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애호하는 당신과, 미술적 대화록 with 강수민 에디터

강수민 에디터님과의 1:1 티타임
글 입력 2023.09.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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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괜찮으시다면 만나고 싶어요


 

우연히 사랑에 빠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글이라면.


나에겐 약 5초 정도. 첫 문장을 읽자마자 좋아하고 싶어지는 글들이 있다. 당연하지만 그런 글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미술을 다루는 글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니 우연한 기적을 만나면 오래 곱씹는다. 문장 하나하나를 정독하고 단어 사이의 여백을 가늠하며, 그가 어떤 감정으로 이 글을 썼을지 상상한다.


나는 곧 짧은 편지를 쓴다. 이렇게 다정하고 단단한 글을 쓰는 당신과 괜찮다면 대화하고 싶다고. 흔쾌히 돌아온 대답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로 작은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강수민 에디터를 만났다.


 

[List] 여러 번 곱씹은 강수민 에디터의 글

나의 정체성, 내 기억 속의 과일 조각

덮어씌우기와 벗겨내기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운가?

애도하는 예술가

다양한 결의 갤러리들

 

 

#2 써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


 

그와 대화를 시작한 나는 조금 들떠있다. 우린 꽤 다르지만 충분한 공통점이 있다고 느껴졌기에.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미술을 좋아한다는 것.



주현(이하 J) 만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일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수민(이하 S) 내 글을 읽는 사람의 실체가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브런치에도 글을 쓰는데, 공감 같은 거로 읽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실체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내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글을 쭉 쓰면서 책도 내고 강연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스타트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웃음)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외로운 일인지 안다. 흔한 ‘좋아요‘ 하나 없이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곳. 그래서 온전한 나의 글을 쓸 수 있는 곳. 그는 어쩌다 이곳에 글을 쓰기로 선택했을까.



S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나 부담이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일기, 메모장, 블로그 비공개글, 미니홈피.. 쭉 글을 썼어요. 회사에서도 글을 썼고요. 퇴사를 하고 다음 스텝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어요. 저처럼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글을 쓰는 곳이더라구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주기나 분량에 대한 부담도 적어서 지원했어요.


-

 

J 아트인사이트에 처음 썼던 글 기억하시나요? 하이디 부허와 크리스토-잔 클로드에 대한 글이었죠. 저도 좋아하는 작가들이라 반가웠어요. 그런데 저는 한 번도 둘을 엮을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요. 한 사람은 뜯어내고 한 사람은 포장을 하는데 어쩌다 둘을 엮게 되셨나요? 그리고 첫 글은 아무래도 그 당시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라고 생각해요. 이 글을 쓰신 계기가 있으셨나요.


S 글을 쓰려면 소재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전시를 열심히 보러 다녔어요. 사실 제 브런치에는 하이디 부허에 대한 글 따로, 크리스토-잔 클로드에 대한 글을 따로 썼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미술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어떻게 하면 나의 독특함을 알릴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둘을 엮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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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부허,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 크로이츠링겐 벨뷰 요양원, 1988

 

 

S 완전 반대죠. 그런데 둘 다 뭔가에 저항한다는 것이 비슷한 것 같았어요. 하이디 부허는 안쪽에서 뜯어내요. 내부를 뜯어낸다는게 약간 그로테스크 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크리스토는 바깥쪽에서 덮어져서 만들어지는 어글리함이나 매끈해 보이는 질감이 흥미로웠어요.


 

하이디 부허는 형상 위에 새로운 피부를 덧씌워 뜯어내는 작가다. 대표적으로 최근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는 ‘집’을 다룬 작품들이 있다. 그는 공간을 라텍스 바른 천으로 전부 덮고, 굳으면 벗겨낸다. 주로 자신이 억압을 느꼈던 남성들의 공간이 소재가 된다. 그곳을 온통 손으로 매만져 덮고, 벗기기 위해 온힘을 다한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함께 작업하던 부부 예술가다. 거대한 조형이나 건축물을 천으로 감싸 덮는 작업을 했다. 그들은 평생을 바쳐, 자본이 중심이 되는 미술과 다른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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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L'Arc de Triomphe, Wrapped" 1961-2021, Photo: Wolfgang Volz © Christo and Jeanne-Claude Foundation

 


J 사실 저도 크리스토-잔 클로드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든 적이 있어요. 현대미술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싸다는 걸 먼저 떠올리잖아요. 뭔가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방금 저항이라고 말씀해주셨듯이 그들은 자본이나 소비되는 방식에 저항했죠.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일시적인 작품. 이것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는 영상이었는데 의견이 분분하더라고요.


S 개선문도 논란이 됐잖아요.


J 맞아요. 자기 것도 아닌데 이기적이란 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예술적이라고 하기도 하고. 근데 이렇게 다양한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_


J 글 쓰시는 스타일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수민님 글은 굉장히 쉽게 술술 읽혀서 너무 좋았거든요. 항상 그렇게 글을 쓰는 분들이 부러웠어요. 저는 글을 쓸 때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스타일이고, 작가에 대해 모두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강박도 있는데요. 한 글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모든 책을 빌려왔다던 일화를 봤어요. 글을 쓰실 때도 그런 준비를 거치시나요?


S 김환기에 대한 강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에세이를 쓸 때는 편하게 써도 되지만 작가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정확한 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이나 기사를 많이 참고하는 편이에요. 들었기 때문에 아는게 아니라 책을 읽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 책들을 쭉 읽으면서 직접 공통점을 찾아내서 나만이 설명해줄 수 있는, 알기 때문에 말하는 것들. 이렇게 충분히 소화를 시켜야 더 쉽게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알고 있는 내용도 한 번 더 체크하고요.


J 보통 소화시키기 위해 얼마 정도 걸리세요?


S 좀 여유 있는 주에는 주말에 미리 하고 월, 화요일부터 글을 써요. 저는 수요일에 글을 올리거든요. 짧게 짧게 대강 써두고 글을 쓴 다음 퇴고를 길게 하는 편이에요. 시간이 지나서 또 보고, 또 보고, 소리 내서도 읽고. 확실히 퇴고할수록 더 보이는 게 있더라구요.


J 저도 하루종일 퇴고하는 편이에요. 저는 핸드폰으로도 보고, 소리 내서도 읽는데 진짜 다르게 보이는 게 많더라구요.


S 어미 하나 다른 것도 크잖아요. 그 미세한 차이가. 일할 때 선배들이 꼭 인쇄해서 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면 보이는 게 다르다고. 그런데 저는 집에 프린트기가 없어서 있으면 뽑았을 텐데 (웃음)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을 만나면 꼭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묻는다. 모두가 글을 잘 쓰는 시대에 느끼는 생각들, 에디터로 일한다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던 나는 수민님께 색다른 관점을 얻는다.



S 사실 다른 사람의 글을 자주 읽지는 않는 편이에요. 진짜 잘 쓰시는 분들의 글은 읽지만. 너만의 글 쓰는 스타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남의 글을 너무 열심히 읽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을 들었거든요.


J 미술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글을 쓸 때와 다른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있으셨나요?


S 오히려 더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저절로 멋있다는 말이 나왔다.




#3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미술에 대하여


J 예술을 업으로 삼고 계시다는 것을 봤어요. 좋아하는 미술도 일을 할 때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저는 전시를 볼 때 가끔 일처럼 느껴지고, 작품에 대해 감동을 느낀다 보다는 이건 이렇게 디피했네 이건 이런 식으로 소개하네 할 때도 많거든요. 어떻게 쭉 애정을 유지하세요? 노하우가 있다면 궁금해요.


S 일할 때 힘든 순간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퇴근하고 주말이 되면 계속 전시를 보러 가게 되더라구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애정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작가에 대해 공부하면 미술이 더 좋아지거든요. 내가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어떤 작업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가 점점 알게 되었을 때. 알게 될수록 진짜 사랑에 빠진 것 같을 때가 있어요. 더 알게 되면 더 좋아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미술 자체도 하나에 대해서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게 너무 좋아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장르가 있을까요? 이렇게만 봐야한다는 게 있는게 아니라 미술은 훨씬 다양한 대화를 풀어나갈 수 있잖아요.



좋아하는 것을 얘기할 때 반짝이는 얼굴. 그 반짝임을 나눠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묻는다. 수민님은 베로니카 라이언과 가브리엘 오로즈코에 대해 얘기한다.

 

베로니카 라이언은 내가 처음 읽은 수민님의 글에 나온 작가다. 카리브해의 몬세라트 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영국으로 이주한 작가로 이주와 정체성에 관한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수민님이 소개한 과일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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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라이언, "Custard Apple (Annonaceae), Breadfruit (Moraceae), and Soursop (Annonaceae)" 2021, Courtesy the artist, Photo: Andy Keate

 

 

음식이 한 사람의 정체성의 일부로 흡수되는 과정은 당연해 보이면서도 흥미롭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먹는 식재료는 인근 지역에서 나는 것일 확률이 높고, 따라서 수 세대 동안 조상과 가족들이 즐겨먹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서든 땅과 음식과 사람은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

 

작품 커미션을 받았을 때, 그녀는 몬세라트를 생각하며 캐리비안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 과일들을 모티브로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낯선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이주민들에게 온기와 응원을, 위로를 빚어주었다. 묘하게 이국적인 생김새의 과일이지만 런던 광장의 한복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으로써 디아스포라 또한 커뮤니티의 멋진 일원임을, 그리고 그들에겐 런던이 따뜻한 집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_ 수민님의 글 '나의 정체성, 내 기억 속의 과일 조각' 중에서

 

 

S 그리고 또 예를 들면 가브리엘 오로즈코. 뭐든지 놀이로 바꾸려는 성항이 있어서요. 좀 천재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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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오로즈코, "Astroturf Constellation" 2001, © Gabriel Oroz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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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오로즈코, "Lintels" 2001, Marian Goodman Gallery

 

 

수민님은 두 작품을 소개한다. 운동장의 쓰레기와 씹다 버린 껌 같은 것을 모아 사람들이 지나간 어떤 풍경을 발견하는 작품 "Astroturf Constellation". 그리고 세탁소에서 나온 판판한 먼지 덩어리를 빨래줄에 너는 작품 "Lintels". 보푸라기와 함께 머리카락과 약간의 피부 껍질 등이 남아 있을 먼지 덩어리는 9/11 직후에 전시되었기에 더 의미심장해진다. 나는 대강 알고만 있던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예술 언어에 푹 빠져들어 좋다는 말을 반복한다.

 

 

J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소개해주셔서 너무 좋아요. 어디서도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정보를 어떻게 얻고 정리하시나요?

 

S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사실 모르던 작가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작가들에 대해 더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돼요. 예를 들면 가브리엘 오로즈코도 그랬어요. 얼핏 알고 있었는데 찾아볼수록 공부가 많이 되더라고요. 저는 갤러리 소속 작가들 리스트를 보며 찾아보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타티아나 투르베라는 작가가 있어요. 분명 존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만들거든요. 의자로 된 시리즈가 엄청 많아요.

 

 

잠시 보여줄 사진을 찾으며 그는 타티아나 투르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강아지와 함께 찍은 프로필 사진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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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티아나 투르베, "The Guardian", 2022 photo: Florian Kleinefenn


 

S 원래 퐁피두센터에서 전시장 지킴이를 하셨는데 관람객 응대를 하다가, 없을 때는 책을 읽기도 했대요. 그런데 책을 두고 잠시 화장실에 갔다 왔을 때 책이 의자 위에 놓여 있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거예요. 지금은 없지만, 그 자리에 누군가 있었다는 흔적. 그냥 봤을 때는 부드러워 보여서 상상하기 어렵지만 사실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어 단단해요.

 

 

타티아나 투르베의 이 의자 시리즈의 제목은 "The Guardian"이다. 의자들은 전시실 구석이나 다른 작품 옆에 조용히 앉아 있어 많은 관람객이 작품인지 모르고 지나친다고 한다. 누군가의 흔적이 있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작품이 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_

 

J 어쩌다 예술을 좋아하게 되셨나요? 그 시작을 기억하시나요?

 

S 어렸을 때부터 여행이든 살러갔든 미술관에 자주 갔어요. 그 도시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도움이 되더라구요.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떤 것을 보고 있고 어떤 것에 영감을 받는지.

 

그래도 한 순간을 떠올리자면 어릴 적 Met과 MoMA에 몇 달 정도 매일 가던 때가 있었어요. 하루는 Met, 그 다음날은 MoMA 이렇게요. 엄마도 싫어했으면 안 데려갔겠지만 저는 너무 좋았거든요. 미술관에 있으면 몇 시간을 있어도 지치지 않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매일 가니까 큐레이터가 오픈 전에 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적이 있어요. 미공개 컬렉션도 보여주고요. 아무도 없는 오픈 전 미술관을 봤다는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또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기부하면 입장할 수 있는 것도 있었는데요. 자주 가니까 내일은 기부한다고 말하고 50센트만 내고 오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해봤더니 진짜 입장할 수 있었어요.

 

J 최근에 흥미로우셨던 전시가 있다면요?

 

S 아무래도 프리즈를 가장 최근에 봤고(프리즈 서울 2023), 페이스에서 하는 로버트 나바 전시도요(로버트 나바의 매력). 프리즈에서는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확실히 외국 갤러리스트들과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4 내 사랑의 형태와 거룩한 본질

 

J 평소에는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S 자연을 좋아해요. 자연스러운 상태에 있는 자연이요. 음식 중에서는 제철 음식이라던지. 저희 할머니가 모든 재료를 다 직접 준비하셨거든요. 참깨 따서 기름 만들고. 그래서 그런 삶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J 좋아하시는 작가나 책은요?

 

S 보들레르의 ‘시체’. 기억해보라 님이여- 로 시작하는 시예요.

 

 

수민님이 잠시 보여주고 싶은 책을 찾는 사이, 나는 보들레르의 시를 읽는다. 육체가 부패하는 과정을 묘사한 그 시는 이렇게 끝난다.

 

 

썩어문드러져도 내 사랑의 형태와 거룩한 본질을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고!

 

_ 보들레르 시 '시체' 중에서

 

 

J 이 마지막 문장에서 저는 지금 국제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는 아니쉬 카푸어 작품 생각났어요. 다들 반타 블랙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저는 혐오, 경이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작품이 되게 흥미로웠거든요. 이 시구가 딱 그게 생각나는 것 같아요. 끔찍하지만 매혹적인 이미지.

 

S 되게 신선한 해석이네요. 이런 얘기 듣는거 좋아해요.

 

J 저도 다른 사람들만의 생각이 담긴 미술글을 갈구하며 살아온 것 같아요. 왜 안 쓸까요?

 

S 틀릴까봐 두려워서? 미술에 정답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런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술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연히 수민님과 나는 지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미술을 편견 없이 대하고 좋아한다는 그의 말에 동감한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까지. 미술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싶어질수록 어릴 적부터의 교육과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J 제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전시를 접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데, 아이들이 수업하고 있으면 시끄럽다는 컴플레인이 생기기도 한대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바닥에 누워서 전시 본다는 얘기가 들리니까 너무 부러워요.

 

S 다들 외국 가서는 누워서 보는 걸 선망하잖아요. 우리나라는 아직 여유가 없는 건가 싶기도 해요.

 

J 요새 저는 모든 사람이 미술을 즐기는게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도 해요. 미술은 나한테만 중요하지, 모두에겐 필수적이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알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고. 경험해볼 순간이 없었을 뿐이지 좋아할 수도 있잖아요.

 

S 그런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J 네네. 그래서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저는 작가를 소개할 때도 다들 '전세계가 주목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이라던가 그런 수식어를 붙이는게 싫거든요. 모두에게 그런 걸 붙이는 게 의미가 있나? 남는 것도 하나도 없고. 좀 더 다양한 얘기가 있으면 좋겠어요.

 

S 맞아요. 예를 들면 김환기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작가'. 근데 제가 생각했을 때 김환기는 너무 잘생기시고.

 

J 맞아요.

 

S 키도 크시고, 엄청 로맨티스트였잖아요. 남기신 편지들도 그렇고. 그런 부분이 더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건희 컬렉션, 가격. 이런거 말고도.

 

 

여러 대화를 하는 사이 나는 수민님이 어린 시절부터 여러 나라를 오가며 살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래서일까? 그가 좋아하는 것들은 정체성과 자주 연관된다.

 

 

음식은 섭취하는 순간 내 몸의 일부가 된다. 요리에 유난히 그리움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는 건 먹는 것이란 말 그대로 나의 피와 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음식에 대한 기억이나 조리법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_ 수민님의 글 '음식이 가지는 힘' 중에서

 

 

J 음식에 관한 두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할머니의 요리와, 과일 조각이요. 수민님이 갖고 계신 음식에 대한 기억도 궁금해요.

 

S 너무 많은데요. (웃음) 사실 저는 어릴 때 일본에서 자랐어요. 그러니 익숙한 음식도 일본 음식, 친구도 일본인이었죠. 그러다 7살쯤 한국에 왔는데 낫또가 먹고 싶더라구요. 7살짜리가 음식을 그리워하는 일은 잘 없잖아요.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낫또가 잘 수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없기도 했고, 아빠가 일본에 갔다오며 사오지 않으면 못 먹었던 기억이 나요. 돈까스도 일본에서는 돈카츠라고 하는데, 카츠가 아니라 까스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돈까스라고 하는 나라에서 사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체성이나 디아스포라에 대한 고민을 하는 작가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수민님의 이야기를 쭉 훑으며 나는 그가 과거엔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 하지만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했다. 남겨진 흔적을 세심히 살피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가 썩어문드러져 흔적으로 남을 때, 나는 무엇으로 남을까.

 

_

 

준비한 질문을 다 끝내고도 한참 얘기를 나눴다. 남은 100일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수민님은 운동이라고 대답했다), 각자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내가 요즘 쓰고 있는 편지를 나누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드디어 생각난 좋아하는 책과 영화에 대해 나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그리고 파올로 소렌티노의 영화 ‘그레이트 뷰티’.

 

구체적인 공통점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둘 다 푸른 바다가 나오는 장면에서 막연히 엮이는 수민님만의 접점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와 다시 대화할 언제가를 위해 이들을 꼭 보기로 몰래 다짐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애호하는 사람으로 만난 ‘당신’이 어느새 내 안에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인 것 같다고 느낀다. 우리는 짧은 포옹을 하고 헤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길 잘했다는 말을 반복하며 그와의 대화를 다시 듣는다.

 

 

(2023. 09. 15 대화)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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