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거는 흔적을 남긴다 [사람]

내가 남긴 선, 그 자취를 선명하게 되짚으며
글 입력 2023.08.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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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나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날은 추운 겨울이었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폭포에서 튀는 물로 시야조차 확보할 수 없었다. 겨우 우산을 쓰고 바라본 나이아가라 폭포는 자욱한 안개 뒤에 숨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화산의 분출구 속에서 마그마가 흘러나오듯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지점에 다다랐을 무렵 홀로 빗물과 고요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딸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아빠가 다가와 말했다.

 

"저기 봐. 웅장하지 않니?"

 

아빠 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두 눈에 보이는 건 안경알 표면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전부였으나 빗소리를 뚫는 폭포의 소리가 그 웅장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나는 안경알을 바로 닦고 폭포를 바라보았다. 말로만 들은 나이아가라 폭포의 첫인상은 거대하다는 것, 단지 그뿐이었다. 흐린 날씨로 인해 폭포의 위용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2023년 4월, 나는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다시 와있다. 겨울비를 맞으며 부모의 결음을 따라가던 그 길을 나는 홀로 걷고 있다. 시간의 낫이 스치는 동안 철부지였던 나는 더 이상 부모의 길잡이도, 보살핌도 받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저기를 봐. 놀랍지 않니?"라고 물으며 아름다운 풍경의 찰나의 순간을 떠먹여줄 아빠도 없고, "여기 물구덩이 조심해"라며 나를 안전한 길로 안내해 줄 엄마도 없이 혼자 이곳에 서 있다. 춥고 흐렸던 나이아가라의 겨울은 어느새 꽃이 만개한 봄이 되어 청록빛을 수놓았고, 내 옆에서 무지개가 따라온다. 비 맞으며 걸었던 그날을 추억하며 나는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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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나를 따라온다. 과거의 경험이 남긴 선은 흐릿한 무지개 빛이다. 인간의 뇌는 한 번 경험한 것은 무조건 기억한다고 한다. 문득 친구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미국 가고 싶어 하더니 결국 가 있네."

 

돌이켜보면 과거는 현재와 동떨어진 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우연이라는 얼굴로 운명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나는 과거의 자취를 쫓아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경험이 흐릿한 빛이라면 다시 만난 지금은 선명한 무지개다.

 

이렇듯 과거의 경험은 흐릿한 선을 남기고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에 선명해진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다시 서게 될 줄 2017년의 나는 과연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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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가 나사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과거는 죽지 않는다. 생각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더 생생한 것일수록 조용하게 잠재워져 있다가 다시 살아난다."

 

무지개를 자세히 관찰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내 눈에 비친 무지개가 정말 무지개가 맞을까. 빛의 산란으로 발생하는 무지개는 손으로 잡을 수 없다.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그렇게 존재하고 있으며 신비한 얼굴로 인간의 가시 범위 안에 들어온다.

 

우리의 과거 경험이 흐릿한 빛이라면 과거가 돌고 돌아 현재가 되는 순간 색이 선명한 무지개가 된다. 마치 손을 갖다 대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강렬한 존재가 된다. 과거가 현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남기는 또 다른 삶의 흔적들은 미래에 어떤 무지개를 띠울 것인가.

 

인생은 숱한 경험들이 남긴 무수한 궤적 속에서 뚜렷한 선을 새겨가는 일, 그러한 여정이 아닐까.

 

 

[박진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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