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용하지만 쓸모 있기로 했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09.1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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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처럼 바이올린 레슨이 끝나고 선생님과 함께 지하철에 탔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요즘은 클래식도 다들 잘 안 하잖아. 실용 음악을 하려고 하지 그게 돈이 되니까."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악을, 특히나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에게서 나온 말은 날카롭지만 현실이었다.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 한 마디가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되는 것과 돈이 되지 않는 것을 빠르게 구분한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결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은 수치화된다. 질적인 무언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양적으로 지금 당장 보이는 결과가 중요하게 되었다.

 

글 쓰는 게 좋아 시작한 블로그는 방문자 수로,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 몇 차례 올린 유튜브 영상은 구독자 수로 판단되기 일쑤였다. '블로그로 돈 벌기', 이런 키워드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애써 외면했다. "이렇게 해야 방문자 수가 빨리 늘어", 세태를 반영하는 말들을 일부로 멀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시작했고, 글을 글 자체로 읽어주는 사람에게 닿길 바랐다. 내 블로그가 돈을 목적으로 수정되고 또 변형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확고한 신념이라 생각했는데, 이면에서 흔들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블로그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 내가 이상했고, 늦게 시작한 사람의 블로그가 잘 되면 부러웠다. 내 방식대로 쓴 글보다 블로그 독자를 완벽히 겨냥해서 쓴 글이 더 많이 읽히는 게 사실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독자를 고려하면서도 지나치게 독자를 고려하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글이 읽히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지나치게 많이 고려할 경우 자신만의 문체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돈이 돼?"

 

효용성이 최고인 지금의 시대는 항상 내게 묻는다. 무용한 것을 추구하는 내가 괴짜처럼 느껴진다. 무용한 것을 추구할 때 진정한 인간다움이 실현된다고 믿는다. 인문학을 전공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인문계열 통폐합, 문송, 돈이 되는 예술, 돈이 되는 연구', 이런 현실을 마주하는 게 힘들다. 그나마 학생 때는 이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기를 드는데 자유로울 것이다. 어느 순간 현실에 순응하고 효용성만을 쫓게 될까 두렵다.

 

자유롭게 무용한 것들을 추구할 용기가 계속 내 곁에 머물기를. 무용해도 쓸모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박진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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