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낭만에 대하여, 연극 '우주로봇레이' [공연]

글 입력 2024.03.0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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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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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주로봇레이'. 작년 관람했던 연극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고, 마침 멀지 않은 곳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프레스콜이라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어서 완전히 집중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돌아가는 길엔 '아, 참 낭만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왠지 아쉬움이 남아서 마지막 날 공연을 다시 봤다. 처음에 봤을 때보다 무대도, 배우들도, 관객인 나도 편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여전했다. 다시 봐도 참 낭만적이고 재미있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그건 팔 할이 레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레이 같은 존재가 내게도 어렴풋하게 있었다. 몸이 하나인 게 정말 아쉬운 순간이 많았다. 헤르미온느의 시계가 부럽고, 시간관리를 잘하는 현실의 사람들이 멋있다. 상상 속에서 나는 여러 명으로 분열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맡겨봤다. 자, 너는 색소폰을, 너는 기타를 연습하고, 너는 공부를 하고, 너는 요리를 하고, 너는 청소를 하고, 너는 부모님도 챙겨드리고, 너는 강아지 진료를 다녀와. '얼마나 좋을까', 또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인가'라는 입장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레이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말 같지도 않은 생각이었는데 분명히.


1막 2장 광고는 정말 위트 있는 대사가 가득하다. 레이가 있다면 놀고먹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다. 집안일도, 위험한 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회사는 노조와 상생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임금 인상도, 복지도 챙기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능력치도 사람보다 낫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참고 견디지 않아도 된다.나를 위한 맞춤형 애인이 되어줄 수 있으니, 가족이나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 신체구조나 촉감까지 모든 게 인간과같다니 걱정할 게 없겠다. 비용은 개인의 수입의 1%이니 엄청난 부담은 되진 않는다. 1원씩만 모아도 전 세계인에게 걷으면 60억 원이라니 괜찮은 사업이다.


개인적으로는 레이를 나를 대체하는 대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맞춤형 선생님처럼 쓰고 싶었다. 화내거나 답답해하지 않고 운전 연수를 해줄 수도 있고, 배우고 싶은 언어나 운동, 요리를 알려줄 수도 있고. 생각만 해도 최고다. 다만 하루 이틀은 대신 일해줬으면 싶겠지만, 내가 직접 뭔가를 해서 느끼는 이 기쁘고 슬픈 감정과는 바꾸고 싶지 않다. 뭘 해도 나보다 낫다면 부족한 부분은 옆에 최고의 멘토가 있으니 성장할 일만 남았을지도.


그래서 나처럼 광고에 혹한 남주 역시 레이를 주문한다. 레이는 자기는 인간이라는 둥, 별을 보고 멍을 때리는 둥 이상한 모습도 있었지만 동기화를 마치고부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대했던 대로 남주를 대신해서 모든 걸 처리해 준다.레이는 로봇이지만 인간 같은 구석이 있다. 특히 심장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 시점부터 레이에겐 뭔가 사연이 있겠구나 짐작을 하게 된다. 그렇게 완벽한 로봇이 이상한 낌새가 보이다는 건 힌트를 주는 것 아니겠나.


 

아미카.jpg

아메카를 인간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면?

 

 

그렇다. 이대로는 완벽한 로봇 레이는 너무 평화롭다. 레이를 만든 남 박사가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인간스러움을 레이에게 주고 간다. 레이는 이제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사람들에게도 달갑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인간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억눌렸던 고통과 불만이 쌓여서 죽고 싶어 한다. 레이를 함부로 대하는 인간들도 많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부르고 인간처럼 존중받고 권리를 보장받기를 원하는 모습도 펼쳐진다.

 

저 정도면 인간다움을 탑재한 거 치고도 선량한 편이다. 인간에겐 고문과 형벌이란 이름으로 잔인함이 정당화되곤 했다. 함무라비 법전 때부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전해져 왔고, 조선시대까지도 사지를 묶어 사방에서 찢기도 했다.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다른 존재를 희생양으로 돌리기도 하고, 패권을 위해서라면 모두에게 위험한 무기나 기술을 만들어냈다. 레이가 인간의 그런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면 인류는 빠르게 멸망했을 것이다. 대통령마저 레이가 대체하고 있었기에 레이는 모든 힘을 가지고 인간을 종속시킬 수도 있었다. 인간은 죽을 수 있지만 레이는 죽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평화스럽게도 그들이 400년간 애쓴 일은 처음엔 고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죽이려고 한 것이고, 그 뒤엔 사람처럼 대우받고 싶다고 한 것이고, 마지막으론 사람과 구분되지 않게 살려고 한 것이다. 바라는 것이 존중, 그리고 인간에게 받은 힘든 기억을 환생 센터에서 지우는 것이라니 소박하다.

 

남 박사의 변수 덕분에 레이들은 결과적으로 인간처럼 살게 되었다. 그 조건으로 사람들 역시 레이처럼 장기를 바꾸고 영원한 삶을 얻었다. 그러나 남주의 레이는 남주를 잃었다. 회사에서 레이를 데려가려는 걸 남주가 막다가 엉겁결에 총을 맞았고, 레이는 처음 사람을 해쳤다. 모든 것을 예측한다던 판도라가 앞질러 본 것이 이런 그림이었을 것이다. 레이를 지키려다 죽는 사람,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레이.

 

완벽한 로봇이라고 생각했던 레이는 이제 인간이자 사회 구성원이 되었다. 사람과 레이는 구분하기 어렵고, 오히려 질병에서 자유로워지자 모두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남주를 기억하는 레이는 환생 센터에도 가지 않았고,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레이와 친한 윤하조차도 환생 센터에 다녀와서 스스로가 인간에게 상처받은 레이인 걸 잊어버리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여전히 레이에게만은남주의 생명 신호가 들린다. 어쩌면 어딘가에 남주가 있고, 인간이 살아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우주로 레이는 떠난다. 윤하 말에 따르면, 우주로 떠난 후에 돌아온 이는 없다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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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광고와 뉴스 보도, 다큐멘터리 같던 1막과 2막 1장이 지나고, 2막 2장에서 윤하가 등장하는 시점부터는 차분해진다. 3막부터는 레이가 우주를 떠날 거니까! 아담과 이브라는 도파민이 필요한 존재들을 만나는 과정에는 특히 다 함께 만들어내는 동작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된다. 우주 공간을, 무중력 상태라고 상상하고 보지 않아도 괜찮다. '2023년, 2024년 기준에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으로 공간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지 놀랍다.


후반부 3막 3장. 레이는 블랙홀에서, 윤하는 지구에서 레이를 기다리며 하는 독백이 번갈아가면서 나오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느슨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게 된다. 이 지점이 극의 막바지로 가는 길목이라 관객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쉬운 때이기도 하다. 둘의 독백이 내용이 긴 편이고, 번갈아가면서 긴 호흡의 대화가 나타나는 게 반복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대본에서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는 레이와 지구에서 레이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윤하를 대조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한 화면에서 적은 분량의 대사로 둘을 함께 그려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레이가 블랙 홀로 점점 빠져들어가는 모습을 대본에서 읽고 이해하게 되어서, 음향 혹은 시각적인 효과를 강조해서 그 부분을 전달해 준다면 몰입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윤하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레이는 남주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 처음엔 '사연이 있을 것이다' 짐작만 했던 레이의 모습이 애틋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레이는 처음부터 별을 좋아하거나,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말하거나, 심장소리를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죽지 않게 되었을 때 별은 여전히 유한하고 죽을 수 있는 존재였다. 남주를 잃고 나서 남주의 심장소리를 그리워하고,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유한한 별이 있는 우주로 떠났을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남 박사는 온 우주 어딘가에 있을 남주를 레이가 찾아갈 수 있도록 '보고 싶다 우리 딸'이라는 코드를 남겨두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에 남은 윤하(과거 '레이')는 남주가 물을 주던 나무를 400년 동안 기르고 있고, 우주로 나간 레이는 기억을 뒤로하고 다시 남주에게 돌아와 동기화된다. 설사 매번 그 끝에 남주가 숨을 거두고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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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로봇', 'HER',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닥터 스트레인지', '인터스텔라'와 '테넷'이 떠오르는 연극 '우주로봇레이'.몽글거리는 느낌을 가지고 중력이 있는 현실로 돌아오기 아쉬워 Beach House의 'Space Song'을 찾아서 들었다. 인간은 늘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하면서 하늘로, 우주로 뻗어나갔다. 인간이 만든 첨단 기술은 우리를 편리하게 만드는 만큼, 우리를 불필요하고 무능한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 <우주로봇 레이>는 로봇과 인간의 희망 편이라 마음 편히 볼 수 있었지만 우리 앞에 놓인 미래가 같은 결과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사람은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 존재에게도 정을 느끼고 사랑을 주는존재다. 고도로 발달한 로봇이 사람과 구분할 수 없다면, 그때 우리의 결말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만 같다. 우주와 로봇 안에 아날로그가 늘 있을 거라는 점, 그게 이 미래지향적인 낭만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It was late at night

You held on tight

From an empty seat

A flash of light

It will take a while

To make you smile

Somewhere in these eyes

I'm on your side

You wide-eyed girls

You get it right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Tender is the night

For a broken heart

Who will dry your eyes

When it falls apart?

What makes this fragile world go 'round?

Were you ever lost?

Was she ever found?

Somewhere in these eyes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place

Fall back into

 

Beach House - Space Song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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