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흥미롭게 엮인 22개의 예술가 아이콘 - 도서 '결정적 그림'

글 입력 2024.06.1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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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읽고 아래와 같이 쓴 적 있다.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신비화된 예술가의 삶이 마케팅적 요소로 소비되어 예술감상 자체가 신비화되고 있다."다.

 

인간은 시각정보를 ‘보고’, ‘판단’한다. 샥터-싱어의 2 요인 이론은 정서(emotion)가 신체적 반응과 그것을 어떤 감정으로 해석하는 인지적 반응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된 논쟁은 무수히 많고 다 소개할 수 없지만,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많은 대중매체에서 묘사하는 '예술적 감상'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생활과 동떨어진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불현듯 내리꽂힌 놀라운 영감'이나,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밀려들어 오는 감동'과 같은 경험으로 예술의 창작과 감상에 대해 논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 쌓아올린 한 인간의 개성이 만들어낸 기적과 성과나 놀라운 발상과 기술이 절묘히 맞아떨어진 결과다.

 

하지만 예술은 종종 신비화된다. 존 버거는 이러한 경향을 반 고흐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우리는 밀밭 그림과 ‘죽기 직전에 그린’ 반 고흐의 그림에 다른 영감을 받는다.

 

왠지 이런 테스트는 껄끄럽게 느껴진다. 왜냐면 일반적으로 예술은 항상 뭔가 신비롭고 좀 더 '고급'인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미술 감상은 인지를 뛰어넘은 어떤 영감을 준다.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하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예술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라는 진실과 "예술은 교양있는 것이다"라는 일부의 진실 사이에서 우리 자신도 자각할 수 있는 심리적 요인과 사회 정치적 요인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결코 예술작품이 위선으로서만 수용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시각정보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대신 그는 예술에 쓰이는 수많은 의도와 예술의 신비성을 꼬집는다. 의도가 신비성으로 덮어질 때 예술은 어떤 정치적 공작으로 탈바꿈한다.

 

오늘 리뷰할 도서, '결정적 그림'은 어떤 면에서 내가 앞서 꼬집은 예술가의 영감과 환상을 자극하는 책이다. 책은 작가의 '결정적 순간'을 맛깔나게 잡아내어 작품세계와 관련시킨다. 저자는 작가의 사생활, 당시 있었던 사건 등을 하나의 단편 소설처럼 부드럽게 엮어 '하나의 완전한 작품세계'로 완성한다.

 

폴고갱은 불멸하는 방랑예술가의 삶을, 샤갈에게는 영원한 순정을, 모딜리아니에게는 부서진 열정을 불어넣는다. 저자가 묘사하는 그들의 삶은 실제 그들의 삶을 포함하고 있겠지만, 그가 묘사한 것처럼 결함 없는 캐릭터로서 완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과감하게 남겨 할 부분만을 남겼다. 데포르메 된 캐릭터처럼, 책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아이콘처럼 각 예술가의 '결정적 캐릭터'를 느슨하지만 새는 곳 없이 묶었다.

 

22명의 예술가는 22개의 아이콘이 된다. 적절하게 과장되고 생략된 캐릭터는 독자들의 집중력을 단숨에 빨아들인다. 좋은 캐릭터와 좋은 작품이 만나 완벽한 캐릭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미술 입문서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책을 제일 먼저 추천할 것 같다.예술가의 개인사를 라이트 하게 써내려가는 방구석 미술관이나, 미술이론을 흥미로울 정도로 녹여내어 적절한 무게감을 유지한 그림 읽는 법 등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예술 교양서가 쏟아나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책은 흥미로운 예고편처럼 독자를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앞서 내가 제시한 글을 고려했을 때, 나의 이러한 태도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저 글을 쓰던 당시의 나라면 이 책을 재밌게 읽었음에도 이 책이 이끌어내는 '신비로운 부분'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꼈을 것 같다. 실제의 고흐보다 고흐 같은 쓴 적 고흐의 작품을 보는 것 역시 예술감상이지만, 고통스러운 교류의 장을 덜어내 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가장 큰 한계라고 생각한다. 화면에 보이는 아이콘이 실제 아이콘이 아닌 것처럼, 캐릭터는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야기할 '불필요한 신비화'보다는 -누군가를 처음 알아갈 때 물어보는 MBTI처럼-, 투박하지만 흥미로운 소개로 제시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저자의 재치있는 스토리텔링에는 어떤 음험한 의도보다는 미술관에서 당황스럽게 서 있는 독자들을 팔을 쿡쿡 찌르면서 하는 애정이 녹아들어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저자가 나열하는 이 이야기들은 불필요한 선입견이나, 현실을 유리시키는 신비로운 재능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결코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소리다. 저자의 재치를 즐거운 초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나는 저자가 재밌게 포장한 놀라운 캐릭터 선물세트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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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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