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도하는 예술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07.1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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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스위스 바이엘러 파운데이션(Beyeler Foundation)에서는 콜롬비아 작가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의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그녀는 자신이 자라며 직접 듣고 본 일들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성장 시절 콜롬비아는 오랜 내전으로 사회정치적 범죄와 폭력, 유괴, 강간, 마약 거래 등 무법 행위가 만연해있었고, 그로 인해 실종되거나 희생된 사람들이 수십만 명에 달했다. 작가의 가족들 중 일부도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 무장단체들이 서로 총을 겨누는 상황 속에서 힘없는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겁에 질려 누구에게도 쉽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 그렇게 희생자들은 신체도,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잊혀진다.

 

그녀는 개념적인 설치 작품을 통해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남은 자들의 슬픔을 어루만진다. 그녀의 작업은 없어진 이들을 떠올리게 하며, 각자가 지닌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떠올리게 한다. 고통과 상실의 기억을 시각적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함께 슬퍼하는 데에도 의의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신념이다.

 

내가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을 본 것은 2017년 샌프란시스코 MoMA에서였다. 작품은 흡사 청소를 위해서 테이블 위에 의자를 뒤집어 얹어놓은 교실 혹은 식당의 모습을 연상케 했는데, 어두운 나무 테이블의 질감과 직선으로 떨어지는 형태가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여서 전시실 안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돌아설까 하는 순간 테이블의 틈새에서 무언가 초록빛이 눈에 띄었다. 목재 틈 사이사이로 자라나고 있는 것은 가녀린 초록색 잔디였다.

 

이 작품의 제목은 Plegaria Muda이다. 직역하자면 조용한 기도 혹은 침묵의 기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LA에서 무장 강도들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또 작가가 콜롬비아에서 자식이 실종된 엄마들과 무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아이를 찾아다니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작업이라고 한다. 책상은 평균적인 관의 사이즈에 맞춰 제작되었고, 죽은 이들을 위해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풀을 배치함으로써 희망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틈을 열어두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죽음보다는 삶이 우선시되기를 원하는 그녀의 바람이다.

 

 

plegaria muda.jpg

 

  

Abyss는 내가 특히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하는 작품이다. 그녀의 많은 작업들을 살펴보다가 유독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된 이 설치물은 이탈리아 Castello di Rivoli라는 곳에 전시되었던 장소 특정적 작품이다. 원래 전시장이 가지고 있는 돔 형태의 천장을 연장해서 벽돌이 거의 바닥에 닿을 때까지 이어붙였다. 전시 전경 사진은 어둡고 축축하다. 공기가 무겁다. 무릎 아랫부분으로 그나마 약간의 빛이 새어들어온다.

 

작품은 투옥, 감금, 매장과 같은 경험이 인간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막연하게나마 보여준다.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미술관에 들어간 우리가 이런 답답하고 꽉 막힌 방에 들어서서 느끼는 감정은 당혹스러움일 것이다. 콜롬비아에서 폭력에 희생당하고 이유 없이 납치된 이들도 똑같았을 것이다. 조용히 일상을 살고 있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 잡혀가고, 어떤 형태의 물리적 외압이 가해지고, 숨통이 조여오는 과정을 겪었으리라.

 

희생자들은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시간, 그 장소에 우연히 존재했기 때문에 콜롬비아 내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내가 그 일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알량한 안도감을 눌러두고, 인간의 실종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일. 이 작품은 그런 숙연함을 준다.

 

 

abyss.jpg

 

 

Flor de Piel은 그녀의 작업 중 가장 시적인 것으로, 수천 개의 장미 꽃잎으로 만든 수의이다. 이는 콜롬비아 내전 때 납치, 강간, 폭행을 당하고 아직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실종 상태인 한 간호사를 위해 만든 옷이다. 특수 처리된 장미 꽃잎들을 잘 펴서 의료용 실로 하나하나 봉합한 이 거대한 수의는 인간의 피를 떠올리게 하는 색을 띠고 바닥에 퍼져 있다. 누군가의 무덤에 꽃을 내려놓듯 이 장미 수의는 시신 없는 바닥을 덮고,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인다. 작품은 한 개인의 죽음이 그에게만 상처를 입히는 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의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flor de piel.jpg

 

 

살세도의 작품들 중 미국 911 테러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설치 작품도 있다. 투명한 듯 흰옷 여러 점이 벽면에 걸린 작품이다. 멕시코 작가 Gabriel Orozco 또한 911 테러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는 작품(Lintels)을 만든 바 있다. 어떤 한 집단의 동시다발적인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깊은 충격과 슬픔을 안긴다. 도리스 살세도에 의하면 예술은 무언가를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명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상처받은 사회에 애도의 기회와 방법을 부여하는 것은 예술가로서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눈물 흘릴 줄 아는 것, 나아가 그것을 멈추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예술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누군가 물어볼 때 우리가 줄 수 있는 답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이 애도가 될 때 예술이 가장 숭고함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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