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발레 '지젤'에 대한 새로운 시각 ① [공연]

-'광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글 입력 2023.10.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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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마른 나뭇잎이 떨어지는 계절, 가을이 돌아왔다. 가을의 쓸쓸한 분위기는 어딘가 발레 <지젤>을 연상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사투가, 가지 끝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낙엽과 비슷한 것만 같다.


 

 

지젤 알아보기



  테오필 고티에 극본, 아돌프 아당 작곡의 <지젤>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발레 작품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에게 큰 사랑을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극은 총 2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인물로 시골 처녀인 지젤, 귀족이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알브레히트, 숲 속의 처녀귀신인 윌리들, 그리고 처녀귀신의 여왕인 미르타가 등장한다. 


  <지젤>이 대중에게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여타의 발레 작품과 차별적인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함축할 수 있다. 첫째는 ‘광기’라는 키워드이다. 1막에서 지젤은 알브레히트에게 첫눈에 반해 그와 사랑을 나누지만, 이내 그가 귀족일뿐더러 약혼자까지 있음을 알게 된다. 이에 지젤은 배신감에 휩싸여 분노의 춤을 추다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한다. 해당 장면에서 지젤 배역을 맡은 무용수는 단정하게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친 채 격렬하게 몸부림치는데, 이렇게 정화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이 여자주인공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은 일반적인 발레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장면이다. 그렇기에 해당 장면은 관객들로부터 ‘매드신’이라고 불리며 극 중 가장 인상깊은 장면으로 종종 뽑히곤 한다. 두 번째는 ‘춤’이라는 키워드이다. 2막에서 처녀귀신이 된 지젤은 숲 속에서 미르타 및 윌리들과 지내게 된다. 이때 미르타와 윌리들은 숲을 찾아오는 행인들에게 저주를 내리는데, 그 내용은 끝없이 춤을 추다가 지쳐 죽는 운명에 빠지는 것이다. 지젤의 묘를 찾은 알브레히트 또한 윌리들에게 발각되어 저주에 걸린다. 그러나 여전히 알브레히트를 사랑했던 지젤은 미르타에게 그를 죽이지 말라고 애원하며, 동이 틀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알브레히트를 보호하여 끝내 그를 살리게 된다. 해당 2막에서 지젤과 알브레히트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 그리고 미르타를 비롯한 윌리들이 흰색 튜튜(tutu)를 입고 군무를 하는 장면은 <지젤>의 하이라이트 장면이자 <지젤>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처럼 춤이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아름다운 무용을 선사하는 것이 <지젤>의 또 다른 매력 요소라고 분석해볼 수 있다.


  해당 연재물에서는 이렇게 ‘광기’와 ‘춤’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어 <지젤>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지젤>이 지니는 가치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이번 1편에서는 ‘광기’에 대해, 그리고 이어지는 2편에서는 ‘춤’을 주요 소재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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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광기의 표현-카르멘, 살로메와의 비교



  발레나 오페라 등 극 형태의 예술에서 여성 인물의 ‘광기’는 종종 등장하는 요소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르멘>과 <살로메>로, 두 주인공은 모두 자신의 광기를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집단 공동체를 파국에 빠뜨리는 인물들이다. 문학비평가 일레인 쇼월터는 오페라 작품에서 이러한 인물들이 형상화된 원인을 근대 유럽 사회의 성 고정관념과 결부하여 해석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여성적 질병』에서 당대의 정신의학이 남성의 비이성적 특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들을 제시하지만, 여성의 광기에 대해서는 섹슈얼리티의 과잉이라는 요인만을 제시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의 해석에 부합하게 카르멘과 살로메는 광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이며, 그저 필연적으로 처단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위험한 인물들로 제시될 뿐이다. 


  그러나 일레인 쇼월터의 해석 방식과는 다른 모습의 여성적 광기를 표현하는 작품이 바로 <지젤>이다. 그 까닭은 1막의 전체 흐름 속에서 지젤이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 원인이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지젤은 시골에서 자라며 누군가와 깊은 사랑을 나눈 적이 없는 순박한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 알브레히트가 의도적으로 접근하면서 지젤은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지만, 지젤은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음을 알게 된 후 광기에 사로잡힌다. 해당 지점을 통해 극작가는 지젤을 단지 섹슈얼리티의 과잉적 인물로 그려내지 않으려 했으며, 오히려 그녀가 광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관객에게 납득시키려 하였다. 이는 카르멘이나 살로메의 극작가와는 분명히 상반된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광기에 빠진 여자주인공들이 행하는 행동에서도 두드러진다. 카르멘과 살로메의 광기는 주변 사람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유도하는 양상을 지니고 있다. 카르멘은 돈 호세가 유혹에 빠지고 투옥 생활을 하게 만들며, 살로메는 요하난의 사랑을 갈구하다가 그의 목을 끝내 베어버리고 만다. 이처럼 이들의 광기는 사회로부터 제지당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악으로 형상화되며, 그 결과 각 인물이 살해당하는 과정은 극 속에서 정당화된다. 그러나 지젤이 광기에 빠진 후 저지르는 행동들은 공동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다가 심장 문제로 죽을 뿐,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자의 두 인물이 타인을 미혹하여 함께 불행으로 끌고 가는 위험한 존재로 묘사된다면, 지젤은 홀로 우울한 감정들을 감내하는 고독한 인물로 묘사된다.


  위와 같은 지젤의 면모는 2막에서 더욱 강조된다. 물론 지젤은 알브레히트와 애증의 관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녀는 그를 징벌하는 대신 그를 개과천선 시키기 때문이다. 알브레히트가 지젤의 묘를 찾아왔다가 윌리들의 저주에 걸리게 되자, 지젤은 그가 죽도록 동조하거나 방관하는 대신 끝까지 알브레히트의 힘을 복돋아준다. 이러한 지젤의 진심에 감동한 알브레히트는, 지젤로부터 삶이라는 축복을 선물받음과 동시에 과거 자신의 오만했던 모습을 반성하고 지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결국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지젤의 묘를 껴안고 크게 비통해한다. 이러한 장면은 타인을 구원하고 발전시키는 지젤의 긍정적인 면모를 강조하며, 이를 통해 작가는 광기의 속성을 지닌 여자주인공이더라도 꼭 위험한 존재는 아닐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극 작가는 광인에게 여전히 푸대접을 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광기에 대한 당대 사회의 인식적 한계를 여실히 비판하고 있다. 이 점은 지젤의 묘의 특성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지젤이 납골당이나 묘지에 묻히지 못하고 아무도 찾아오려 하지 않는 숲속에 묻히게 된 점이 그러하다. 그 원인은 지젤이 광기에 사로잡혀 죽었기에 불경한 영혼이 깃들었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광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광인을 집단으로부터 배제하려 하는 마을 공동체의 모습은 <카르멘>과 <살로메> 속에서 여자주인공을 질타하는 집단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지젤>은 여성적 광기가 무조건적인 비난의 대상은 아님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를 인정하지 않는 구시대적 공동체를 비판함으로써 ‘광기’라는 키워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분석해볼 수 있다.

 

 

 

광기를 구성하는 라이트모티프



  <지젤>의 작곡가 아돌프 아당은 바그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렇기에 그는 발레 음악 최초로 라이트모티프를 활용하게 되는데, 지젤의 광기를 보여주는 1부 마지막 장면, 이른바 ‘매드씬’ 또한 이러한 라이트모티프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매드씬의 음악적 구성은 아래와 같다.


[고통 모티프 -> 사랑 모티프 -> 서정적이지만 긴장감을 주는 음악 -> 고통 모티프]


  이와 같이 매드씬 내에서 총 두 가지의 라이트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때 ‘고통’과 ‘사랑’이라는 모티프의 이름은 아돌프 아당이 명명한 이름은 아니지만, 본 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이와 같이 명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사랑 모티프는 극에서 총 세 번 등장하는 모티프이다. 지젤이 알브레히트와의 사랑에 대한 꽃점을 치지만 사랑이 실패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장면, 지젤이 알브레히트의 진실을 알게 된 후 과거의 사랑을 회상하는 장면, 그리고 지젤이 미르타에게 알브레히트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 세 장면은 모두 슬픔이 내재된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에 느리고 서정적인 선율로 구성되어 있다. 더불어 이는 끝까지 알브레히트를 미워하지 못하는 지젤의 헌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동기로 활용되기도 한다. 다음 모티프인 고통 모티프는 지젤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리고 춤을 추던 알브레히트가 지쳐 쓰러지는 순간에 등장하는 모티프이다. 모티프가 사용되는 상황에 맞게 현악기가 격렬하게 흥분한 듯한 선율이 특징적이다. 해당 동기는 각각의 주인공들이 극단의 고통을 느끼는 순간 흘러나온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는 ‘이해’를 상징한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알브레히트가 타의에 의해 광란의 춤을 추다가 지쳐 쓰러지는 순간, 지젤이 자신 때문에 분노에 찬 춤을 추다가 느꼈을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당 모티프는 알브레히트가 지젤을 그리워하는 심리를 설명해주는 모티프이기도 하다.

 

 

-다음 편에 계속

 

 

[고은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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