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상과 현실, 그 경계의 메타영화 [영화]

글 입력 2023.08.2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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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지속적으로 가공되고, 활발히 소구되는 동력은 무엇일까. 그 기저에는 ‘비일상성‘의 체험이 있다. 이는 말 그대로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스펙터클로의 말초적 자극일 수도 있고, 현생에서 결핍되었던 욕망을 충족하는 정서적 자극일 수도 있다.

 

영화 <꿈의 제인>은 그중 후자에 해당하는, 정확히는 후자에 이르려는 모든 시도를 서사화한 ‘메타 영화’다. 다시 말해, 관객들이 현실 속 욕구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영화’라는 허구에 기대듯, 그 원리를 그대로 본떠 작품의 뼈대로 조립한 영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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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로 거론되는 이름은 ’제인‘이지만 극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가출 청소년으로 방황하는 가운데 사랑받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소현’. 스크린을 통해 여과 없이 전달되는 소현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유일하게 의지했던 쉼터의 ‘정호’ 오빠는 소현을 버린 채 잠적했고, 이후 이곳저곳을 배회하던 소현은 마땅한 선택지가 없자 불량 가출팸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열등감 덩어리인 다혈질 리더와 그에 힘을 싣는 무리,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로 인해 소현은 겨우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는 신세다.


그러던 중, 다른 팸원들과는 달리 목표가 있고 자기 주관도 확고한 ‘지수‘가 새 멤버로 유입되고, 소현은 자신보다 단단한 지수에게 심적으로 의탁한다. 무탈한 나날도 잠시, 팸의 텃세와 강요가 거슬렸던 지수는 이에 반항하고 무리에서 이탈하려 하지만 팸장에 의해 감금되고 만다. 급기야 지수는 성매매에 강제적으로 동원되기까지 하는데, 결국은 탈출하려다 죽는다. 이후 야산에 시신을 묻은 뒤 팸은 내홍을 겪고, 소현은 다시 혼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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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범이니 비밀로 부치자는 팸원들에 압박에 소현은 그들이 쥐어둔 돈 몇 푼을 들고, 정호와 묵었던 모텔방을 찾는다. 그리고 과거 처음 본 순간부터 동경했던 ‘제인’을 떠올린다. 정호를 짝사랑했던 트랜스젠더이자 클럽 ‘뉴월드’의 미스터리한 여인.

 

그렇게 소현은 단순 회상을 넘어 제인의 집에서 지수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머무는 환상 속에 한동안 표류하기로 한다. 그로부터 영화는 소현이 끝내 의욕을 잃고 생을 거둘지 아니면 묵묵히 홀로 살아갈 방법을 모색할지 비추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여기까지는 영화적 플롯을 배제한 스토리의 나열이다. 연출자의 의도가 담긴 플롯을 입히고 나면 극에는 부차적인 의미들이 틈입하고 산출되기 마련이다. 이때 소현이 처한 현실과 소현이 만들어낸 환상, 현재와 과거, 거짓과 진실이 단속적으로 교차하고 섞이는 비선형적 플롯은 주시할 수밖에 없다.

 

영화가 제시한 플롯대로 다시 얼개를 짠다면 이렇다. 시신 한 구를 은폐하고, 팸이 와해된 뒤, 소현이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실‘ - 제인이 소현을 구조하고 지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을 함께 집에 들여 대안 가족을 이루지만 정호의 연인이 될 수 없는 현실을 비관한 제인의 자살로 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환상‘ - 팸의 압력에 의해 지수가 죽게 된 전말이 드러나고 소현이 지금의 모텔로 오게 된 ’현실‘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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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이 놓인 불편한 현실을 조명하는 액자 밖 서사가 소속 욕구와 애정결핍, 지수의 비극에 동조 및 방관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뒤엉켜 그에 대한 반동으로 만들어낸 환상, 즉 액자 안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구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몽환적인 미러볼 조명으로 액자 안과 밖의 경계를 부러 흐리는 시도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관의 암전이 스크린 안과 밖의 경계를 지우는 것처럼.

 

그렇게 환상과 현실이 혼재된 어떤 상황 속에서 파생되고 충돌하는 소현의 모순적인 감정들은 영화라는 환상 안과 밖을 경유하는 관객의 그것과 궤를 같이 하게 된다. 영화라는 환상은 결핍된 욕망을 일부분 해소하고 배출시키는 동시에 현실과의 괴리로 좌절에 이르게끔 하기도 하는 양가성을 지닌다. 지수 그리고 제인과 함께 하는 기적을 염원하지만 이내 그 환상 속에서 제인은 죽고, 지수는 사라진 채 다시 소현 홀로 남는 것처럼. 이때 소현과 관객은 등치된다.


종국에 소현의 향후가 공개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부연할 수 있다. 환상이 걷히고 난 뒤, 현실을 어떻게 수용할지 선택해야 하는 소현과 영화라는 유한한 판타지가 종료된 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 삶을 꾸려가야 하는 관객은 동질적인 위치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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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종국에 클럽 뉴월드로 공간을 옮겨 제인의 독백으로 극을 매듭짓는다. 제인은 말한다.

 

“어쩌다 이렇게 행복하면 됐죠. 그럼 된 거예요.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내겐 그 말이 이렇게 와닿는다. 생은 원래 버겁고 가혹한 것이니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리고 정 지치거든 저마다의 뉴월드를 떠올리라고. 그렇게 하루 이틀 버티다 보면 어쩌다 행복한 순간도 오리라고. 오늘 우리가 마주한 한 줌의 환상 <꿈의 제인>이었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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