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버트 나바의 매력 [전시]

글 입력 2023.09.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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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를 앞둔 지금, 서울은 어딜 가나 예술 이야기로 북적인다. 어젯밤 이태원역과 한강진역 사이를 걸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대미술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을 것이다.

 

프리즈 위크의 시작이자 한남 나잇이었던 9월 5일, 많은 갤러리들이 밤늦은 시각까지 문을 열어두고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느지막한 시간에 로버트 나바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열리는 페이스 갤러리로 향했다. 건물의 1층까지 페이스가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 이 갤러리의 매력은 더더욱 배가되었다. 바깥에서 들여다보이는 갤러리의 풍경이 곧 마주하게 될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잔뜩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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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나바의 신작 6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특유의 환상 속 생명체가 주인공이 되어 우리를 맞이한다. 그는 메인 캐릭터로 동물을 즐겨 그리는데, 걸려있는 작품들에도 역시나 상어, 유령, 혹은 토끼가 각각 그려져 있었다. 단순하고 유치할 것만 같은 대상이지만 큰 캔버스에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된 이들은 전혀 가벼워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여러 겹의 감정선이 더해지며 나름대로의 스토리를 그려보게 해주었다.

 

상상력을 통과한 그림들은 소리가 나는 듯한 착각을 일게 했다. 가령, 'Mountain Fight'라는 작품에서는 개 여러 마리가 천사와 싸우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화면 속 개들이 내뿜는 분노의 화마에서 열기와 소음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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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토끼를 그린 작품들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용의 비늘 같은 날개를 달고 비행하는 토끼를 그린 'Storm Fire Body Bunny'라는 작품에 대해 갤러리는 이러한 설명을 덧붙였다.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격렬한 붓터치의 소용돌이는 토끼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때 토끼의 평온한 얼굴과 요동치는 공간 구성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대재앙의 새벽"을 목격했음에도 "토끼의 마음속에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그 장면을 설명했다."

 

대재앙의 새벽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코로나의 시작? 혹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아니면 자연을 파괴하며 동물들이 설자리를 잃게 하고 있는 인간들의 행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크게 걱정하지 않는 태도로 삶에 임하는 토끼의 표정을 보며 나도 뭔가 모를 편안함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예술에 있어 '빠른 판단'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고 늘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빨간색 단면만을 보고 사과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 더 깊게 알아보면 분명 가치가 있는 것인데, 별로라고 지레짐작해 버리고 배울 기회를 져버리고 마는 일은 절대로 피하고 싶다. 내가 나바의 작품을 실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바스키아 짝퉁이라거나, 유치원생의 그림과 다를 게 뭐냐는 등 여기저기에서 비난도 많이 받는 그이지만,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그런 그의 작업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나에게 에너지와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한껏 멋지게 꾸민 관람객들로 북적거리는 페이스 갤러리의 1층에서 나는 약 20분을 앉아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에 산다. 핸드폰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30초짜리 짧은 동영상들을 수도 없이 넘기면서 보고, 인스타에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과 자극들이 끝없이 흘러들어온다. 생각이 뇌를 거칠 새도 없이 엄지손가락은 핸드폰 화면을 쓸어넘기는 것이 당연해진 사람이 20분을 한곳에 앉아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종이로 된 책과 회화 작품은 그나마 우리를 한자리에 가만히 붙잡는 몇 안 되는 정적인 매체들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바와 같이 단순하고 직관적인 작업들이 주목받는 게 아닐까? 현실에서 우리가 보고 처리해야 하는 많은 것들을 잠시 제쳐두고, 작품 속 대상이 가진 지극히 심플하고도 기괴한 형태와 표정을 보며 무언가 상상해 볼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그를 처음 스카우트했던 Night Gallery와 Sorry We're Closed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로 나바의 그림을 평가한다. 너무 특별하고 너무 이상해서 오히려 끌렸다고. 페이스 회장 마크 글림처는 나바의 작품들은 그가 유년기 시절 즐겨 했던 게임을 떠올리게 해서 마음이 간다고 말했고, 혹자는 트랜스포머나 파워레인저 등 추억 속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모두 로버트 나바의 높은 작품값에 대한 확실한 설명이 되진 못한다. 현대 미술의 많은 면들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다. 메이저 갤러리의 눈에 들고, 큰 컬렉터의 마음에 들어야 좋은 현대 미술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마케팅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대충 그린 것 같지만 나바의 작품에는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고, 어젯밤 페이스에서 비로소 나도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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