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정교사들', 그들은 누구 아니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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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라 함은 '가정' 수업을 가르치는 교사 혹은 '가정에 방문'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두 가지로 불리운다. 하지만 전자는 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일반교사이기 때문에 주로 가정교사라 부르지는 않고, (나 때만 해도) 기술가정 선생님을 줄여 '기가쌤'이라고 불렀다.
그렇기에 가정교사는 주로 후자의 의미로 불리는 편인데, 이마저도 요새는 가정교사보다는 학습지 선생님이나 과외 선생님으로 부를 것이다. 이렇듯 가정교사라 하면 이제 중세 유럽이나 근대에서 잘 사는 귀족 집안의 자제들을 가르치러 방문하는 사람들로 이미지가 그려진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정교사들>이란 책을 읽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가정교사 3명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교사인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은 볼 수 없고, 자기네들끼리 정원을 산책하거나 무한 휴식을 취하는 등 우리가 소위 생각하는 가정교사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거기에 더 나아가 가정교사로 머무는 집 안을 마구 활보하고 다니고, 집 근처를 기웃거리는 남자들한테 무작정 달려가 성관계(우리 시대에서 얘기하자면 이는 성폭행에 가깝다)를 맺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을 고용한 집주인은 그들의 모습에 대해 걱정하긴 하지만 딱히 해고를 한다든지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
길지 않은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 였다. 책을 읽긴 읽었다. 그런데 무슨 얘길 하고싶은 건지, 예술성이 뛰어나지 못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저 가정교사라는 직함을 가진 자들이 가정교사로 일은 안 하고, 한량처럼 노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옮긴이의 말까지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그제서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생각한 의아함들, 그리고 어딘가 어색한 느낌 마저 모두 의도한 것이었음을.
<가정교사들>은 일반적인 소설처럼 일련의 사건이 전개되는 방식이 아니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일시정지 시켜놓고, 그 장면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씩 묘사해준다. 그래서 시간에 따라 이야기가 흘러간다기보다는 그저 그들이 지금 위치한, 그 곳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그 상황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다음 장을 넘겼던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밑밥을 깔았으니 이 다음엔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도서에는 가정교사들을 몰래 멀리서 관찰하는, 관음증을 가진 노인이 등장한다. 단순히 보여서 보는 것이 아닌, 망원경까지 준비해서 가정교사들이 무엇을 하는지 하나하나 포착해가면서 말이다. 나라면 당장에 달려가서 뭘 훔쳐보는 거냐고 따졌을텐데, 가정교사들은 그런 노인의 행동에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보란 듯이 자신들을 과시한다.
하지만 막바지에 노인은 더 이상 가정교사들을 보는 걸 관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질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일어난다. 바로 그들이 머물던 집이 무너지고, 집 안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마치 누가 뺏어가기로 하듯 그들은 자신을 상징하는 것들을 잃어버린다. 그들은 어째서 자신들을 봐주는 상대가 없어지자 이 세상에서 사라진걸까. 가정교사들은 과연 '인간'이었던 걸까? 혹은 누군가의 관심으로만 먹고 사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사람이었던 걸까.
[걱정에 가득 찬 이네스는 정원으로 나가 의연하게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직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정원은 줄어들고, 남자아이들은 서로의 몸 위로 곤두박질을 쳤으며, 집의 벽으 사라지고, 오스퇴르 씨는 시가를, 오스퇴르 부인은 잿빛 드레스를, 어린 하녀들은 들고 있던 접시를 잃어버렸다. 엘레오노르가 있던 자리에는 가녀린 꽃 한 송이가 두 개의 조약돌 사이에 피어 있었고, 로라가 있던 자리에는 도마뱀 한 마리가 재빠르게 달아나고 있었다.]
배우 정호연이 뉴진스의 'cool with you'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것을 보고서 굉장한 팬이 되었는데, 이 배우가 주연으로 영화를 촬영한다고 한다. 과연 이 몽환적이면서 잔혹한 내용이 어떤 식으로 영화가 전개될지 기대되는 편이다.
[배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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