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 휴학한다고? 왜? [문화 전반]

우리는 멈추는 것이 낯선 사회에 살고 있다.
글 입력 2023.09.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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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 죽기 살기로 뛰는 12년간의 공교육을 거쳤고, 수능이라는 중대한 시험을 치렀다. 대학 생활은 2년 한 뒤에 휴학해서 올 상반기는 반년간 휴학생으로서 시간을 보냈다.

 

휴학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인데, 보통 휴학을 한다는 계획을 입 밖으로 꺼내면 정말 많은 사람이 묻는다. “그럼 너 그동안 뭐 할 건데?”라고 말이다.

 

보통은 진짜 상대가 휴학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궁금증이 생겨 묻는 말이다. 대학생이라면 자고로 학기를 끝없이 달리는 것이 정법인데, 그 시간을 뚝 끊어버리게 한 강렬한 원인이 과연 무엇이었길래 눈앞의 사람이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 마련이다. (나도 자주 주변인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똑같은 질문을 계속 듣고 있다 보면, 그리고 그에 맞서 나의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보면 머릿속에서 길을 잃는다. 왠지, 휴학하는 게 잘못인 것만 같다. 잠시 멈춰 서는 것은 낙오자가 되는 것이라고, 모두가 이야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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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 오면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게, 사회의 모든 어른은 학생들의 삶 속에 있는 부조리를 ‘대학 가면 해결된다’고 임시방편적으로 달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계속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 그 괴로움이었다. 수많은 ‘대학이 해결해준다’의 맥락 속에서, 나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경쟁에서 벗어나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보장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 다른 경쟁과 또 다른 경력 쌓기의 시작점일 뿐이다. 결국 나는 4번의 학기를 끝내고 휴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수많은 ‘뭐할 건데’의 질문에는 이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나의 고작 ‘계속 열심히 사는 게 싫어서’라는 이유는 정상의 속도를 납득시킬 만한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를 납득시킬 설득력이 있는 대답을 찾아야 했다. 아,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차후 취업을 위해 대외활동에 전념하려고. 진로를 찾으려고. 수많은 설명이 내 휴학의 변명거리가 되어주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다만 대학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테다. 고작 6개월을 멈추는 것도 스스로 검열하고 ‘내가 진짜 이 6개월을 멈춰도 후회하지 않을지’ 확인하는데(심지어 한국 사회가 ‘대학생’이라는 신분에게 주는 유별난 관대함을 고려하고서도 말이다), 다른 나이, 다른 환경, 다른 단계의 삶의 내가 같은 강박을 매번 느끼지 않을 리가 없다.

 

우리 사회는 달리는 게 당연하다. 그것이 ‘정상’의 속도로 설정되어 있다. 영영 멈춰서는 사람이나 애초에 달릴 수 없는 사람은 주류의 목소리에 속할 수 없기에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감히 멈추는 것을 두려워한다.

 

물론 달리면 경험적으로 배우는 것도, 결과론적으로 얻는 보상도 많다. 그것의 가치는 쉽게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 소외되어 가는 것들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가 과연 방향을 고려하며 속도를 올리고 있는지 인지해야 한다.

 

당장 우리가 그동안 만들어 온 문화나 과거를 뒤엎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새로운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사람들의 노력을 양분 삼아 점점 더 빽빽해진 사회 속에서, 우리는 그 빽빽함을 견디지 못하는 스스로나 타인을 아무런 이질감 없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조금 쉬고 다시 달리자!’라며 그들의 재기를 응원하는 말보다는 그것이 또 다른 삶의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면 된다. 멈춤에 대한 무던한 반응은, 결국 멈추거나 달리는 것을 모두 받아들이는 이해의 기반을 다져줄 것이기 때문이다.

 

 

 

박소은 태그.jpg

 

 

[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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