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끝을 향해 달려가며 : 뮤지컬 속 ‘죽음’의 의미 [공연]

글 입력 2023.12.0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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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죽음과 자살을 근원적으로 탐구하는 내용이 있어 우울한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다루는 만큼, 특정 뮤지컬의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문화예술 작품은 모호하고 근원적인 개념을 추상화시키는 작업을 동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행복, 사랑, 자유, 죽음, 이러한 것들 말이다. 이처럼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개념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을 담은 채 정의를 내려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문화예술이다.


나는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 중 뮤지컬을 관람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뮤지컬 속에서 이러한 개념들이 어떻게 표현되고 정의되는지를 탐구해보고 싶었다. 여러 가지를 고민하던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죽음’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그리고 장르를 막론하고, 수많은 예술 작품들은 죽음을 다뤄왔다. 뮤지컬도 특히 그러하다. 죽는 등장인물이 없으면 서운해질 정도로, 대부분의 뮤지컬 작품들 속에서 ‘죽음’은 빠질 수 없는 소재이다.


대다수의 뮤지컬 속 주인공들은 죽음으로 그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와 함께 뮤지컬의 막은 내려간다. 뮤지컬은 하나의 삶을 표방하고자 하는 것일까? 인간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누구든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만큼 예외 없이 모두가 이해할 수밖에 없는 소재라는 뜻이다.

 

뮤지컬 속 인물이 죽으면 그의 이야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듯이, 죽음이라는 것은 삶의 끝을 선고하는 일이다. 우리는 몇십 년에 걸쳐 이어지는 한 인물의 생을, 몇 시간이라는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엿보고 오게 된다.

 

 

 

 

물론 신기하게도 죽음으로 시작하는 뮤지컬도 있다. 당장 생각나는 작품은 <엘리자벳>, <모차르트!>, <랭보> 정도인 것 같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모두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음이 예견되어 있지만, 이미 죽어버린 인간들은 죽음이 더 이상 예견의 영역이 아니다. 이미 끝나버린 누군가의 생을 되돌아보기 위해,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통해 그들의 삶의 시작을 표현한다.


장르의 종류를 떠나서, 우리는 자연스레 예술 작품 속에서의 죽음이라는 결말을 비극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왜 수많은 예술가는 죽음을 비극적 장치로 사용해왔을까? 왜 죽음은 비극적이라고 해석될까?


첫 번째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죽음은 삶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더 이상 이 세상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암흑으로 향해가는 것이다. 물론 사후세계의 실존에 관한 여러 견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추측일 뿐, 우리 중 그 누구도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알 수 없다. 미지의 세계. 마치 블랙홀의 수평선 너머로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두 번째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은 고통을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 명을 다해 편히 떠나가는 죽음도 있겠지만, 대개 우리가 지켜보는 죽음은 병이 원인이거나, 어떠한 사고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뮤지컬도 편히 죽는 죽음보다는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보여주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이러한 죽음을 목격하면서 본능적으로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누군가의 죽음으로 느낄 다른 이들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거나 그에 이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타인의 영원한 상실을 맞이하게 된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며 공감할 수도 있고, 혹은 뮤지컬을 보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애정을 가지게 된 가상 인물의 죽음을 목격하며 직접적으로 느끼는 상실감이 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죽음은 그 대상에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갑작스레 닥쳐오는 비극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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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죽음은 비극으로 해석되기에 오히려 통쾌하게 느껴지는 죽음도 있다. 바로 악역의 죽음이다.

 

뮤지컬 <데스노트>의 라이토. 주인공임에도 그가 죽는 장면에서는 슬픔보다는 오히려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정의’라는 명목으로 여러 사람을 가차 없이 죽이는 모습은 영웅보다는 악역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었을까?

 

죽음을 권력처럼 휘두르던 그였기에, 죽음은 그에게 안겨줄 수 있는 유일한 비극이자 형벌 같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맞이하는 악인들의 죄책감 없는 죽음은 참 찝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의 죄에 비해 죽음은 너무나도 가벼워서일까.)


뮤지컬 속에서는 다양한 죽음이 묘사되지만,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주인공들도 적지 않다. 죽음은 비극이라 하지만 그들에게는 삶 그 자체가 이미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실이라는 지옥 속에서 살 바에야 차라리 미지의 세계로 향하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죽음은 오히려 해피엔딩일 수도 있지만, 제삼자의 시야에서는 그들의 죽음 또한 비극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는 죽음을 택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그들의 삶, 그리고 괴로움을 피하고자 또 다른 괴로움을 택하는 모습을 애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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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는 뮤지컬 속에서 수많은 비극을 목도한다. 죽음의 긍정적인 의미를 떠올리려고도 해보았으나, ‘삶의 끝’, ‘타인의 영원한 상실’이라는 단어들의 조합을 보고 결국 죽음은 비극적 장치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죽음은 인생의 당연한 순리임에도 우리는 이를 초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과 슬픔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죽음’은 애초부터 비극의 의미를 담은 원형(archetype)이라는 것이다.


뮤지컬을 관람할 때 그곳에 완전히 몰입해서인지, 죽음이 가득한 뮤지컬을 보고 나올 때면 기분이 축 가라앉을 때도 적지 않다. 나는 그만큼 수많은 삶을 애도하고 나오는 것일까. 가상의 인물에게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의 인생의 끝을 지켜보며 마음껏 슬퍼하고 싶다. 죽음이 필연적인 비극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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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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