셀 수 없는 10년을 살고 매 10년이 끝날 때마다 무한히 후회하면서도 또다시 제 목숨을 끊어 지오와 재회한다. 가늠할 수 없이 고인 소회를 말하지도 못한 채 차결은 썩어간다.

 

그러나 이번 생의 지오는 다르다. 그녀는 꿈을 통해 전생의 기억을 찾기 시작한다. 결국 차결의 무한한 10년을 알게 된 순간, 또 하나의 결심이 우뚝 선다. 이번에는 그녀가, 그를 위해 죽기로. 오랫동안 이어진 외로운 시간에서 차결을 구해낼 수 있을까. 그 결말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마지막 화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무엇이 차결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타임 루프 물이라니, 솔직히 어느 장르에서나 쉬이 생각할 수 있는 귀하지 않은 소재 아닌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YUJU 작가의 웹툰 (이하 ‘내죽결’)이 타임 루프를 다루는 방식은 독특하고 귀하다.

 

‘내죽결’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것은 동그란 말풍선 속 대사가 아닌 사각 박스에 적힌 명조체의 내레이션이다. 그리고 거의 9할의 내레이션은 지오의 시점에서 제시된다. 그것도 차결의 10년을 깨달은 후의 지오가 과거를 회상하며 읊조리는 톤의 내레이션이다.

 

다시 말하면, 암울한 미래에 대해 작가는 아주 초반부터 끊임없이 말한다는 것이다.

 


있지 차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나는 그때 마냥 좋았거든. 너랑 있는 게 좋아서 그저 방방대기 바빴잖아. 네가 그때 어떤 심정으로 거기에 있었는지 알았더라면 눈치없이 실실대진 않았을 텐데. 넌 어떻게 날 보고 웃을 수 있었던 거야? 뭐가 널 억지로 웃게 만들었어? 이젠 그러지 않아도 돼.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 <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 8화

 

 

내레이션을 통해 독자들은 차결에 한층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듯이, 매주 공개되는 화를 읽을 때마다 차결과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라는 걸 인지한 순간부터 독자들은 끝없는 불안과 무력감에 휩싸인다. 그 불안과 무력감이 그림자라면 차결과 지오의 사랑은 빛이었다. 둘의 사랑이 너무 아름답고 동시에 무용했기 때문에 독자들의 해피엔딩에 대한 강한 열망과 불안은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결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지오는 하나뿐인 빛이었다. 적극적이고 인정이 많아 언제나 등 돌리는 차결에게 손을 내밀었다. 차결은 지오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웠다. 마지막 남은 할머니까지 돌아가시자 지오는 차결의 가족을 자처했다. 지오는 차결에게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럴수록 차결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결핍해졌다.

 

  

과거만 후회하며 살았던 내게, 너는 미래를 기대하는 법을 알려줬다. 매번, 매번, 더 나은 내일을 말해줬다. (중략) 내 유일한 자랑. 평생의 행운. 너도 모르는 네 별명은 점점 늘어갔다.


- <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 72화

 

 

그러나 운명은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운명이다. 정해진 결말 앞에선 차결이나 독자들이나 속수무책이니. 결국엔 너는 죽을 것이고 우리는 헤어지게 될 것이다. 만화처럼 정해진 결말에 몇 번이고 좌절한 차결의 심경에 가장 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YUJU 작가는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비현실적인 시간여행에서 이렇게까지 이입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섬세한 스토리텔링 방식 덕분이라고 하겠다. 

 

그렇게 ‘내죽결’의 차결은 여타 일반적인 타임 루프 물의 주인공보다 몇 배는 애틋하고 안쓰럽다. 

 

모 네티즌이 댓글에서 설파했듯, 이렇게까지 둘의 해피엔딩을 바란 작품이 없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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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지오를 특별하게 만드는가.



‘내죽결’이 단순히 차결의 서사만 보여줬다면, 이렇게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죽결’은 흔한 타임 루프 물에서 흔히 간과되는 부분을 건드린다.

 

그래, 타임 루프를 했다고 치자. 그럼 기존의 세계는? 그 세계에서 주인공은 이전 시간으로 돌아갔다지만, 그렇다면 남은 사람들은?

 

이번 생의 지오는 차결과 함께한 수많은 10년을 기억해 낸다. 기억 속 차결은 지오를 살려내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열아홉으로 회귀한다. 하지만 회귀가 반복될수록 방아쇠의 무게는 가벼워졌다. 지오가 아직 죽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이 틀어지면 차결은 자살했다. 어떤 생에서 지오는 죽기 직전까지 자살한 연인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또 어떤 생에서는 차결이 없는 여생을 살아야 했다.

 

차결이 수많은 10년을 살아오는 동안, 지오는 그보다 월등히 오랜 시간을 반복해 왔다.

 


기억을 찾은 너는 사랑스럽지만 네게서 한순간을 지울 수 있다면 그건 반드시 직전 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 <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 97화

 

 

지금까지 지오의 철저히 지오의 시점으로 진행된 ‘내죽결’이었기에 지오가 받았을 충격이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번 생의 지오는 차결보다 괴로울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기 자신 때문에 막장 인생을 사는 연인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모든 곤두박질을 기억해 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생의 지오는, 이 시간의 굴레 속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희망을 말한다. ‘희망 끝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던 차결에게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얘기한다. 

 

이번 생의 지오는 차결에게나, 독자들에게나 유일한 믿는 구석이다. 정의롭고 다정한 우리의 지오가 이번 생만큼은 해피엔딩으로 끝내주기를 바라게 만드는 호걸이자 승부사다. 말도 안 되는 기적을 기어이 걸게 하는 지오는 차결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하나뿐인 빛이자 희망이다. 그런 지오를, 차결이든 독자들이든,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억겁의 시간에도 변하지 않는


  

차결과 지오의 사랑은 서로를 야위게 했다.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약점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랑으로 차결과 지오는 한없이 강해졌다. 서로의 목숨에 배팅할 배짱은 없는 좀생이가 되면서도 너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제 목숨 따위는 본체 않고 던져버리는 것이 그 둘이었다.

 

 위 인용한 문장들 어디에도 ‘나’는 없다. 오로지 ‘너’ 뿐이다. 기억을 되찾은 지오는 제 괴로움보다 차결의 공허함을 늘 몰라줬던 사실에 미안해했고, 그렇게 좌절하고 무너졌던 차결은 지오에게 자살하는 모습을 보인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망한 내 인생보다 다친 네 다리를 걱정하는 것. 29년간 굳혀온 내 정의보다 너의 마음을 우선하는 것. 내가 살기보다 네가 살기를 바라는 것. 그냥 사는 것도 아니라 행복하길 바라는 것. 

 

지오와 차결은 항상 자신보다 서로가 더 소중했다.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항상 강해졌다. 승부사였던 남지오도, 몇백 년을 버텨온 차결도, 변함없이 이번 생만큼은 너보다 내가 죽길 바랐다.

 

우주적 강적 앞에서조차 그 사랑은 강력해서 결국 마지막에 남은 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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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이 다른 둘의 ‘지오’


 

 

[지오 2] 枝吾/支梧

1. 명사 맞서서 겨우 버티어 나감.

2. 명사 서로 어긋나거나 상치됨.

 

 

지오와 차결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한쪽은 촉망받는 유망주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성장한 대한민국 간판 스포츠 스타. 한쪽은 얼굴에 피어싱이 잔뜩 박힌, 고깃집이나 조폭 기업에서 일하며 옥탑방에 거주하는 그냥, 남자. 완전히 다른 결이다. 지오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보호받을 때 차결은 함부로 내밀 수 있는 버리는 카드로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다.

 

그래서 둘은 자꾸 지오2한다. 아주 오랫동안 이별하기도 하고 결혼을 약속하기도 하고 어쩔 땐 네가 죽고 어쩔 땐 내가 죽고. 어긋나고 꼬여버리는 것이 운명인가, 싶다.

 

그럼에도 둘은 지오1한다. 몇 번을 돌아와도 이 잔인한 운명의 굴레에 맞서 버티어 나가기를 선택한다. 어긋나는 운명 속 유일하게 합치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마음일 것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차결이고, 남지오니까. 시간이라는 순리와 인간의 선택에는 분명한 권력 차이가 존재하나 그 사실이 바로 이 이야기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승산 없는 게임을 포기하지 않는 알량한 집념, 솔직히 말하면 욕심인 그 독한 마음이 사랑이니까.

 

그래, 사랑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무모하고도 기똥찬 힘을 준다.

그래서 전쟁도, 중력도, 날씨도, 그리고 시간도 사랑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것만 있다면, 못 할 짓도 없을 것이다.

 

자. 이제 지오와 차결이, 마지막으로 어떤 ‘못 할 짓’을 저지르는지 확인할 차례다. 이야기는 완전히 클라이맥스에 있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서로를 살리고 죽일 것인가.

 

이번에야말로, 둘은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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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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