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멀리서 보면 희극인 인생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세비야의 이발사

유쾌한 희극 오페라
글 입력 2023.10.27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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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희극 오페라로 손꼽히는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로지나를 사랑하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의 재산을 노리는 후견인 바르톨로 박사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기발하고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으로 로지나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알마비바 백작의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17세기 스페인 세비야, 알마비바 백작은 아름다운 로지나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로지나의 후견인 바르톨로 박사의 경계로 접근조차 할 수 없다.

백작은 오랜 친구이자 만능 재주꾼, 거리의 이발사 피가로에게 도움을 청해 가난한 학생 린도로로 변장한다. 로지나 역시 린도로에게 반해 서로 사랑에 빠지지만, 바르톨로 박사도 고용인 바질리오를 이용해 로지나와 결혼하려는 궁리중이다.

영리한 피가로의 계획대로 술 취한 군인, 음악교사로 변장한 백작과 로지나는 결국 야반도주를 약속하지만 이를 엿들은 바르톨로 박사가 그날 밤 당장 로지나와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데..
 
과연 엇갈린 인물들의 종착지는 어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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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이발사>는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오귀스탱 카롱 드 보마르셰(1732-1799)의 연극 ‘피가로 3부작’의 제 1부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오페라를 만든 작곡가는 무려 열 명이 넘어가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의 작곡가 조이카노 로시니 버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를 풍자하는 유쾌한 스토리, 빠른 전개와 경쾌한 멜로디는 물론, ‘나는 이 마을의 만능 재주꾼 Largo al factotum’, ‘방금 들려온 그대 음성 Una vece poco fa’와 같이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아리아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1막과 2막 피날레에서 솔로, 2중창, 3중창을 거쳐 6중창까지 발전한 선율이 다시 합창과 합류하며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피날레를 이루는 장면을 들으면(이런 식의 점층법을 ‘로시니 크레셴도’라고 부른다) 이 작품에서 합창이 희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오페라 공연은 처음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탈리아어로 이어지는 대사들과 가곡, 합창들이 – 물론 바로 옆 화면에서 자막이 나온다 - 매우 신선하고 새로웠다. 특히나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귀에 익은 아리아 ‘나는 이 마을의 만능 재주꾼 Largo al factotum’이 연주되는 부분에선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당시의 거리를 직접 걷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오페라에서 테너는 일반적으로 젊음의 패기와 열정을 상징한다. 그래서 로지나에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백작은 테너 배역이다. 단단하고 깔끔했던 알마비바 백작 역의 테너 음역이 개인적으로 특히 매력적이었다.
 
이발사 피가로 역시 젊고 패기에 넘치긴 하지만 돈을 아주 좋아하고 돈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시민사회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능청스런 음색의 바리톤에게 이 역할을 맡긴다. 기지와 계략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운명을 개척해가는 로시니 희극의 여주인공들(로지나, 안젤리나, 이사벨라)은 연약하고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소프라노보단 대개 메조소프라노 배역을 맡는 경우가 많다. 이번 공연의 경우 하녀인 베르타 역에 메조 소프라노, 로지나 역에 소프라노 배역이 주어졌다.

로지나와 함께 도망치기 위해 백작은 한 번은 술 취한 병사, 또 한 번은 음악교사로 변장해 로지나의 집을 찾아오지만 번번이 들통나버린다. 백작의 정체가 들통난 이후 이를 중간에서 말리려는 피가로, 시치미를 떼는 로지나, 자신을 속였다며 길길이 날뛰는 바르톨로 박사와 소란을 듣고 찾아온 군인들까지 한바탕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각자 자기 입장과 말만 쏟아내는 왁자지껄한 상황을 합창으로 유쾌하게 표현해냈다.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결국 마지막 방법으로 피가로와 백작은 천둥번개 요란한 밤에 사다리를 이용해 몰래 로지나를 탈출시키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이마저도 로지나와 결혼하려고 바르톨로 박사가 불러들인 공증인과 바실리오에게 발각되고 만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바실리오는 백작에게 매수되어 바르톨로 대신 백작의 결혼식 증인이 되고, 뒤늦게 쫓아온 바르톨로가 발을 동동 구를 때 모두는 그의 욕심을 비웃어 주며 사랑하는 두 연인의 해피엔딩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인생사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그 때문일까? 지독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비극에서도, 우스꽝스러운 희극에서도 우린 쉽게 우리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시종일관 우스꽝스러운 실수와 언행을 연발하는 희극 속 인물들이 어떤 면에선 가장 인간적이게 느껴진다. 위선과 가식을 걷어낸, 가장 솔직하게 이기적인 우리의 모습을 어쩌면 그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닐까.

대혁명 이후의 시민 정서를 담뿍 담은 로시니의 개성적인 인물들은 우리에게 커다란 웃음을 선물한다. 남녀노소 가족과 함께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오페라 공연이었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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