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가학적인 예능 “나가라! 전파 소년”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10.0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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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더 콘테스턴트(The Contestant)"가 선공개되었다. 1998년 니혼TV의 방송 “나가라! 전파 소년((進め!電波少年))”을 소재로 제작된 해당 다큐멘터리는 예능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가학적인 기획으로 평가받는 "경품에 응모해서 얻은 것들로만 살아가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가라! 전파 소년, 나스비의 1년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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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라! 전파 소년'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기획으로 인기를 끌던 일본의 리얼리티 예능이다. “버려진 섬에서 탈출하기”, “아프리카에서 유럽까지 히치하이크로 종단하기” 등의 기획이 대표적이며 특히 "경품에 응모해서 얻은 것들로만 살아가기" 코너가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해당 코너는 기획을 알리지 않은 채 신인 개그맨들에게 제비투표 오디션을 진행해 출연자를 정했으며, 여기에서 '나스비'라는 별명을 가진 '하마츠 도모아키'라는 젊은 무명 개그맨이 코너에 도전하게 되었다.


안대와 헤드폰을 낀 채로 이름 모를 방에 도착한 나스비는 모든 옷과 소지품을 압수당한 채 "경품에 응모해서 얻은 것들로만 살아가기" 미션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또한 당첨된 경품의 가격 총합이 100만 엔을 달성하면 성공하는 목표가 주어졌다.


약 2주가 지나자, 나스비는 젤리와 쌀이 당첨되어 젤리 통에 밥을 지어가며 도전을 계속했다. 나스비는 한 달에 약 6,000건의 경품 도전을 꾸준히 진행하였고, 당첨된 물개 인형과 대화하고 밥이 떨어지면 개사료를 먹어가며 도전을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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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가량 쇼가 진행되면서, 나스비는 일본 내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방에 갇힌 본인은 이를 알 리 없었으나 자신의 방의 위치가 공개돼 다시금 안개와 헤드셋을 낀 채 이사를 하는 등 그의 인기는 꾸준히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이사를 간 이유조차 나스비는 알지 못했다.


나스비의 인기에 힘입은 제작진의 기획은 더욱 가혹해지는데, 나스비의 방에 카메라를 달아 24시간 스트리밍을 진행하게 된다. 즉 옷을 입지 않은 그의 성기를 제작진이 실시간으로 스티커로 가려주는 편집 이외엔 아무 정제도 거치지 않은 나스비의 모습을 모든 대중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코너를 시작한 지 약 12개월이 지나, 나스비는 100만 엔을 달성해 도전에 성공하게 된다. 성공한 나스비를 위해 제작진은 한국 여행을 보내주는데, 여행이 끝나자마자 한국에서 강제적으로 다시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에는 사전을 제공한 뒤 '현상에 응모해서 도쿄행 티켓값 벌기"가 코너 주제였다.


하지만 제작진의 예상보다 너무 쉽게 목표가 달성되어 버렸고, 제작진은 나스비에게 알리지 않은 채 목표를 점점 높이다 나스비가 눈치채 코너를 멈추게 된다. 이후 나스비는 도쿄로 돌아와 촬영을 진행하기 위해 옷을 벗고 기다리는데, 그 방은 방송국의 간이 세트장이었고 세트장이 벗겨지며 수천 명 앞에서 알몸을 드러낸 채 축하를 받으며 나스비의 도전이 끝나게 된다.

 

 

 

나스비에게 남겨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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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잇파츠야'라는 문화가 있다. 원 히트 원더더와 유사한 이 말은 개그맨이 크게 히트한 뒤 빠르게 잊히는 현상을 뜻한다. 해당 코너로 대스타가 된 나스비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코너를 진행하며 적었던 일기는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보여준 나스비지만 대중들이 보고 싶은 나스비는 옷을 입은 멀끔한 나스비가 아니었다.


즉 나스비는 순식간에 잊히는 연예인으로 전락하고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 기도까지 할 정도로 정신적인 문제를 겪었다. 그렇게 가장 가학적이고 원초적인 재미가 만든 스타는 끝났으며, 나스비는 이후 주변인의 도움으로 다시 방송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재미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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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부터 국내 예능은 나스비의 사례와 반대로 여러 가지 비판을 받고 있다. 테이블 토크 쇼나 관찰 예능이 주를 이루는 현재 예능에 가장 큰 비판은 '자극적이지 않다'라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많은 시청자가 과거 예능 다시 보기와 자극적인 콘텐츠를 다루는 OTT 제작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역으로 나스비는 최근 인터뷰에서 당시 방송을 직접 시청하며 "저것을 웃으며 보고 있었어?"라고 공포심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일본 내에서도 "나가라! 전파 소년"의 가학성과 인격 모독이 이슈화되며 2002년 해당 프로그램은 종영하였다.


정말 대중들은 나스비의 어떤 모습에 재미를 느꼈을까. 혹은 발가벗은 나스비를 비웃던 대중과 프로그램의 잔인함을 비판하는 대중은 과연 얼마나 다른 대중이었을까. 나스비의 코너를 원초적인 재미라고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정의일까.


이러한 의문은 어쩌면 끝내 해결하지 못할 과제일지도 모른다. 이는 아마 2000년 전에도 콜로세움에서 인간끼리 서로 죽이는 것을 구경하는 대중과 아고라에서 학술 토론을 벌이는 이는 별반 다르지 않았고, 지금의 나스비를 비웃고 가학적인 예능을 비판하는 이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신효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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