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경계 없는 예술이 있는 곳 - 세르주 블로크展 [전시]

글 입력 2023.11.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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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블로크_포스터(세로).jpg


 

미술관 문을 열자마자 보인 핑크색 벽의 작품을 보고 센스가 넘치는 예술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이름은 세르주 블로크, 그는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머와 재치를 겸비한 예술가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뉴스, 매거진, 책들과 협업한 작품들, Fine Art, 미디어 등 약 150여점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보는 사람까지도 기분 좋게 만드는 통통 튀는 작품과는 달리 그는 마음 아픈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알자스 지방의 콜마르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이 지역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해있어 한 세기 동안 네 번이나 국적이 바뀌었다. 또한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가족들은 차별을 받기도 하고, 신분을 속이며 살았다.


전시 초반 부분에 작가의 어린 시절이 소개되어 있어 그의 성장 배경을 알고 나니 그림이 겉으로는 귀엽고, 재치 있게 느껴지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유년 시절 느꼈던 생각을 그림으로 풀어내 우리에게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선으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낸 그의 작품 중 인상 깊었던 몇 작품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나는 기다립니다


나는 기다립니다_ⓒSerge Bloch.png

 

<나는 기다립니다>라는 작품은 선 하나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세르주 블로크의 특징이 제대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그림에서 주인공은 트리를 꾸미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기도 하고, 성인이 되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배우자와 다투기도 하고, 자식들의 안부 연락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 작품은 붉은 실 하나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나이에 따라서 기다리는 대상이 달라지는데 나는 인생의 순간, 순간에서 무엇을 기다렸나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그림처럼 어린 시절에는 머리맡에 놓인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기 위해 매년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세르주 블로크의 작품은 우리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듯하다.


아이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부모를 표현한 부분에서는 나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내의 임종 장면이었다. 아내의 임종을 붉은 실이 끊어질 듯 말 듯하게 표현한 부분이 작가의 높은 표현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마지막 끝맺음도 신선했는데 끝이라는 단어를 끈으로 바꿈으로써 또 다른 시작을 연상시킨다는 점이 좋았다. 끝이라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끝이 아닌 끈으로 표현함으로써 모두가 두려워 애써 피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무겁지 않게 가볍게 전달한 것 같아서 마지막까지도 기분 좋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그림책 _적_ⓒSerge Bloch.jpg

전시회를 통틀어 가장 여운이 깊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전쟁 중 참호 속에 홀로 남은 병사의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적>은 호평을 받으며 벨기에, 타이완에서 상을 받았고, 국제 엠네스티 권장도서로 선정되었다.


작품은 검정, 빨강, 카키를 메인 색으로 사용하여 복잡한 드로잉이 아닌 선으로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다. 병사는 전투 지침서에 묘사된 적의 모습을 상상한다. 전투 지침서 속에 묘사된 적은 동정심이라고는 없으며,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괴물로 표현되어 있다. 


전투 지침서에 나온 것을 토대로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적을 상상해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결국 전쟁은 소수 권력자들의 싸움이지만 그 싸움에 동원되는 병사들은 권력층에 의해 몇 년간 사랑하는 가족들도 못 본채로 서로를 죽이며 전쟁을 이어간다. 피해를 보는 건 죄 없는 시민(병사)들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세르주 블로크의 어린 시절이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친구와 싸우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다툼을 키워 전쟁을 일으킨다. 어린아이들에게 전쟁은 모순된 어른들의 행위로 보인다. 어린 세르주 블로크도 비슷한 감정이었을까. 적에서는 그가 생각하는 전쟁의 무모성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도 나처럼 이런 부질없는 전쟁을 끝내길 원하고 있을까요? 이 전쟁은 누가 시작했으며, 누구를 위한 전쟁인 걸까요?

 

 

 

돌 씹어 먹는 아이


 

[포맷변환][크기변환]돌 씹어 먹는 아이ⓒSerge Bloch.jpg

 


한 아이는 돌 씹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부모님에게 자신이 돌을 씹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부모님도 무언가를 씹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세르주 블로크는 창의성이 떨어질 때면 아들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창의성을 잃지 않으려는 세르주 블로크의 노력이 보였다. 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주자는 메시지를 돌 씹어 먹는 아이라는 캐릭터로 설정해 내용을 풀어냈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돌 씹어 먹는 아이>라는 작품은 아이들에게도 좋은 전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그림체에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니 이보다도 아이들에게 더 좋은 전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전시회 야외사진.jpg

 

 

이외에도 세르주 블로크의 작품들은 하나하나 눈에 담아 누군가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깎아내리는 혐오의 시대에 그의 작품에서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들을 재미있고, 신선하게 풀어내서 기분이 좋아지는 전시였다.


Everybody is creative, not only artists. I think that creativity is everywhere.

예술가 뿐만 아니라 누구나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창조성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세르주 블로크의 전시를 보면 창의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닌 생각보다 우리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붉은 실로 인생을 표현한다든지, 지하철 티켓을 접어 셔츠로 표현하다든지.


앞선 그의 작품들은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세르주 블로크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앞으로 그가 그림을 통해 전할 메시지들이 기대된다.

 

재치 있고, 센스 넘치는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세르주 블로크 전시를 방문해 보길 바란다.

 

 

[임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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