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울타리를 넘어 안전지대 바깥으로 - 가정교사들

안 세르, <가정교사들> (Les Gouvernantes)
글 입력 2023.08.3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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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괴한 동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느 것 하나도 정상적이지 않다.

 

집 주인 오스퇴르 부부는 둘 사이의 권태가 느껴질 즈음 가정교사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를 집으로 불러들었다. 가정교사의 임무는 집을 돌보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이지만 그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광기에 어린 소녀들로 놀라우리만치 정열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들의 관심은 파티를 벌이거나 정원을 지나가는 낯선 남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일이다.

 

불성실한 가정교사들은 집에서 내쫓기기는커녕 가끔 제멋대로 떠나는 연극을 벌인다. 그때마다 집 주인 오스퇴르 부인은 눈물을 흘리고, 오스퇴르씨는 당황하며 떠나지 못하게 붙잡는다. 연극이 끝나면 한동안 모든 집안 식구들은 가정교사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준다.

 

건너편에 사는 노인의 하루는 가정교사들의 음란한 기행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기록하는 일이다. 자신들을 관음하는 시선을 가정교사들도 잘 알고 있지만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노인을 조롱하듯 대놓고 나체로 광란의 춤을 춘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가정교사들을 지켜보는 일에 흥미를 잃는다. 망원경을 접고 가정교사들이 아닌 고사리와 산토끼를 관찰한다. 당황한 것은 가정교사들이다. 자신들을 관음하는 시선이 없어지자 초조하다.

 

 
어느 날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노인은 멀어져 버렸다. 가정교사들을 지켜보는 일이 지겨워진 것이다. ... 며칠 뒤, 오스퇴르 부부의 요지부동한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남자아이들과 어린 하녀들과 가정교사들은 설명할 수 없는 초조함이 자신들을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가정교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으며, 서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눈빛으로 서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작아지고 있어." 어느 날 엘레오느로가 말했다. "우리는 녹아내리고 있는 거야." 로라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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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La Conversation (The Conversation), 1938

 

 

작가 안 세르는 1992년 <가정교사들> (원제 Les Gouvernantes)을 발표했다. 이 책은 26년이 지난 2018년에 영미권에 번역 출간되었고 5년이 지난 2023년 올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안 세르의 작품들은 "마술적 리얼리즘"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실험적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가정교사들>을 읽고 떠오른 소설 또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었다.

 

가정교사들은 스스로의 욕망을 자각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관습에 벗어나지 못하여 미쳐버린 여자들이다. 낯선 남자들을 잡아먹지만 가끔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남자를 따라 오스퇴르 부부의 집을 떠나 다른 고장에서 그를 사랑하면서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살 수 있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가정교사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는 "안전한" 공간에 머문다. 광기와 기행으로 보이는 그것은 해방되지 못하고 억압된 울타리 안에서 발버둥 치는 몸부림이다.

 

해방을 꿈꾸는 그녀들이지만 그들을 한계 짓는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한계는 존재한다. 자신들을 지켜보는 노인의 시선이 사라지자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고 작아져 결국에는 사라졌다.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음적인 시선들과 그 시선을 자신도 모르게 내재화한 여성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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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들은 때때로 며칠 동안 아이들을 버려두고 산행을 떠난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충만하고 살아있다는 순수한 기쁨을 마음껏 느끼고 돌아온다. 자연의 고요한 위엄, 위풍당당함, 사색적인 깊이를 느끼고 그것들을 자신의 삶에 흐르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산행을 하는 동안 그들은 바로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이 살고자 하는 욕망, 더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무성한 나뭇잎으로 둘러싸이고 부드럽고 싱싱한 풀들이 올라온 땅을 산책할 때 그들은 단순히 행복이 바로 여기, 무성한 나뭇잎으로 둘러싸인 땅에, 빽빽이 들어선 떡갈나무의 그늘 아래 있다는 사실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는 것, 행복은 이렇게 우거진 나뭇잎들이 풍기는 고요한 위엄과 이 땅이 가지는 공간의 위풍당당함, 풀밭의 사색적인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삶에 바로 이런 힘과 성질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가정교사들>, 안 세르, 124page

 

 

"가정교사"들은 관습과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으로 해방되어야한다. 이미 자연의 위대함은 그녀들의 삶에 내재되어 있다.

 

타인의 시선에 매여있지 않을 때 오롯이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가정교사"들이 울타리를 용감하게 넘어 "안전지대"로 포장된 억압의 공간에서 달아나기를.

 

<가정교사들>은 조 탈벗 감독의 손으로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제작은 영화 <미나리> 제작사로 유명한 A24가 배급을 맡았고 정호연 배우, 릴리 로즈 뎁, 르나트 라인제트가 캐스팅되었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출연했던 르나트 라인제트가 가정교사들 중 한 명을 맡는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가 개봉하면 꼭 보러 가리라 생각했다. 기괴하고 신비한 이야기를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할까.

 

 

 

에디터 명함 최은지.jpg

 
 
[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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