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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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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발레단(Universal Ballet, UBC)의 창작 발레 <심청>(Shim Chung- A Legend from the Far East)이 창작 40주년을 맞아 2026년 5월 1일부터 5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026년 제16회 대한민국 발레축제의 초청 공연이자 개막 작품이기도 한 발레 <심청>은 1986년 9월 21일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며 정기공연 및 12개국 40개 도시 투어를 통해 유니버설발레단의 장기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케빈 바버 픽카드의 음악과 박용구의 대본을 기반으로 애드리언 델라스의 안무와 유병헌, 로이 토비아스, 올레그 비노그라도프의 개정 안무를 거쳐 완성된 이 작품은 한국의 고전 소설이자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의 이야기를 발레라는 형식으로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발레 <심청>은 효심으로 바다에 몸을 던진 심청이 용궁을 거쳐 왕비가 되고, 아버지와 재회하며 기적을 이루는 「심청전」의 주요 줄거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심청의 탄생과 어머니의 죽음,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고 말하는 스님과 이를 위해 인당수에 빠지기로 결심하는 심청의 이야기로 1막 1장이 구성되고, 선원들과 선장의 군무와 종교 의식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에너지 속에서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모습으로 종결되는 1막 2장을 거쳐 용궁에 도착해서 용왕을 감동시키고 구애를 받지만 아버지를 이유로 거절한 심청이 연꽃을 타고 다시 육지로 올라가며 1막 3장이 끝난다. 이어 왕궁이 배경인 2막에서는 심청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왕은 심청을 왕비로 삼고, 맹인 잔치를 열어 심청과 아버지가 재회하면서 모든 맹인의 눈이 떠지는 결말을 맞이하며 이 작품은 ‘효(孝)’라는 주제를 전면화한다. 인터미션 20분 포함 총 125분의 러닝타임 속에서 원작인 고전 소설에서 등장하는 심봉사가 재혼한 여성이자 ‘악역’을 맡고 있는 ‘뺑덕 어미’나 심청을 양녀로 삼으려고 했던 ‘승상댁 부인’을 비롯한 다른 조연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고, 육지와 배 위, 바닷속, 궁궐이라는 공간을 이동하는 심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발레의 문법과 한국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결합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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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은 또 다른 레퍼토리인 발레 <춘향>과 단편 작품의 모음인 <코리아 이모션: 정(情)>처럼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서구에서 발달된 발레의 고전적 형식미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으로서, <춘향>(2007)과 <코리아 이모션>(2021)보다 먼저 창작되어 장기 레퍼토리로 자리잡은 작품이다. 드라마 발레의 성격이 강한 <춘향>과 네오 클래식 발레로서 현대적인 성격이 강한 <코리아 이모션>에 비해 발레 <심청>은 고전적인 이야기 발레의 서사적 성격이 강하며, 발레의 문법을 통해 한국적인 서사와 서정을 표현한 <심청>의 정착과 성공이 남긴 자원의 토대를 통해 <춘향>과 <코리아 이모션>이라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창작된 국립발레단의 <왕자 호동>과 <호이 랑>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재공연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유니버설발레단의 이러한 성과는 고무적이다.

 

발레 <심청>의 음악은 서양의 오케스트라 문법에 동양의 정서를 결합한 채 진행되고, 다양한 악기들의 활용을 통한 연출과 2막 궁궐 악사의 춤 등에서 전통적인 국악의 요소였던 동양적 선율이 전면화되는 구간 역시 존재한다. 국악기가 아닌 관악기와 현악기 위주로 오케스트라가 편성되었지만, 국악 특유의 감각적 정서가 잔존한다는 것이 <심청>의 음악이 가진 장점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발레의 ‘고전적인’ 테크닉과 형식적인 움직임이 주된 안무의 톤이 되는 상황에서, 2막 왕궁 장면에서 전통 문화인 탈춤패가 등장하고 태평무와 한삼자락을 활용한 여성 군무 같은 한국 무용의 요소가 차용되기도 했다. 심청의 의상은 한복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안무를 위한 얇은 천이 사용되었고, 2막 왕궁에서 사용되는 궁중 의상과 가채는 실제 궁중 대례복(면복, 원삼)과 대신들이 입는 사모와 단령의 디자인과 동일하지만, 안무를 위해 개량된 소재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청의 탄생과 곧이어 이어진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1막 1장에서 주목할 만한 연출은 짧은 시간동안 아역이 맡는 5세 심청, 10세 심청, 그리고 주역 무용수가 맡는 성년의 심청이 교차되어 등장하는 장면이다. 아역 심청들이 등장할 때 객석은 어린 심청을 귀여워하면서, 마을의 다른 어른들에게 곡식을 얻어 아버지 심봉사(심학규)에게 주는 기특한 마음씨에 감동을 받는다. 영화의 ‘컷’과 ‘시퀀스’라는 연출이 떠오르는 이 장면은 심청의 성장을 단적으로 표현하면서 심청의 착한 마음씨와 그들의 삶, 심청을 키운 마을의 정다운 분위기를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성장한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선장의 제안을 수락해 그 돈을 공양미 삼백석을 위해 시주승에게 건네고, 뒤늦게 심청의 선택을 알게 된 무력한 심봉사와의 눈물의 이별 장면은 감정선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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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1장에서 잠시 표현되는 선원들의 절도 있는 남성 군무는 배 위의 공간이 배경인 2장에서 위협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확장된다. 클래식 발레에서 강렬한 남성 군무를 언급할 때면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볼쇼이 발레단의 주된 레퍼토리인 <스파르타쿠스>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심청>의 선원들과 선장의 안무는 에너지의 차원에서 이와 유사하면서 발레 뤼스의 대표작인 <봄의 제전>처럼 모든 이들의 정신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종교적인 의식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심청이 바다에 뛰어드는 마지막 장면에서 고조되었다가 멈추는 리듬은 제물로 바쳐진 소녀의 죽음으로 종결되는 <봄의 제전>처럼 언어화되기 어려운 전율을 느끼게 한다. 또한 배 위에서 잠든 심청의 꿈 장면은 조명과 안개 효과를 이용해 신비로운 효과를 주는데, 원작 소설에서 심청이 용궁에서 선녀가 된 자신의 어머니 곽씨 부인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착안하여 ‘밤의 여왕’을 만나고 아버지의 환영을 보는 심청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포그(안개)를 활용해 ‘밤의 여왕’이 떠 다니는 것 같은 연출은 <지젤>의 2막 윌리 군무와 미르타의 등장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용궁이 배경인 1막 3장은 조선시대가 배경이기에 전통적인 의상과 분위기가 지배적인 <심청>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차별화된다. <심청>의 용궁은 클래식 발레나 낭만 발레에서 활용되는 환상성의 범주로 읽어낼 수 있으며, 공연의 주된 배경과 상반되는 공간이 중간에 삽입된다는 점에서 발레 <돈키호테>의 2막에 등장하는 돈키호테의 꿈 장면(dream scene)을 연상시킨다. 심청과 2인무를 추는 용왕이나 어릿광대에 이어 엔젤피쉬, 담쉘피쉬, 인어, 해파리, 진주 등 비늘과 아가미를 가진 바닷속 생물들이 등장하기에 색채와 소재의 차원에서 의상 역시 해양 생태계 특유의 느낌인 화려함과 기묘함의 경계에 있다. 물고기와 해양 생물의 디베르티스망과 심청과 용왕의 파 드 되는 수중 공간이라는 배경이 드러나듯 부드럽고 유연하며, 해수면이라는 경계로 나뉘었던 1막 2장의 배 위의 공간과는 직접적으로 대비된다. 발레 <심청>의 용궁 장면이 가진 또 다른 특징은 「별주부전」 등에서 용왕의 모습이나 군신 관계가 그대로 재현되는 한국적인 용궁의 이미지와 다르다는 점인데, 정확히는 이러한 요소가 (용왕의 캐릭터성이 변하고 용왕의 아들 역할과 합쳐진 점 등) 재공연을 거치면서 약해졌다는 점이 특이점이다. 오히려 비늘이 달린 ‘어릿광대’ 캐릭터는 <백조의 호수>의 광대(제스터) 캐릭터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따라서 용궁이라는 공간은 한국 전래 동화나 고전 소설의 ‘용궁’이 아니라 서양 중세 시대의 궁중 문화가 반영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 장면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의 김선희 교수가 안무한 창작 발레 <인어공주>의 해양 공간의 표현과 유사한데, 아마 <심청>이 한국 창작 발레 작품으로 선제적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또 다른 창작 발레 작품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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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은 궁녀들과 대신들을 포함한 캐릭터와 의상, 궁의 기와를 표현한 무대 세트와 무대 공간에 자리잡은 해치상(해태상)을 통해 조선시대의 궁이 배경임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으며, 악공의 춤, 4인무, 탈춤과 태평무 등 각각의 경우 짧지만 임팩트 있는 디베르티스망이 삽입된다. 2막의 첫번째 하이라이트는 왕과 심청이 추는 ‘문라이트 파드되’다. 연꽃에서 등장한 심청은 왕을 감동시켜 유력한 가문의 쟁쟁한 왕비 후보들을 제치고 왕비가 되고, 달빛 아래에서 왕과 사랑을 약속하는 파드되를 춘다. 문라이트 파드되는 국내 다양한 갈라에서도 프로그램 중 일부로 구성되는 작품으로, 생략된 서사를 상쇄할 수 있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통해 표현되는 서정성을 구현할 수 있는 연기력과 높은 난이도의 파트너쉽이 요구된다. 2막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왕이 개최한 맹인 잔치에서 심봉사와 심청이 재회한 후 심봉사가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나는 장면일 것이다. 왕비가 된 심청은 맹인 잔치에 참여한 맹인들을 살피며 아버지를 찾지 못해 절망을 느끼지만, 뒤늦게 잔치에 참가한 심봉사를 확인한 후 아버지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자신이 살아서 왕비가 되었음을 알린다.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서사적인 장치를 통해 둘의 재회는 2막의 ‘절정’과 동일시되고,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은 치밀하게 쌓아 온 감정선이 분출되는 장면으로서 명암을 조절하는 조명과 음악의 활용을 통해 연출적인 감동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이는 곧이어 이 공간의 모든 맹인들이 눈을 뜨는 기적으로 확장되고, 눈을 뜬 맹인들은 기뻐서 춤을 춘다. 이 장면에서 슬그머니 다시 등장한 시주승의 모습은 개연성의 차원에서 비현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가 단순한 스님이 아니라 (선한 심성을 가진 이에게는 상을 주는) 자연의 법칙을 실현하는 초월적인 존재임을 암시하는 여지를 준다. 뒤이어 임금의 장인인 국구(부원군)가 되어 금색 옷으로 차려 입은 심봉사가 왕과 심청을 축복하며 이 작품은 막을 내린다.

 

 

 

지금의 시대 속에서 ‘심청’의 이야기를 독해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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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심청>의 해외 투어에 사용된 영어 제목의 부제는 ‘A Legend from the Far East’, 즉 ‘극동의 전설’이다. 즉 이성과 실증의 논리와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심청의 ‘전설’은 원작이 되는 고전 소설이 그러하듯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이다. 발레 <심청>은 유니버설발레단의 또 다른 고전 소설을 기반으로 한 레퍼토리이자 ‘사랑’이라는 주제를 기반으로 서사와 서정이 구성된 발레 <춘향>(영어 제목은 ‘the love of chunhyang’)과 달리 ‘효’라는 교조적으로 읽힐 수 있는 교훈을 내재한 채 간결하고 깔끔하지만 일원화된 교훈으로 수렴한다. 텍스트의 형식적인 내적 ‘완결성’과 더욱 복잡한 담론을 포괄할 수 있는 여지는 trade-off 관계이기 때문에, <심청>의 경우 전자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효도’와 ‘자애’의 양자 관계가 강력한 가부장적 규범과 친연성이 있는 사회에서 자청해서 ‘효’를 위해 인신공양의 제물이 되고 뱃사람들에게 성적 위협에 시달리는 심청의 이야기는 자청비와 바리데기 같은 한국의 고전 소설과 설화 속 여성 주인공이 흔히 겪는 수난사이며, 심청의 선택은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에서 분류한 자살의 4가지 유형 중 규범과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키면서 가능하는 ‘이타적 자살’의 한 예시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세계관 내에서는 바다에 빠진 심청이 용궁에 가서 살아나고, 왕비가 된 것은 그러한 수난을 견딘 자에게 오는 보상이다. 다른 고전이 그러하듯 ‘심청’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가 「심청전」을 재해석한 최인훈의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처럼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아 극도로 현실적인 이야기로 변신하거나 LG Gram과 협업한 줄리아 류의 애니메이션 ‘dive’처럼 문제적인 지점을 모두 도려내는 방식으로 새롭게 재해석되는 이유도 작품을 지배하는 가치에 대한 의심과 반감 때문일 것이다. <심청>을 포함한 다른 작품들의 수용자/관객/소비자의 반응을 보면 이러한 딜레마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단순히 고전의 배경과 사건이 ‘구시대적’이라고 해서, 가부장적 규범을 일부 반영한다고 해서 폐기해야 할까? 재현과 연출의 차원에서 ‘보기 좋은’ 부분만 보기 위해 그렇지 않은 부분을 도려내려는 시도 혹은 그 맥락을 순화하려는 시도로 비평의 역할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공통적인 문제의식이다. 무엇보다 특히 이 작품의 경우 형식적인 아름다움이 전면화되는 춤이라는 장르이기 때문에 맥락은 더욱 복잡해진다. 심청의 고난은 형식을 통해 쾌의 감정으로 승화되고 이는 문제적인 지점을 내포하지만, 나는 <심청>과 <춘향>에서 여성 주인공의 고난이 활용되는 방식이나 그들이 당하는 성적 위협이 재현되는 방식이 단순히 맥밀란의 <마농>이나 <마이어링>의 특정 장면과 등치된다면, 혹은 미학과 윤리학의 자의적 결합 속에서 성적 재현 그 자체를 문제화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정도’나 ‘선’은 누가 정하고 그 기준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리고 단순히 무용이라는 장르가 연극이나 뮤지컬보다 장르 문법의 차원에서 이러한 문제가 상쇄되는가? 쾌로 승화되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정동이나 욕망의 작동 자체를 부정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답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이슈를 마주한 후, 창작과 개작의 방향은 고전적인 ‘수동성’과 대비되는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이나 ‘적극성’을 어필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는 재-독해를 수행하는 수용자들의 힘이나 전유의 가능성을 과신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소설과 영화 <서편제>가 뮤지컬 <서편제>가 되었듯이, 시간이 지나고 장르가 변하고 이야기를 읽는 방향이나 초점이 변화하면 의미가 넓어질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드라마를 이끄는 힘에 몰입하는 다소 모순적인 감상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이 작품은 여러 질문들을 남기지만, 어떠한 답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지점은 이러한 딜레마의 돌파구가 되는 답이 한 가지가 될 수 없다는 점과, 모든 것에는 항상 양면성의 회색지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발레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도 텍스트를 구성하는 형식과 내용의 이중구조 속에서 이러한 실험이 가능해지는 지점이 넓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난 <심청>의 역사 속에서 미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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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심청>은 초연 이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수정과 변화를 겪은 작품이다. 1986년 초연되었을 당시부터 공연을 거듭하면서 의상과 무대 세트는 지속적으로 리뉴얼되어 왔고, 안무는 새롭게 개정되었다. 음악 역시 초연 당시에는 여러 작곡가가 참여했지만, 전체적으로 케빈 피카드의 음악이 사용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2010년 공연 이전까지는 심청의 효심에 감동하는 ‘용왕’과 용왕의 아들이자 심청을 구한 인물인 ‘용왕자’의 역할이 나누어져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용왕자’의 의상이나 안무, 그리고 심청과의 러브라인은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캐릭터에 ‘용왕’이라는 새로운 역할이자 이름이 붙었고 「별주부전」의 ‘용왕’을 연상시키는 캐릭터성은 사라졌다. 2016년 공연에는 ‘중년 심청’이라는 역할로 문훈숙 단장을 비롯해 과거 심청을 맡았던 은퇴한 발레리나들이 짧은 프롤로그에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2023년 공연부터 마을과 바닷 속 용궁, 그리고 궁궐까지 공간의 분리를 통해 3막 4장으로 구분되어 있던 형식을 바꾸어 심청의 성장과 용궁 장면을 1막으로, 궁궐 장면을 2막으로 다듬었다.

 

창작 40주년을 맞이한 이번 공연 역시 기존의 틀과 구성을 유지하면서 세부적인 사항을 변화시키고,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통해 도전하는 작품임을 드러냈다. 올해의 가장 큰 특이점은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용궁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VCR로 사용된 심청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삭제된 것이다. 2010년 정기공연 당시 심청 역을 맡았던 안지은과 황혜민의 수중 촬영을 통해 만들어진 영상은 2023년 공연까지 활용되었으며 13년 간 발레 <심청>의 주된 연출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은 기존의 수중 촬영 영상 대신 오케스트라 음악과 파도가 그려진 막을 통해 배 위에서 바닷 속으로 공간이 변화되고 ‘장’이 전환되었음을 표현한다. 발레 <심청>은 이미 유니버설발레단의 안정적인 장기 레퍼토리이자 (작년 제15회 발레축제의 특별 공연 <커넥션(conneXion)>에서 문훈숙 단장의 언급처럼) 한국 발레계의 ‘고전’이 되었지만, 새로운 시도를 통해 무대 미학을 실험하며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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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익숙한 얼굴과 새로운 신예가 섞이는 유니버설발레단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는 캐스팅이다. 올해 <심청>의 주인공으로는 그동안 ‘심청’ 역을 맡아 왔던 발레리나인 강미선과 홍향기에 이어, 올해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이유림 발레리나가 주역을 맡는다. 수석무용수인 임선우(선장, 용왕), 이동탁(선장, 왕), 이현준(선장, 왕)이 <심청>의 주된 남성 캐릭터의 역할을 번갈아 맡는다. 오랜 기간 용왕 역할을 맡아 왔던 수석 무용수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의 활약과, 부상과 재활의 시간을 거쳐 새롭게 복귀하는 강민우의 복귀 역시 주된 관람 포인트다. 무엇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올해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 무용수 유주형이 <백조의 호수> 챔버 공연의 지그프리트와 (주로 ‘솔리스트’가 소화하는 배역으로 꼽히는) <돈키호테>의 에스파다를 거쳐 ‘용왕’을 맡았다는 것과, 2017년 발레리나 황혜민과 <오네긴>으로 동반 은퇴한 뒤 유니버설발레단의 지도위원으로 활동해 오던 엄재용이 5월 3일 19시, 마지막 공연 회차에 특별 공연의 형식으로 ‘왕’ 역할을 맡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엄재용 지도 위원의 경우 은퇴 이후 발레 <춘향>에서 몽룡의 아버지 역할, 작년 <지젤>의 콘라드 백작과 <호두까기 인형>의 드로셀마이어를 통해 무대 위에 섰지만, 전막 발레 공연에서 본격적인 안무와 파트너링이 요구되는 배역을 맡은 것은 이례적이며, 이 회차에 ‘5세 심청’ 역할로 과거 유니버설 발레단의 스타 부부였던 황혜민과 엄재용의 자녀가 출연한다는 사실은 유니버설발레단을 지켜본 관객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번 공연은 심봉사 역할에 과거 유니버설 발레단에 몸담았던 서양범 교수와 김현우 대표에 이어, 매체와 연극 위주로 활동했던 김명수 배우를 캐스팅하고 (이전 시즌까지는 심청과 선장, 용왕, 왕으로 구성되어 있던) 공연장의 캐스팅 보드에 심 봉사의 역할을 추가하는 등 심 봉사의 역할을 강화하는 듯한 연출적인 경향성을 보였는데, 이는 이전 시즌보다 <심청>의 드라마적인 측면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현재 한국 발레의 산업의 규모와 생태계를 생각했을 때, 한 창작 발레 작품이 무사히 초연된다는 것, 그리고 재공연되며 장기 레퍼토리로 자리잡는 것은 고난도의 과제다. 또한 ‘한국적인 것’, 즉 전통 문화를 소재로 퀄리티 있는 창작 발레를 만들고 이를 최신의 감각으로 유지시키는 것 역시 어렵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이 창작된 후 장기 레퍼토리로 정착해 40년간 공연되었다는 것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가능했음을 알기에 창작 40주년을 맞이한 이번 공연의 의미는 더욱 뜻깊다. 또한, <심청>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역사가 그대로 응축된 무대이면서 동시에 그 이후를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이 쌓아 온 40년의 역사가 더욱 길게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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