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Leçon 1: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문화/전반]

글 입력 2023.08.09 13: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P20170917_200316837_A409ED6D-81E9-4F07-BD2D-A5164694864C.jpg
France Nice, Minolta x300, 2017

 

 

월요일 오후 4시.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몰려오는 졸음을 쫓으며 업무를 하고 있을 시간. 나는 광화문 빌딩 사이를 휘적휘적 지나쳐 프랑스어 수업을 들으러 갔다. 소규모 그룹 수업이라 학생은 나를 포함해 4명이었다. 첫 수업이라 간단한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월요일 오후 프랑스어를 배우러 모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검은 뿔테의 여자분은 대학생으로 내년에 유럽으로 벨기에로 교환학생을 가는데 프랑스어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배운다고 했다. 남자분은 프랑스 요리를 하고 있는 셰프로 올해 프랑스에 있는 식당으로 이적해 간다고 했다. 또 다른 여자분은 평일에 시간당 휴가를 쓸 수 있고 프랑스인 동료와 함께 일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

 

"남자친구가 프랑스어로 이야기할 때 그 언어가 너무 아름다워서 배워보려고요."

 

한국에 살고 있는 프랑스 사람인 남자친구는 나와 주로 영어 그리고 약간의 한국어로 대화한다. 그의 프랑스어를 처음 제대로 들은 것은 그가 이직을 위해 프랑스에 있는 회사와 화상으로 하는 인터뷰였다. 

 

조용한 카페에서 그의 프랑스어를 들었다. 뜻을 모르는 나는 그 대화가 인터뷰가 아닌 연인에게 속삭이는 대화로 들렸다. 사람들이 이래서 프랑스어를 로맨틱한 언어라고 하는구나. 배워보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많은 프랑스 작가들, 카뮈와 그르니에, 뒤라스, 나를 언제나 지중해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는 불문학자 김화영 작가의 에세이와 번역서들, 정수복 작가의 파리와 프로방스 여행기, 앙리 마티스, 수 번은 반복해서 본 프랑스 영화들을 일일이 늘어놓지 않더라도 왜 프랑스어를 배우게 되었느냐는 질문에는 내게는 "아름답다"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 충분했다.

 

 

000350140034.jpg
France Nice, Minolta x300, 2017

 

 

프랑스어 첫 수업 날. 이날은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바꾼 첫 날이기도 했다.

 

작년 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 좋은 기회로 리테일업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해오던 내가 주말 출근과 매일 변동되는 스케줄 근무는 쉽지 않았다. 불규칙적인 수면시간과 식사시간으로 몸은 금세 망가졌다.

 

분명하게 번아웃 증상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계속해서 부정했다.

 

뭘 했다고 번아웃이지? 고작 주 40시간 일하는 거잖아? 기자, 승무원, 간호사 등등 세상에 야간 근무, 스케줄 근무를 하는 직업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이 정도로 힘들다고 하다니. 안되겠다. 운동을 더해서 체력을 길러야지! 글쓰기와 명상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지! 일과 공부로 이미 가득 찼던 To Do List는 번 아웃을 이기기 위한 또 다른 To Do List가 더해지면서 나는 결국 터져버렸다.

 

병가에서 돌아온 뒤 주 40시간 근무에서 20시간으로 스케줄 변경을 요청했다. 다행히 회사의 승인을 받고 나는 한국 지사에서 해당 직무로 최초로 파트타임 직원이 되었다. 드디어 확정된 자유시간을 얻었다.

 

"프랑스어 배우려고요."

 

파트타임으로 바꾸고 무엇을 할꺼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거창한 계획같은건 애초에 없었다. 불안과 우울로 얼룩진 번아웃을 지나면서 다짐했다. 미래는 항상 불투명하니 나 자신만큼은 투명하고 분명하게 살아야겠다고.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을 누리고 싶었다.

 

남들은 기를 쓰고 올리려는 연봉을 반동강 내놓고 나는 평일 오후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앉아있다. 유학도 이민도 아닌 이유는 한 가지.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언어가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운 언어를 내 입에서 흘려보내고 싶어서.

 

 

 

20230806113020_oghwrmyk.jpg

 

 

[최은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