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삶의 거울 - 이숲우화, 짐승의 세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글 입력 2023.08.20 16: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이숲우화10_포스터.jpg

 

 

한국 부조리극의 메카 산울림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짐승들의 이야기, ‘이숲우화: 짐승의 세계’. 유명작가 이솝을 만나 그가 글로 쓰지 못한, 이 숲의 짐승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앞서 소개한 대로 산울림 소극장은 ‘부조리극’의 메카다. 몇 해 전, 산울림 소극장에서 상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했고 그 작품을 통해 ‘부조리극’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할 수 있었다. ‘부조리극’은 ‘부조리함’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인간 존재와 삶에 관해 생각할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표적인 부조리극으로 회자하는 작품으로, 연극의 일반적인 문법에 따르지 않는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한 후 극장을 나섰을 때 가장 강하게 든 생각은 ‘이게 무슨 의미지?’였다. 작품 자체에도 부조리가 담긴 듯 이야기 진행이 익숙하지 않아 어려웠다. 끝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속 고민하고 생각해야 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했다. 부조리극은 쉽게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와 곱씹어야만 알 수 있는 의미를 지닌 장르라는 생각이 강하게 남았다.


‘이숲우화: 짐승의 세계’의 장르는 ‘부조리극’이다. 부조리극의 메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번에도 산울림 소극장에서 부조리극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야 했다.


‘이숲우화: 짐승의 세계’가 부조리극 작품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심오할까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관객들은 ‘이솝’의 북 토크에 초대된 청중이 되었다. 함께 답하고 웃으며 연극을 감상했다. 그러나 작품의 시놉시스는 철저히 지켜졌고 웃음 뒤에 떫은 여운이 남았다. 연극은 웃음이 만발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구석이 있는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핸드폰 사용을 금하는 흔한 안내 멘트조차 ‘No Phone’이라며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북 토크의 청중에게 답을 구하듯 묻는 배우의 대사와 그에 답하는 관객들의 목소리는 마치 우리가 참여형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듯했다.

 

이솝 작가의 이름에 관한 사연도 호탕한 웃음 없이 들을 수 없었다. ‘이 수업’이 ‘이솝’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야 우냐?’가 ‘여우’가 되기까지의 사연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나 ‘우화-’라고 말하며 짐승 흉내를 내는 배우들의 모습은 가볍고 발랄했으며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코미디 연극을 관람한 것이 아니다. 가볍게 웃고 털어버릴 이야기가 아니었다.


‘멋진 여우를 만들고 싶었다’라던 여우는 두루미가 날개를 편 모습을 보자 그가 자신보다 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생은 베짱이야.’라는 마지막 대사, 끝내 대화하지 않은 토끼와 거북이, 한바탕 싸우던 이들이 대번에 연극을 완성하고 환희의 눈물을 보이던 모습들도 모두 찝찝함을 남겼다. 예상을 빗나갔고 흡족함을 느낄 결말이 아니었다. 부조리극의 특성이었다. 부조리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연극의 전통적인 문법에서 벗어나는 구조를 갖췄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실함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도 개미처럼 성실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는다. 하지만 ‘이숲우화:짐승의 세계’에서는 그 자체가 전위한 듯 ‘인생은 베짱이야.’라고 말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아온 것을 부정한다. ‘토끼와 거북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그들의 관계 개선을 예상하고 기대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갈등이 절정에 달하고 그것이 해결되며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 구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끼와 거북이’에서는 그들의 관계, 갈등은 그대로인 채 극의 막이 내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그것을 친히 체감할 기회를 얻는다.


이전처럼 고민을 이어가야 했다. 인간 존재 자체가, 그들이 이루는 사회가 ‘무슨 말인지 모를’ 형상을 띠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바라는 교훈도, 해피엔딩도 그 존재의 유무조차 알 수 없다. 우리는 그러한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간다. 인간의 삶이란 불확실성을 떠안은 채 모두가 행복해질 수는 없는 부조리가 존재한다. 입안이 씁쓸해지고 떫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부조리극의 특성과 우화가 만나 독특한 극을 만들었다. 짐승들은 인간의 삶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웃으며 관망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본인의 삶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마치 거울 같은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박서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