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잃은, 사랑이란 족쇄를 끊어내다 – 태연 ‘To. X’ [음악]

허울뿐인 사랑의 불합리한 관계에 이별을 선언하는, 태연의 미니 5집 앨범 [To. X]
글 입력 2023.12.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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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하는 사랑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이 사랑을 지속하는 게 맞을까?

 

 

 


태연 미니 5집 [To.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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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듣는 K-POP 아티스트 태연이 11월 27일 미니 5집 앨범 [To. X]로 찾아왔다. 이는 2022년 발매됐던 정규 3집 앨범 [INVU] 이후 1년 9개월만에 선보이는 앨범이다. 특히 이번 신보는 태연이 적극적으로 앨범 테마와 가사 콘셉트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수록곡 작사에도 참여해 듣는 이들을 위한 공감과 위로의 정성 어린 메시지를 가득 담아내고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이처럼 태연의 진심이 담긴 미니 5집 앨범 [To. X]는 ‘불합리한 관계와 내면의 취약함에서 비롯된 불완전한 인간상’을 주제로 다각적인 시각에서 곡을 풀어내고 있다. 이때, 총 6개의 곡들은 마치 편지를 읽듯 하나의 대서사로 유기적인 연결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청자들의 몰입감을 한층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 중 타이틀곡 ‘To. X’는 아름다웠던 시작과 달리 결국 스스로를 잃고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사랑에 끝을 선언하고, 과거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태연은 어떻게 이 이기적인 사랑으로부터 벗어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뮤직비디오와 가사 속 그녀가 거쳐온 깨달음의 과정을 따라가보자.

 

 

 


태연 ‘To. X’ (2023.11.27.)



  

 

컴백 2주 전 공개된 미니 5집 [To. X]의 mood sampler 영상 속 태연은 그녀의 연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순간에도 즐겁기보단 어딘가 외로워 보인다. 이후, 잠에 들어있는 연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듯한 장면마저 사실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쓸쓸하게 비춰보고 있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 몇 개의 가구와 그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울만이 남은 방에서 그녀는 홀로 선 채 이렇게 말한다.

 

“나의 일상은, 그에게로 모든 것이 맞춰졌다.”

 

 

 

둘 사이에 오직 ‘너’만 보이는 이상한 관계, 그 깨달음의 순간



3. 태연 'To. X' 뮤비 컷 모음.jpg

 

 

‘To. X’ 뮤직비디오는 자신의 연인이 주도하던 이 사랑의 이상함을 감지한 태연이 그에게 이별을 고하기까지의 서사가 담겨 있다. ‘단점이라곤 없는 게 단점이라던’ 허세까지도 마냥 좋기만 했던 그들의 첫 만남은 이내 우열이 명확한 하나의 권력 관계가 되어버렸고, 그럼에도 ‘좋아했던 만큼 다 맞추려 했던’ 태연은 그를 위해 자신을 버렸다. 사랑이란 세뇌 속에서 상대가 만들어낸 집 안으로 갇혀버린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거울’을 깨뜨리고, 또 회피한다.

 

 

Every day, every night

나로 채우고 싶어

좀 이상해 왜 둘 사이에

너만 너만 보이는 걸까

 

 

하지만 이내 태연은 늘 모른 척, 못 본 척 넘기던 매일의 일기가 재미없고 새벽의 긴 통화마저 피곤하기만 한 이유를 깨닫기 시작한다. 더 이상 이 이상한 관계 속에서 너를 위한 내가 아닌, ‘나를 위한 나’를 가득 채우고 싶다는 것, 즉 상대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에 그녀는 후렴구에 반복적으로 ‘Gonna block you, 불을 꺼 To. X’라는 가사를 등장시키면서 어쩌면 한 때는 서로의 마음으로 뜨겁게 타올랐던, 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헌신으로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것이 다인 이 명목상의 사랑을 끊어내고자 굳게 결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마지막에서 태연은 ‘narcissist’라 적힌 라벨에 불을 붙이는데, 이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편향된 이기적인 연인에게서 도피하려는 것으로도, 상대가 바라던 이상적인 모습만을 보여주고자 자기왜곡에 빠져버렸던 자신의 모순을 직면하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해석이건 공통점은, 과거를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깨달음과 결심에서 비롯된 거센 화마는 곧 ‘집’ 전체를 집어삼키는데,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태연은 드디어 사랑이란 이름의 감옥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신과 자유를 되찾는다.

 

 

 

뫼비우스의 띠: 가해자의 ‘가스라이팅’과 피해자의 ‘구원 환상’



4. 가스라이팅.jpg

 

 

이처럼 태연의 미니 5집 타이틀곡 ‘To. X’의 가사는 가스라이팅을 행하는 상대방에게 휘둘리면서도, 구원 환상에 빠져 자신을 잃어가는지도 모른 채 그 관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만 같다.

 

1938년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 유래된 용어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흔히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주도권을 차지해 특정 인물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의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난 까다롭고 힘든 아이라

그런 피곤한 생각만 한대

...

깜빡거리는

흔들거리는 Light

 

 

태연의 ‘To. X’ 가사에서도 드러나듯, 수평적이지 않은 관계에 이상함을 느낀 그녀에게 상대는 그저 ‘예민한 성격 탓’이라며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리려 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이토록 불안정한 그들의 관계를 흔들거리는 불빛에 빗대어 표현한 가사 역시 가스라이팅을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었다. 특히, 뮤직비디오에서는 그들의 연애가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태연이 깨닫게 되는 시점부터 ‘집’으로 표현되는 그녀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채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렇기에 이를 알아차린 상대는 더 한 광기에 사로잡혀 그녀가 벗어날 수 없도록, 어깨를 눌러 화면 앞 의자에 앉힌 채 강제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반복해서 주입하는 것이다.

 

 

‘나 아님 누가

그런 세상 안아주겠어’

그 말이 그땐 그리

달콤했던 거야 Oh no

 

 

‘내가 아니라면 누가 널 받아주겠어?’와 같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수법으로 상대방을 속여내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가사는 피해자의 내면과도 연결시켜볼 수 있는 측면이 있는데, 바로 ‘나라면 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어’로 대표되는 구원 환상이다.

 

‘Rescue Fantasy’ 혹은 평강공주 콤플렉스라고도 불리는 구원 환상은 ‘타인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정도를 넘어 절망에서 건져내는 구원자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구원 환상에 빠진 이는 '나마저 이 사람을 떠나면 어떡해, 나라도 있어줘야지'와 같은 착각으로 인해 문제가 많은 상대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자발적인 의지로 곁에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정작 구원자가 되어줄 자신은 상대방으로 인해 끊임없이 상처를 입게 된다는 아이러니로 이어진다. 그러니 ‘나 아님 누가 그런 세상 안아주겠어’라는 가사는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상대방의 위선에 속아 넘어가던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지닌 구원 환상이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음을 중의적으로 내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의 끝에서 태연은 뒤집혔던 자신의 세계를 다시 원래 상태로 회복시킨다. 또한, 그에 그치지 않고 상대가 갈구하던 이상적인 모습과 거짓된 사랑으로 점철됐던 집을 스스로 불태우며 자신을 옭아매던 족쇄를 깨부수기에 이른다.

 

 

 

마치며: ‘사랑’의 양면성, 그렇기에 우린 소중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사랑’은 인간의 내면이 이성보다 감정의 작용을 우선시하도록 부추겨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기 어렵게 만드는, 지극히 난해하고도 복잡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가을 오후의 햇빛은 세상 만물에게 소중한 영양분을 제공해주지만, 한여름 정오의 타오르는 태양이 내뿜는 강렬한 열기에 숨이 막혀 죽어갈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때로는 무겁고 버거울지 몰라도, 사랑이 결국 인간을 더욱 인간 답게 만들어주는 따뜻하고 소중한 감정이라는 점까지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곁에 있는 상대를 향한 배려와 존중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 역시 지켜낼 수 있도록 중립을 맞추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 속 진정한 사랑은 결코 ‘나’라는 존재의 상실로 귀결되지 않는다. 만약 위와 달리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좌지우지하는 형태라면, 그건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허울뿐인 사랑일 것이다. 이에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지우고 눈과 귀를 막아 어둠 속에 갇히길 자처할 만큼, 그 사랑은 가치가 있는가? 반대로, 당신이 지금 자신의 입맛에 맞춰 바꾸려 드는 그 혹은 그녀가 당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있진 않은가?

 

부디 이 글이 우리에게 자신의 인생은 오직 본인이 주인공일 때 비로소 완전한 빛을 볼 수 있음을, 그리고 절대 자신이 받는 사랑이 상대를 해칠 권리로 정당화되진 않음을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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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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