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검정과 빨강으로 보여주는 신체와 감각 [미술/전시]

국제갤러리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후기
글 입력 2023.10.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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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의 개인전이 국제갤러리에서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 달 가장 먼저 방문할 전시 1순위에 올려놓았다.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가 중 한 명인 아니쉬 카푸어는 그 명성만큼이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한데, 바로 반타 블랙(Vanta Black)에 관해서다.

 

그는 당시 가장 ‘검정 다운 검정’이었던 반타 블랙을 개발한 서리 나노시스템스(Surrey NanoSystems)로부터 군사, 우주항공 분야를 제외한 다른 분야, 예술 분야에서의 독점 사용권을 구입했다. 사용하기 위해 비싼 금액을 지불하는 수준이 아닌 온전한 독점이었기에 예술계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물론 현재는 2019년 MIT 연구진들이 반타 블랙보다 가시광선 흡수율이 더욱 뛰어난 검정색을 개발하였으며 비상업적 활동에 한해 예술가들에게 제공하고 있어 카푸어의 반타 블랙은 2순위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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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 관심이 생긴 것은 위와 같은 이슈로 주목받았던 카푸어의 작품 세계가 과연 어떠할지 궁금해서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그의 반타 블랙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하여 기대하는 마음으로 갤러리를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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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2018, Gouache on paper, 56 x 76 cm

 

 

하지만 K1의 전시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반타 블랙에 대한 흥미는 그의 과슈 작품에 순간 잊혔다.

 

이글거리는 듯하기도 이리저리 튀어 오르는 듯한 강렬한 색채의 선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화면 가운데엔 문과 같은 직사각형의 구조가 있거나 웅덩이가 있는데,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어 시야를 차단한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직접 들어가 몸으로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두려움과 이끌림이 동시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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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의 안쪽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고 반타 블랙을 활용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Non-Object Black〉(2016)과 같은 작품의 검정은 말 그대로 거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얼핏 보면 평면처럼 보이나, 측면에서 관찰하면 입체 구조로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한쪽만을 바라보고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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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ue〉, 2017, Silicone, paint on canvas, 244 x 183 x 110 cm

 

 

전시는 다른 공간 K2에서 이어진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회화 작업과 가운데 설치 작업은 이전 검정 작품과는 또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회화 작품들은 그 바탕이 캔버스라서 ‘회화’로 구분되는 것 같지만, 사실상 부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물감 이외에 실리콘, 섬유 유리 등이 표면 위에 쌓이면서 입체적인 조형성이 나타난다.

 

〈Tongue〉(2017)는 제목처럼 혀의 형상으로 보임과 동시에 실리콘의 녹아내리는 듯 끈적한 질감이 불쾌한 느낌을 준다. 중력을 거스르며 올곧게 선 혀의 끝은 발기된 남근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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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between〉, 2021, Oil, fibreglass and silicone on canvas, 244 x 305 x 62 cm

 

 

다른 작품 역시 신체를 닮은, 혹은 연상시킨다. 엄밀히 말하면 피, 살점, 내장과 같은 신체의 파편이다.

 

특히 〈In-between〉(2021)은 바라보았을 때 매스꺼움까지 느껴진다. 화면 위에 요철을 만들며 분간할 수 없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재료들은 섬뜩함을 빚어낸다.

 

캔버스의 표면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가다듬어진 형상이 되기를 거부하며 실제 공간으로 튀어나오려는 듯 보인다. 이는 현실 사회를 살아가면서 억압되었던, 우리 마음속의 원초적인 욕망과 불안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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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Made〉, 2020, Wood and resin, 106 x 382 x 291 cm

 

 

이러한 생각은 공간 가운데 설치 작품 〈Self Made〉(2020)로 이어진다.

 

원추형의 형상에 남아있는 선적인 자국에 의해 여기에 연결된 목판이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움직임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한 운동은 알 수 없는 물질을 깎아내고, 아래로 그 잔여물들이 흐느적거리며 떨어진다. 이렇게 떨어져 나간 잔여물들은 이를 지탱하고 있는 합판의 각 변에 달린 배수구로 떠내려간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K3의 공간에는 네 점의 대형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역시 신체의 내부 표면, 장기를 닮은 듯한 이 작품들은 바닥에 서 있지 않고 전시 공간 벽면에 붙어있다. 이는 이전 K2에서 본 부조 같은 회화 작품의 연장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표면의 반투명한 거즈는 안쪽 덩어리를 안정적이면서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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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 Self〉, 2017, Silicone, fibreglass and gauze, 336 x 140 x 250 cm

 

 

유독 발길을 붙잡았던 작품은 〈Shadow Self〉(2017)인데, 검붉은 빛깔의 울퉁불퉁하면서 넓은 면이 처음에는 불쾌했지만 어느 순간 편안함을 주었다.

 

내가 여기에 몸을 던지면, 이 덩어리가 아늑하게 날 감싸줄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어쩌면 나라는 주체를 인식하지도 못할 아주 어린 시기의 따뜻한 감각이 떠오른 것일까.

   

이번 개인전에서 카푸어의 검정 작품 뿐 아니라 드로잉, 회화, 대형 조각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일관되게 드러나는 그의 신체에 대한 탐구와 그로부터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체험은 그가 단순히 논란으로 유명해진 작가가 아니란 걸 실감하게 해주었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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