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평선 끝에는 뭐가 있나요?

글 입력 2023.11.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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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기가 매우 쉽다. 쉬운 건 나중에 하는 버릇이 있다. 왜냐?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기 혹은 걱정하기에 몰두한다. 걱정을 하면 뭐가 나아지나? 그건 아니다.


하지만 걱정과 동반하는 우울은 동시에 에고가 강해지는 듯한 착각을 가져다준다. 섬세하거나 예민해져, 슬픔을 동반하는 나 자신조차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그러면 점점 우울감에 빠지고, 우울감이라는 행동양식은 나를 실제로 정말 깊은 우울감에 젖게 만든다. 종국에는 비교적 쉽다고 생각하던 “행동”들이 정말 어려워지는 지경에 이른다.


행동하기가 매우 쉽다는 ‘환경’이 문제다. 언제든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마음먹으면 취할 수 있다.


꼬아서 생각하지 않는 이들은 행동하기 쉬운 시대를 적극 이용한다. 초연결 사회이기 때문에 적극 이용하는 만큼, 결과는 적극적으로 되돌아온다. 계산이 빠른 비즈니스 맨, 창업에 역량이 있는 사람들은 시대를 잘 태어난 셈이다. 하지만 꼬아서 생각하는 사람들, 역설을 즐기는 자들은 지금 시대가 버겁기만 한다.


행동하기 쉬운 시대에서 사람들은 걱정이 많은 개인을 나무란다. 왜 못하냐고. 왜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태생적으로 그 너머 혹은 그 너머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표(껍데기)와 기의(알맹이)의 분리를 아는 인간들은 초연결사회가 부담스럽다.


너머의 그 너머를 생각하다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때문에 계속 노를 젓는 상황에 봉착하지만 계속되는 노력에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지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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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시대에 최적화된 비즈니스 맨은, 사고의 전환을 시도한다. "내가 왜 노를 저어야 해?" 바다를 버리고 우주로 올라가 기어코 지평선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지평선 종결지점이 여기일 수는 없나?" 하면서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리에 섬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열심히 노를 젓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득이 없는 거냐? 새롭고 특별해 보이는, 우주사업, 섬 사업이 사람들 눈에 뜨이겠지. 놀라운 발견이라며, 이들 따라 몰려가는 인간들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둥근 지구에서 열심히 노를 젓는 사람은, 결국 지평선 끝은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강건한 자기 자신은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바로 구리빛 피부 인간이다.


바다를 버리고 우주로 올라가기 위해 수없이 착취된 혹은 묵살된 많은 것들. 이런 것 없이 오롯이 자신만의 노하우로 구리빛 피부가 된 자신의 신체를 느낄 것이고. 몇 번이고 엎어질 것 같은 보트를 부여잡고. 자신의 말을 제일 잘 듣는 보트를 결국은 만들어낼 것이다. 우주와 섬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던 인간은 ‘저 인간 뭐지?’ 하며 구리빛 피부 인간에게 시선이 향할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많은 섬들은 어디서 본 듯한 자기네들을 닮은 섬일 테고. 우주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는 너무 비싸서 일반 사람들은 이미 가볼 수가 없을 테고. 결국 뭇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게 되는 사람은 “자기 말을 제일 잘 듣는, 유일무이한 보트를 타고 바다 위를 휘젓는 한 인간”일 것이다.


그래 그 인간은 결국 지평선의 끝을 보지 못한다.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우주까지 올라가 본 소수의 인간은, “나는 결국 답을 찾았어. 지구에의 지평선을 실제로 끝이 없어. 대신 새로운 행성들엔  있을 수도 있지. 나는 거기를 가볼 테야”라고 떠들 것이다. 그들은 소위 말해서 유일무이한 경험이라고 일컫는 경험을 돈으로 사고, 은근한 우월감에 기대어 우주에서 끝없는 연구를 잇는다. 하지만 우주도 둥글다면? 끝이 없다면? 이들은 그럼에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간다.


물론 우주 위 소수 인간 중 어떤 이들은, “여러분, 여기 답이 있어요. 제가 이끌어줄게요. 지평선의 끝은 없어요. 눈으로 확인시켜 줄게요.”라는 다소 선민사상적인 마음으로 우주를 또 다른 지구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발판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지구의 바다로 내려오는 선택을 할 확률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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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구리빛 피부의 인간은 “지평선의 끝은 어디일까?”라는 물음에 답을 내리지 못한다. 대신 지평선의 끝을 탐험하다가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그렇게 파생되는 질문 중 또 몇 개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또 몇 개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탐구는, 구리빛 피부 인간만이, 이 둥근 지구를 가장 잘 알게끔 만든다. 구석구석에 쓸모없어 보이는 섬을 발견하기도 하고, 조난당한 바다 위의 인간이나 혹은 인공위성을 건지기도 하며, 로봇이 차마 촬영할 수 없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날 수도 있다. 혹은 지구의 핵에 가장 가까운 거대한 동굴을 만날지도 모른다.


우주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가 가장 지구를 잘 알기에 ‘생존’에 능하게 된다. 생존을 위한 생존이 아니라, 삶의 지혜로 터득한 생존.


그렇게 지구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 지구를 결국 구하는 건 새로 지어진 수많은 인공 섬의 인간도 아니고 우주 위의 인간도 아니고, 구리빛 피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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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리빛 피부 인간’ 시리즈는 비정기적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 현재를 관통하는 따끈한 피가 도는 몸을 가진 인간이 느낀 바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구리빛 피부 인간’을 관찰하는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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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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