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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1장 - 배우의 역할은 끝없는 도전


 

60회 백상예술대상 특별무대, 이순재 - '예술이란 무엇인가?'

 

 

최근 60회 백상예술대상 특별 무대로 이순재 배우의 짧은 무대가 있었다. 해당 무대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69년 차 된 이순재 배우가 그동안 가진 연기에 대한 열정을 한 편의 연극 무대로 꾸며 메시지를 전했다.

 

7분 남짓의 짧은 연극은, 오디션장에서 심사를 시작하고 알리는 면접관의 목소리로 시작됐다.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지원자 가운데로 번호 1번, 이순재 배우가 등장한다. 그는 처음 데뷔한 연도를 떠올리며 그간 활동해 온 작품들을 회고한다. 그는 총 300편이 넘는 작품을 진행하며 백상예술대상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이어서 면접관과 연기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 첫 주제는 바로 ‘대본 암기’다. 고령의 연기자가 될 이순재 배우에게 면접관은 "대본 암기에 문제없으시겠어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이순재 배우는 대본 암기가 배우로서의 가장 기본이라고 말하며 이어서 리어왕의 일부 독백을 선보인다. 오직 그에게만 향하는 모든 무대의 조명이 한 사람을 홀연히 빛나게 해주는데, 이 모습이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신’처럼 느껴진다.

 

문득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배우는 맡은 배역 그 자체가 되어 이야기 속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어야 한다. 그러다 다른 작품을 만나면, 또 그 작품만의 캐릭터가 된다. 한 사람이 여러 페르소나를 가지며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 사뭇 신기했다.

 

여러번의 인생을 사는 것. 그건 바로 ‘환생’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도, 배우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여러 번의 인생을 살며 그 환생을 오롯이 체험한다. 극 중에선, 이순재 배우의 짧은 무대에서도 면접관이 ‘연차가 쌓였음에도 오디션을 보는 이유’를 물어본다. 이에 배우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쉽지 않은 연기이지만, 늘 고민하고 연구하고 새로운 배역을 공부한다. 따라서 배우라는 직업은 늘 도전을 일삼는 직업이기도 하다.”

 

이순재 배우, 60회 백상예술대상 무대 中

 

 

내가 모르는 배우라는 직업 뒤편에는 개개인이 맡은 배역에 대한 고민과 연구, 공부가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토대로 행한 ‘도전’이 비로소 대중들이 보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환생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연구. 즉 무수한 시도와 ‘도전’이었다.

 

 

 

2장 - 청춘을 다시 정의하다


 

지난 3개월간, 통신사에서 품질 관리 보조 업무를 맡아 근무했다. 고객의 의견을 듣고 데이터를 추출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이를 토대로 장애가 생기면 다방면으로 장애가 발생한 원인을 분석한다. 그 과정을 거쳐 마침내 개선된 버전을 내놓는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새로운 장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업에 계신 분들은 늘 품질 관리가 ‘끝이 없다’라고 표현하신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또 끝도 없이 오르고 올라야 하는 천국의 계단처럼 말이다.

 

어느 날, 정말 평범하게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을 때였다. 알고 보니 이날은 센터 내 타운홀미팅에 참석하는 날이었다. 타운홀미팅이란, 분기마다 진행되는 것으로, 각 팀의 성과와 목표를 공유하는 자리다.

 

모든 PT가 끝나자, ‘스스로에 대한 품질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가요?’라는 질문을 진행자분이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건네셨다. 여태껏 담당하는 제품 품질만을 생각하며 업무에 임했을 뿐인데, 스스로에 대한 품질은 어떻게 혁신하고 있는지에 대한 새 관점이 서늘하게 뒤통수를 찍었다. 그런 고민이 섞여 무거워지는 머리를 한 손으로 괴며, 눈앞으로 밤과 아침이 며칠 간격으로 지나갔다.

 

다시 밝아온 화창한 여름날. 넓은 창으로 보이는 푸른 나무가 보이는 카페였다. 옆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 모습 그대로 턱을 괴고 말했다. “나는 앞으로 뭘 해야 할까?” 마침, 그건 나도 가진 고민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내일 이걸 꼭 해볼 거야.” “그게 뭔데?” 그러면서 방금 정한 비밀스러운 목표를 내게 공유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시선이 가득 담긴 사진을 찍어 새 계정을 키워보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야? 그게 꼭 내일이어야 해?” “응, 당연하지. 방금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지금만 할 수 있는 다짐 같아서. 바로 도전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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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전례 없는 청춘의 정의를 바로 엿본 것만 같았다. 친구는 까마득한 고민을 이어가더니 결국 대안을 내놓고, 곧바로 도전을 이어가려던 것이었다. 나이가 많아도, 적당해도, 또 적어도 누구나 그 ‘도전’ 하나면 청춘이 될 수 있었다. 이 낯선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자신의 품질을 측정해 보고만 싶었다. 과연 내가 청춘일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더 푸르러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아직 가벼운 잠수만 하고 있었을 뿐, 그 밑으로는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순재 배우가 연기에 대한 신념과 열정만으로 어느 젊은 배우보다 빛나보였던 것처럼, 모든 무대 위 주인공들의 청춘을 닮자, 생각했다. 그건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고 품질을 측정해 혁신하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멈추고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긴 일은, 늘 핸드폰을 열 때마다 보이는 잠금화면을 시의 일부 구절로 바꾼 것이다. 이 시가 글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둔 후, 노트북을 덮고 나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도전에 나서야겠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는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사무엘 올만의 시, 「청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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