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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서 열리는 Porto Photo Biennale는 올해 3회째를 맞은 신생 비엔날레로, 아직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5월 18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되는 이 비엔날레에서 지난 주 큰 뉴스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전시 중이던 작품이 일부 검열, 철수된 것이다.  

 

화제의 중심에는 포르투갈의 노예 무역을 비판하는 브라질 작가 듀오 Dori Nigro와 Paulo Pinto의 작품이 있다. 'Vento (A)mar'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장소 특정적인 형태로 기획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이 전시된 Centro Hospitalar Conde de Ferreira는 앙골라에서 브라질로 노예를 수송, 거래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본가 Joaquim Ferreira dos Santos, Conde de Ferreira가 설립한 정신 병원이었다. "정신 병원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예의 삶이 희생되었나?"라는 문장이 새겨진 거울이 판옵티콘 형태의 병원 건물 한가운데 설치되었다. 이외에도 포르투갈의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화를 제안하는 작품들이 전시장에 걸렸다. 

 

병원 측은 개막일 당일에 전시장을 폐쇄했다. 작가들은 전시 준비 기간 동안 비엔날레 큐레이터와 병원 관계자들로부터 순조로운 협조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사건 이후 비엔날레 측은 다양한 사람과 기관들로부터 응원의 메세지를 받았다고 한다. 곧이어 비엔날레에서 병원의 결정을 비판하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으며, 이후 병원은 Conde de Ferreira의 얼굴이 그려진 찻주전자 작품만을 원위치시켰다. 일부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 붉은 카네이션을 두고 갔다. 포르투갈에선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곳에는 늘 검열이 존재해왔다. 비엔날레의 역할은 이러한 압박을 이겨내고 작품과 작가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 한편, 비엔날레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내부적인 사정과 판단에 의해 내린 이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화와 화해를 제안하려 한 작가들의 작품이 어딘가에 꽁꽁 숨겨둔 병원의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깨운 것이다. 아직 차마 거울을 정면으로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일까. 과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는 것인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는 매일 조금씩 더 타락해가는 도리언 그레이를 따라 그의 초상화도 일그러져 간다. 이 소설에서 초상화는 그의 영혼의 거울과 같다. 비엔날레에 설치되었다가 철거된 거울도 아마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특히나 판옵티콘 형태의 정신병원 한가운데 작품이 설치되었다는 것은 병원 어느 곳에 있어도 그 거울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자들에게는 거울에 새겨진 문장을 읽는것이 고통스러웠을 터다. 하지만 거울을 치우고 눈을 감는다고 해서 과거의 죄까지 씻겨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모습을 진정으로 마주할 용기가 생겼을 때 비로소 온전한 치유와 화해를 위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단순한 절도에서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들이 보상 이전에 원하는 것은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인정과 뉘우침이다.


전세계적으로 디아스포라 예술이 널리 사랑받고 있다. 디아스포라들의 예술이 흥미로운 것은 먼 곳으로 이주하는 과정 자체가 생생한 역사이며, 새로운 땅에서의 차별과 적응기, 그곳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직접 겪은 일들은 오직 이들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생애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감동을 느끼고 치유받기도 한다. 즉, 예술 작품이 조금 더 가깝고 진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홀은 이런 이유로 유색인종 혹은 소수 인종 작가의 작품을 신중하게 선정해 전시로 내보인다. 이러한 '트랜스내셔널' 움직임에는 과거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이 깔려있다고 평가되곤 한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작품이 철거된 작가들 또한 브라질 출신이지만 포르투갈에 이주해 정착한 디아스포라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 역사는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심판을 받게 되는 이들이 그간의 과오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하고, 변화에 대한 약속을 한다면 화해에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변명과 도피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작가들의 작품은 사라졌지만, 과거 포르투갈 노예제에 대한 반성의 필요성과 대화의 물꼬는 제대로 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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