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리즈 서울 2023 [전시]

글 입력 2023.09.1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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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프리즈 서울이 열렸다. 작년에는 마지막 날 겨우 구경했는데, 이번에는 운 좋게 지인의 초대로 VIP 티켓을 받았다.

 

프리즈가 기존 국내 페어와 차별화되는 점은 작품의 다양성인데, 신선한 작품이 훨씬 많다는 표현보다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격이 얼마일지 종잡을 수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키아프에서 자주 보이고 가장 인기가 많은 대가들의 작품은 대략 사이즈와 스타일을 보면 '가격이 어느 정도겠다'라는 감이 온다. 워낙 옥션에서도 자주 보고, 여러 전시에서 많이 접해왔던 탓이다. 물론 이는 우리가 그 작가의 가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합의된 선이 있음을 뜻한다.

 

반면, 이번 프리즈에서는 더욱 다양한 규모와 질감, 그리고 태도들을 보았다. 인상적인 부스가 여럿 있었고, 머릿속에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은 작품들도 많았다. 페어의 전체적인 평을 할 수는 없지만, 재밌었던 작품들 딱 두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번에 아마도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을 에스더쉬퍼 갤러리의 부스 입구에는 멋진 턱시도를 차려입은 분이 서계셨다. 페어를 구경하는 동안 누가 저렇게 큰 소리를 지르나 생각했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였다. 부스를 들어가려고 하면, 앞에 서계신 분이 정중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며 이름을 물어본다. 내가 부스에 들어서면 뒤에서 정말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또박또박 말해주신다. 마치 내가 엄청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다는 양. 그래서 약 1초간은 재밌고 어깨가 으쓱한 느낌이 들다가 순식간에 민망함이 번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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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작가 Pierre Huyghe의 Name Announcer라는 작품인데, 이름이라는 것의 의미와 다른 이에 의해서 불리는 나의, 혹은 타인의 이름이 갖는 아우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과거 왕실에서는 누군가 방에 들어서면 크게 그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 사람의 존재를 알렸다고 하는데, 부스 안에 들어가는 나의 이름이 우렁차게 발표됨으로써 뭔가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는 것 같은 우스꽝스럽고도 영광스러운 느낌을 들게 한다.

 

이 작업이 특히나 웃겼던 점은 내 이름이 불리고 약 10초쯤 후에 한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어디선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길래 혹시 내가 에스더쉬퍼 부스에 온건가 하고 급히 달려와 보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재미도, 의미도 있었으며 친구를 만나게까지 해주다니 기능적으로도 훌륭한 작업이 아닌가!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인상적인 작업을 보여주었던 Francis Alys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벨기에관에서 The Nature of the Game이라는 작품명으로 여러 점의 영상 및 회화 작업들을 선보였었다. 지정학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치/외교적 이슈를 서정적으로 풀어내는 이 작가는 세계 곳곳의 아이들이 즐겨 하는 놀이를 비디오로 담았다. 각 지역별로 별도의 영상이 제작되었는데,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건물을 이용해 숨바꼭질을 하거나, 위험해 보이는 물건들로도 창의적인 방식으로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변 상황과는 무관하게 아이들은 놀이의 천재들답게 현재에 몰입한다.


When Faith Moves Mountains라는 유명한 작품에서 그는 약 500명의 자원을 받아 산을 옮기려는 시도를 했다. 페루 리마에 있는 한 모래 언덕에서 이뤄진 이 프로젝트는 각자 가져온 삽 등의 도구로 산을 몇 센티만이라도 이동시켜보기 위한 시도였다. 어마어마한 인원이 모여 투입한 시간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풍자로서, 많은 이들이 힘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시적으로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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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평면 작업을 이번에 Peter Kilchmann 부스에서 보게 되었다. Study for Two Sisters라는 이 작품은 자매로 보이는 두 여자아이를 그린 것으로 두 점의 그림이 하나의 작품이다. 둘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잘 보면 각자 한 개의 팔을 상대와 바꾼 상태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안드로기노스’라고 하는 존재를 반으로 갈라 평생 동안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도록 했다. 이 작품은 신화 속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정치적 분쟁 등으로 본인이 속했던 곳을 떠나 자신의 일부를 찾아다니는 디아스포라들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갤러리스트로 근무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아트페어는 설레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다. 멋지게 차려입은 손님들과 비싼 작품들을 볼 수 있어 두근거렸지만, 반면 우리 부스에 온 손님들과 작품에 대해 할 수 있는 대화가 한정적이고 반복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관람객으로서 내가 끌리는 작품들 앞에 원하는 만큼 머무르며 갤러리 관계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어 지루할 틈 없이 반나절이 지나갔다. 한국의 페어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러한 작품들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프리즈 서울은 충분히 멋졌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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