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린 잘못되지 않았어. 변하지도 않을거야. [만화]

글 입력 2023.10.1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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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웹툰..? 너 그런 거 봐..?”

 

여기에서 ‘그런 거’라면 뭘 말하는 걸까. 첫 번째로는 선정적이고 음란한 ‘서비스컷’들이 매 화마다 등장하는 19금 성인 만화일 것이고. 두 번째로는 ‘남자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정상’에서 벗어난 음지의 만화를 말하는 거겠지. 후자에 대한 반박은 할 생각이 없다. 진입 장벽이 높은 장르인 만큼 불편한 독자들에게 강요하거나 억지로 떠먹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그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자의 이유로 BL 웹툰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모든 BL 웹툰이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제대로 된 BL 웹툰을 접한 적이 없는 것 뿐이니 안심하라.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하는 웹툰은 19금 ‘서비스씬’도, 어디 슈퍼모델에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남자들의 피지컬도, 차가운 도시재벌남의 집착도 ‘여성스럽’고 여리여리한 남자의 눈물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작품이다. 그저 누구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릴 법한 어리고 유치한 다섯 명의 고등학생의 첫 사랑을 감상할 수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쩔쩔매고 부끄러워하는 고등학생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면, <남의 BL 만화>를 추천한다.

 

승택은 엘리트 집안의 외동 아들로 외고 진학을 준비하는 모범생이다. 승택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 가족, 성적 등 놓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규빈은 가족모임 교통사고로 부모님과 동생을 잃었다. 규빈은 혼자 살면서 학교생활과 미래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아 놓을 것들이 없다. 그런 승택과 규빈이 만나 승택은 놓을 수 없는 것들을 놓고 싶어 졌고 규빈에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생겼다. 규빈과 승택은 서로 다른 서로의 결핍을 채워준다. 승택은 규칙을 깨고 같이 바다에 뛰어들 수 있는 자유로움을 규빈에게서 찾았고 규빈은 적막한 빈 집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를 승택에게서 찾았다. 그래서 둘은 아무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졌다. 

 

승희는 여장이 취미인 외톨이다. 가족에게도 여장과 성적 취향을 들켜 왕따를 당했고 아버지는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 커뮤니티에서 가끔 남자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지만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는다. 수혁은 마찬가지로 작중 가족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오지 않는 캐릭터다. 여자친구는 해마다 사귀어 왔지만 정작 사랑하는 감정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며 부모님의 연애 이야기를 들을 때면 성을 내는 남고딩이다. 승희와 수혁은 감정의 결핍이라는 공통사가 있다. 꾸준히 사람을 만나왔지만 그 안에서 공허함을 느낀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어색한 사이에서 얼떨결에 시작된다. 하지만 작중 스토리가 진행되며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가족에게 커밍아웃 후 버림받은 아픔을 나누며 서로를 치유한다. 

 

인범은 수혁의 사촌으로, 다섯 인물 중 가장 삐뚤어진 사랑을 하는 중이다. 인범은 승택과의 싸움으로 머리를 다쳐 자신이 좋아했던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 그 기억의 파편을 모으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수혁의 집에 눌러앉으며 승희와 가까워지고 승택-규빈에도 접근한다. 결국 인범은 자신의 기억을 잃게 한 승태가 사실 자신의 첫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에 빠진다. 자신이 승택을 좋아했기 때문에 저질렀던 만행(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겠다)을 떠올리며 미성숙한 자신을 뉘우친다. 마지막에는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 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바로잡으려 하는 모습으로 인범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남의 BL 만화>는 BL 만화의 클리셰에 갇혀있지 않는다. <남의 BL 만화>에 완전무결한 인물은 없다. 하다못해 조연으로 등장하는 아저씨 캐릭터조차도 10년 동안 애매한 관계를 완결짓지 못해 불똥이 애꿎은 고등학생 5인방에게로 튀게 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만화는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미완성이기에, 그리고 미완성인 채로 만화는 끝났기 때문에 앞으로 이 인물들이 얼마나 채워질지 궁금해할 수 있었다. 작품 내내 아이처럼 악쓰고 징징거리다가도 점점 솔직해지고 용기 내어 각자만의 방식으로 장애물을 넘어가는 고등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엄마랑 아빠가 날 방치해서 내가 잘못된 것 같아 미안하다고. 내가 아직 어려서 이러는 거라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시간 지나면 변할 거라고 하셨어.”

“너도 그렇게 생각해?” -수혁-

 

“아니.”

“우린 잘못되지 않았어. 변하지도 않을 거야. 난 알아.” -승희-

 

필자가 모든 BL 웹툰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대사고, <남의 BL 만화>를 가장 사랑하는 BL 만화로 만들어준 대사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한 사랑도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 고등학생들의 사랑을 잘못되었다, 불완전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건 수혁의 부모님도, 그 어떤 어른도 인간도 할 수 없다. 오직 본인들 만의 영역이다. 이 작품은 다분히 고등학생스러운 다섯 명의 1년을 그리면서 동성애는 주변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잘못됐거나 어린 행동이거나 잠깐의 방황 같은 것들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승택과 규빈, 승희와 수혁, 그리고 인범이 우당탕탕 유치한 사랑싸움을 했던 것처럼, 그러나 끝에는 서로에게 치유받고 서로로 인해 성장한 것처럼, 우리 대부분은 그런 사랑을 하지 않는가?  지극히 평범한 사랑 이야기, 하지만 약간은 더 애절하고 안타까운 이야기, <남의 BL 만화>에서 즐겨 보길 바란다.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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