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마음 다쳤을 때 보험 처리하는 세상 - BU 케어 보험

글 입력 2024.01.0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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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 케어 보험 표지.jpg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신선한 소재를 바탕으로 발상이 좋았고, 판타지 세계관 구축이 촘촘히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좋았던 것은 이희영 작가 특유의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끝맺음체였다. 한 에피소드를 맺을 때 따뜻하게 매듭짓는 방식. 하얗고 삭막한 심상 속에서 그런 문체를 느낄 수 있었던 건, 분명 작가가 따뜻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기에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읽게 된 책, 'BU 케어 보험'이다.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마음, 새살이 돋을 때까지의 기다림. 사랑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는 표지 글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따뜻함이 기대됐다. 특히나 n년 전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후 늘 재미있는 연애소설에 목말라 열심히 찾아다니는 터라, 더욱이 직관적인 제목에 끌렸다.




이별하기 싫어서 연애 못 해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소설은 수많은 연애를 담고 있지만, 내가 찾아 헤매던 연애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이별 소설’이라고 칭하는 게 낫겠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제목에서부터 ‘Break up Care Insurance’, 이별 케어 보험인 것이다. 수많은 연애가 나오지만 수많은 이별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어쩌면 만남과 이별은 한 쌍인 것처럼, 사랑과 이별도 한 쌍인 것이다.


최근, 요즘 20대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연애하지 않는다는 뉴스를 왕왕 보았다. 다양한 이유가 있다. 당장 나부터 연애를 생각하면, 귀찮음이 수반된다.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시대에 결혼 연령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데, 지금 당장 꼭 필요하지 않은 연애를 위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 벌써 지치는 감이 있다. 어차피 결혼할 나이나 환경도 아닌데 굳이 지금 연애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처럼. 여러 여건상, 어차피 이별할 텐데, 뭐 하러 연애하나, 싶은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삶이라면, 그 아픔이야말로 진심을 다해 정중히 다스려야 하지 않을까?

 

p282

 

 

이제 이별도 전문가와 상담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명의라 소문이 자자해도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없듯이 이별 전문가라 해서 모든 상실의 고통을 보듬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p110

 

 

시대상을 비추어봤을 때 BU 케어 보험이 완전히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은 몸이 아플 때 치료를 받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아플 때 적절히 치료받는 것도 중요시된 시대이다. 몸이 아픈 것을 대비하는 물리적 보험처럼, 마음이 아픈 것을 대비하는 정신적 보험이 나온다는 가정은 합리적이다.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는 것처럼, 마음이 아플 때를 위한 전문가가 있다는 것. 설득력이 있다.


특히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산후조리원에서 시작되는 것도 흥미롭다. 출산율이 감소하는 사회. 애를 낳지 않거나, 보통 낳아도 한 명만 낳는 요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우리 아이의 훗날 아플 마음을 위해서 남몰래 이런 보험을 들어 놓은 엄마의 선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 그럴듯하다. 곳곳에서 세심한 설정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사랑이든, 삶이든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여러 연애의 헤어짐을 다루고 있다. 바람 이별, 사별, 썸 이별, 안전 이별…. 특히 썸 이별과 안전 이별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현재 사회를 많이 담으려고 한 것이 느껴졌다. 스토킹 등으로 안전 이별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그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 스토킹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려진 연애는 그 심각성을 더욱 부각했다.


썸 이별은 과거에는 크게 볼 수 없었던 양상이었다. 썸 타다가 깨지는, 흔히 말하는 ‘썸붕(썸 붕괴)’에도 진짜 연애의 이별처럼 아파하는 사람들. 체감상, 연애와 친구의 중간인, ‘썸’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지 10년이 채 안 된 것 같다. 이 단어가 생기며 여러 사람과 썸 타거나, 애매하게 연애 비슷한 상황을 두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이다. 앞서 말한 ‘연애까지는 귀찮은’ 심리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희영 작가는 이런 연애의 양상을 삶과도 결부시킨다.


 

“썸도 은근히 중독됩니다. 그 이상은 귀찮고 두렵거든요.”

(중략)

“소위 썸 탄다고 하는데 그 대상이 꼭 사람인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면 뭐랑…….”

“삶이요. 정확히는 눈앞의 또렷한 현실.”

 

p191-192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상태. 혼자서 즐거울 만한 상상은 마음껏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일어난 것은 없기에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태. 비단 연애뿐만 아니라, ‘나’의 현실을 마주할 때도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렷이 마주하면 상처와 힘듦이 있을 걸 알기에, 책임의 불편함과 답답함을 알기에, 삶과도 썸 탄다는 것.


 

“사랑이든 삶이든 누구나 다 그렇게 깨지고 부서지며 살아요.”

 

p193

 

 

‘Break Up’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이별한다는 뜻의 숙어도 있지만, 말 그대로 부서진다는 뜻도 있다. 끝이 나고, 나아가 몸과 마음이 허물어지고 쇠약해진다는 뜻까지 될 수 있다. ‘Break Up Care Insurance’는 비단 사랑의 이별 후유증만을 다루는 보험이 아니다. 어쩌면 사랑의 후유증을 다룬다는 것은 삶의 후유증을 다룬다는 것.


바꿔 말하면 지금 우리 사회는 보험이 필요할 정도로 마음이 크게 다칠 걸 대비하고 싶은 사회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20대 청년 자살률이 60대 노년층을 가파르게 추월하며 청년 자살이 날로 심각해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사랑에서, 삶에서 깨지고 부서지는 청년을 위한 보험. 어쩌면 이는 이희영 작가가 현재 청년 세대에게 보내는 위로가 아닐까 싶다.


 


포기하지 마!


 

 

삶이란 시소처럼 오르내리는 반복 운동이고, 그 어지러운 나날 속에서 힘들게 균형을 잡는 것이다. 비틀거리거나 쓰러지거나 가끔은 추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그 위에 올라서는 수밖에…….

 

p243

 

 

<페인트>를 읽었을 때처럼, 이 책도 이희영 작가 특유의 따뜻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작가가 곳곳에 적어둔 삶에 대한 말들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이 삶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구나, 느껴졌다. 항상 모든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로 보는 게 좋은 내가 사랑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로 볼 수 있다니. 이 또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 소설은 앞서 말했듯 연애소설이 아닌 이별 소설이고, 어쩌면 이별 소설의 탈을 쓴 성장소설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비단 연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성장한다. 사랑의 끝은 이별, 그러나 사랑의 또 다른 시작도 이별인 것처럼. 삶과 사랑에 부딪히며 깨지고 쓰러지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다시 올라서라는 따듯한 위로를 받았다.

 

 

와해되고 깨지고 부서져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누군가의 인생 테에 아프고 또렷한 흔적을 남긴다.

 

p241

 

 

이 아프고 또렷한 흔적이 삶의 나이테가 될 것을 알기에.

 

 

 

주영지_PRESS.jpg

 

 

[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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