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애틋이 여길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글 입력 2023.12.2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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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면, 전혀 뜬금없는 것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게 되는 순간이 있다. 시간차를 두고 찾아오는 가벼운 깨달음 같은 것들. 깨달음이라고 하니 어딘가 거창해 보이는데, 사실 좀 더 러프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의미부여라고도 할 수 있다. 가령 올 여름 대전에서 본 영화와, 보름 전 홍대 소극장에서 본 공연 사이의 연속성을 소심하게 주장해본다든가.

 

지난 7월, 엄마가 스쳐지나가듯 말한 영화 하나 때문에 우리 둘은 생전 가본 적도 없던 한 독립영화관에 갔다. 사실 독립영화를 부러 찾아볼 정도의 영화광은 전혀 아닌데, 무슨 바람이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무언가를 보고 싶다고 먼저 말하는 일이 잘 없어서였을까, 매사 미루는 게 특기인 내가 홀린 듯 상영관을 찾고 예매까지 했다. 처음 이 영화의 존재를 알아온 건 엄마인데, 나중엔 오히려 내가 꼭 같이 가야한다며 며칠 전부터 신신당부를 하고 당일엔 예쁘게 옷까지 차려입고 나섰다.

 

그렇게 도착한 약 1시간 거리의 영화관에(상영관이 적어 가장 가까운 곳이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관객은 우리까지 딱 셋. 예상보다도 더 조촐한 분위기에 순간 얕은 걱정을 했다. 이 분위기에 걸맞도록 마이너하고 어려운 내용이면 어떡하지, 난 지극히 대중적인 입맛을 가졌는데, 하고. 사실 걱정보다는 살짝 기가 죽은 것에 가까웠다. 다른 일정 하나 없이 이걸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까, 막상 영화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답지 않게 유난 떨며 계속 엄마를 부추겼던 것이 무안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저 생각들은 기우에 그쳤다. 크레딧이 올라간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당탕탕 초행길을 헤매며 영화관을 찾아간 것이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며 엄마와 나는 만족스러운 감상을 나눌 수 있었다. 상실 이후의 삶을 잔잔히 그려내던 그 영화는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데, 특히 인상깊던 건 주인공이 쇼팽의 심장이 안치된 대성당을 방문한 뒤 친구와 관련된 일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조국에 묻히고 싶다는 쇼팽의 유언을 따라, 국경을 넘어 그의 심장을 가져온 누이의 심경을 곱씹던 주인공. 그의 독백을 듣고 있자면, 주인공은 왜 하필 그 발음도 낯선 바르샤바라는 곳으로 떠나오게 됐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며 포착해낸 점들과 이후 이리저리 찾아본 정보들을 덧붙여, 나는 글을 썼다. 바르샤바는 여러 가지의 죽음을 애도할 줄 아는 도시였다. 자신의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진 도시이자, 잠시 모든 일상을 멈추고 그들을 위한 묵념을 올릴 줄 아는 도시, 그리고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던 쇼팽의 심장이 잠든 도시. 그 공간의 의미를 되짚고 문장을 적어내려가며, 먼 이국의 도시는 그렇게 내 마음속에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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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해 12월, 예상치도 못한 계기로 그 흔적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아트인사이트의 최신 글들을 둘러보다가, 쇼팽의 삶을 요약한 연극과 연주회를 결합한 형태의 공연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 것이다. 연말의 마지막 보름 정도에만 짧게 올리는 이 극은 매년 각기 다른 음악가들을 테마로 하는데, 공교롭게도 하필 올해 선정된 음악가가 쇼팽이었다. 지난 여름의 기억이 떠오르며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일정이 맞지 않아 문화 초대를 향유할 수는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라도 꼭 이 공연은 보러 가고 싶었다. 딱딱한 일대기를 넘어 극의 형태로 쇼팽의 생애를 따라가는 동시에, 혁명과 녹턴 등 좋아하는 곡들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또 홀린 것처럼 예매를 했다. 사실 그의 음악과 생애에 대해 일반적인 수준 이상으로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었다. 홍대를 자주 드나들었지만 소극장을 방문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쇼팽과 그의 도시에 대한 기억이 유독 마음에 남아 있었다. 바르샤바에 심장을 묻은 음악가라는 드라마틱한 요약으로 말이다. 그 기억 하나가 나를 그곳까지 이끌었다.

 

병약했던 그의 삶에 지난하게 따라 붙던 죽음의 기운, 그럼에도 연인 조르주 상드와 함께하며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음악을 써내려간 쇼팽. 과연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섬세히 살펴 본 그의 생애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동안 내 안에 쌓아온 바르샤바의 이미지와 어느 정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르샤바. 곳곳에 드리운 죽음을 죽음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남겨진 이들의 정성들인 추모와 삶에 대한 진취로써 죽음에 대한 진정한 애도를 가능케하는 도시. 그 입체적이면서 정적인 활력은 극에서 그려지는 쇼팽의 모습과 이어지며 연결 고리를 이루었다. 삶이 그를 몰아가면 몰아가는 대로, 평안케 두면 두는 대로, 그 속에서의 자신을 항상 피아노를 통해 아름다운 형태로 기록한 사람. 아름다운 연주와 함께 그 자취를 부드럽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극의 막바지였다.

  

그렇게 관람을 끝낸 후, 어쩌면 억지스럽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순간을 이루는 모든 것이 어딘가 운명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연극은 현장성이 중요한 장르다. 지나가버린 극을 원 형태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딱 그 시간, 그 공간에 내가 있을 수 있던 것 그리고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던 것은 여러 가지의 연결 고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영화를 보게 된 것, 그걸 보고 글을 쓸 결심을 하게 된 것, 그렇게 바르샤바라는 도시에 대해 찾아보고, 그 도시가 가진 여러 겹의 죽음의 속성을 유심히 기억해두게 된 것, 평소에 즐겨 들으며 귀에 익혀 둔 쇼팽의 음악이 몇 곡이나마 있어 언젠가 그 연주를 직접 듣고 싶다고 생각해오던 것, 연극이라는 형태에 익숙하지 않던 내가 하필 두어 달 전 생전 처음으로 홀로 소극장 연극을 보러 가서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된 것.

 

만약 이 여러 고리들 중에서 하나라도 빠져 있었다면 이 극에 이렇게까지 강한 끌림을 느끼지 못했을 테다. 어쩌면 극에 대한 정보를 마주하고서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을지도 모르고. 그런 생각을 하자 극이 선물해준 순간들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며 마음 속에서 또 다른 고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이 소극장의 존재를 알았으니 이곳에서 올리는 또 다른 공연들을 앞으로는 좀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될 것이고, 직접 듣는 연주의 즐거움을 알았으니 또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예전보다 조금 더 예민하게 잡아채겠지.

 

드물고 느릿하게라도 예술을 계속해서 찾게 되는 건, 결국 이 고리들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즐거워서인 것 같다. 애틋이 여길 수 있는 것들이 하나 둘씩 더 많아지고, 세상을 조금 더 꼼꼼히 들여다보고 구석구석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기분이 든다.

 

하필 저 공연을 보러 간 날에는 딱 예쁠 정도로만 사락사락 눈이 내렸고 덕분에 그에 얽힌 모든 것들이 조금 더 강한 존재감을 가진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리들은 나를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어떤 다음의 세상으로 데려가줄까. 즐거운 가정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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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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