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리어왕'을 재해석한 이연주의 '더 리어'

글 입력 2023.12.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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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 King Lear>은 리어 왕과 세 명의 딸 고네릴, 리건, 코델리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로스터와 그의 아들들과 같이 다양한 인물의 서브플롯이 함께 진행된다. <리어왕>은 인간의 오만함, 권선징악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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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이연주의 리어에는 ‘THE’가 붙는다. 이연주만의 리어라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리어왕을 해석하고 재창조하고 있는가? 1막 4장에 나오는 리어의 대사가 이 작품의 핵심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Who is it that can tell me who I am?”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자란 누구란 말이냐?”


이연주는 리어왕, 고네릴, 리건, 코델리어, 알바니 공작, 콘월 공작, 프랑스 왕, 글로스터 백작, 에드가, 에드먼드 등 작품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로 시시각각 분한다. 극은 도입부와 결론부를 제외하고 총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리어와 세 딸의 이야기, 두 번째 에피소드는 글로스터와 두 아들의 이야기, 세 번째 에피소드는 에드먼드와 리건, 고네릴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여러 인물의 입을 통해 발화되는 이 질문은, 누가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것인지 또는 누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게 한다. 더불어 이때, 언어유희가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리어”에서 시작해 “고네릴”, “리건”, “코델리어”로 변해가는 명칭 속에서 “리어”가 있다. “고네릴”에서는 “릴”에, “리건”에서는 “리”에 “코델리어”에는 “리어”에 “리어”가 있다. 결국 창자(唱者)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미치광이 리어”라고 말하며 자신을 정의한다.


이렇게 자신이 누구인지 찾은 리어는 질문을 “나는 누구인가?”에서 “당신은 누구인가”로 바꾼다. 리어는 자신을 찾는 순간 저승을 향해 가기 시작하며 이에 삼도천이 등장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이 있는 삼도천에서 리어는 자신을 망각해 가며 “당신”에 관해 묻는다. 이때 리어는 “나는 너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한 리어는 다시 경계선에 서서 자신(自身)이 아닌 타인(他人)에 관해 물으며, 타인과의 마주함을 통해 또다시 자신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는 곧 정반합의 과정으로 리어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변화해 가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덧붙여 이때 등장하는 ‘삼도천’이라는 명칭은 극의 포문을 연 소녀가 놀던 익명의 강이 삼도천이었음을 알려준다. 즉, 극은 순수한 어린아이로 시작하여 노인으로 끝나며, 그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변화 양상이 있다는 점에서 작품은 묻는다. 우리는 자신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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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리어왕>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폭풍우 속에 있는 리어에는 큰 초점이 가해지지 않는다. 믿었던 딸들에게 배신당한 리어가 창(唱)을 하는 순간 음악이 고조되지 않으며 마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일처럼 담담하게 진행된다. 물론, 딸들에 대한 리어의 분노와 저주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리어로 변한 소리꾼은 절규하지 않는다. 음악은 세 딸과 리어에게 서로 다른 장단을 부여한다. 이후 딸들의 장단이 바뀌는 것을 통해 딸들의 실제 모습과 리어에게 아부하기 위해 포장되어 있던 모습을 음악적으로 대비시킨다. 작품은 기존의 <리어왕>을 대표하는 장면이 아닌, 해석자(소리꾼 이연주)의 눈으로 재구성한 <리어왕> 속에서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이끌어내고, 이를 음악적으로 강조한다.


본 작품의 백미는 영상 자막의 사용이다. 음악극에서 메인 플롯과 서브플롯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문학은 메시지를 숨길 수 있지만, 음악은 직관적인 만큼 그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가령, 뮤지컬에서는 스티븐 손드하임이 처음으로 가사의 멜로디와 대비되는 언더스코어(underscore)를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이를 드러냈다. <더 리어>에서는 작창이 메인 플롯이 되고, 영상 자막이 서브플롯이 된다. 영상 자막은 소리꾼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보여주기도 하고, 상황을 설명하거나 줄거리 전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소리꾼의 작창이나 대사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이야기를 펼치기도 한다. 이렇게 관객은 소리꾼의 이야기와 자막의 이야기를 동시적이면서도 교차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다층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더 리어>는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당기지 않는다. 관객을 작품 밖으로 밀어내며, 그들 스스로 사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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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이연주

 

 

소리꾼 이자람을 필두로 여러 소리꾼들이 외국 문학과 판소리를 결합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와 판소리의 이번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리어왕>을 단순히 각색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닌 <리어왕>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중심으로 작품을 재해석하고 있다. 이에 한국 전통예술인 판소리로 풀어나가는 서양의 이야기는 전혀 이질적이지 않으며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의태어 · 의성어와 언어유희를 통한 해학, 비범한 인물로서의 리어가 아닌 평범한 인물인 리어를 그리며 판소리의 미학을 여전히 고수한다. <더 리어>는 철학적 해석과 분석이 돋보이는 공연으로서, 판소리의 미감을 가지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새롭게 리어를 풀어가기 위한 노력과 고찰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다만, 이런 형식의 경우 기존의 <리어왕>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선행되어야지만 본 공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다. 덧붙여, 영상을 사용하는 데 있어 소리꾼이 서 있는 무대의 뒤편에서만 영상 자막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소리꾼의 앞에도 투명한 스크린이 설치되어 방향이 전환되어 가며 영상 자막이 사용된다면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리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판소리와 셰익스피어의 이상적인 만남을 이끌어낸 <더 리어>. 이후 이연주 소리꾼을 통해 <햄릿>과 <오셀로>가 어떻게 새롭게 탄생할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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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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