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범한 우리네 삶을 응원하는 이야기 [드라마/예능]

방송국의 카메라는 왜 시청자를 비추었을까?
글 입력 2024.04.06 14: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인간극장,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조명하다


 

아침밥을 먹으며 이 프로그램을 보느라 학교에 지각해본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정겨운 오프닝 송이 흘러나오면 나지막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 무려 2000년에 처음으로 방영되어 24년째 KBS의 근간을 지키고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인간극장>이다.


‘인간’과 ‘극장’, 제목 그대로 인간극장은 우리의 이웃들을 극의 주인공으로 세운 프로그램이다. 일반인 인플루언서가 텔레비전에서 자주 목격되는 요즘이라지만 여전히 유명 인사와 연예인이 등장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여겨지기에, 우리나라의 대표 공영방송 중 하나인 KBS에서 우리 일상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린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인간극장은 방송계의 상식을 완전히 뒤바꾼 프로그램이다. 보통 텔레비전에서 방영할 만한 주제라면 공식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뉴스나, 유명한 사람들이 나와 비일상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예능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일상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 특출나지 않은 보통의 삶은 텔레비전으로 방영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인간극장은 카메라의 파인더를 우리 시청자에게로 되돌렸다. 그들은 우리네 삶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편안함이 차오른다. 그것은 스스로를 뽐내기 위해 가장한 모습이 아닌, 우리 일상의 솔직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랑하는 두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매일 마주치는 이웃들, 그리고 매일 나아가는 삶의 이야기 속 아름다움을 살펴보자.

 

 

 

에피소드 1. 그들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2008년 방영된 어느 다섯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남편 김철한 씨와 아내 최선애 씨, 그리고 쌍둥이 아들과 막내딸이다.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에 철한 씨가 직장을 그만둔 이후, 부부는 매일 아침 김밥을 만들어 출근길의 직장인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두 부부는 이른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남들보다 거의 두 배의 삶을 산다. 하루의 시작은 새벽같이 일어난 부부가 전날 준비해 둔 재료로 김밥 300줄을 싸는 것으로 시작한다. 판매할 김밥을 모두 만들고 나면 철한 씨가 강남의 테헤란로 빌딩 사이에 자리를 잡고서 출근하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손님들은 출근길에 잠시 들러 김밥을 사 가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도 만만치 않다. 동이 트고 출근 시간이 지나 손님 발길이 끊기면 뒷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사용하고 남은 가재도구를 정리한다. 그리고 나면 부부의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된다. 바쁜 오후를 보내고 저녁 무렵 간소한 식사를 마친 뒤에는 곧바로 내일의 장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에 드는 시간은 자정 무렵. 그럼에도 회사원들의 출근 시간에 맞추어 장사 준비를 완벽히 마쳐야 하기에 다음 날 새벽 2~3시에 일어나기 일쑤다. 


글로 적어만 봐도 숨이 턱 막히듯 실로 바쁜 하루다. 남들에 비해 한참 부족한 휴식으로 피로를 메우고 빠듯한 일상을 살아가니 불쑥불쑥 짜증이 치솟을 법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두 부부는 그러한 짜증 따위에 감사한 오늘을 낭비하지 않는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되리라 되뇌며 늘 미소와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한 매일을 지탱해주는 것은 부부의 사랑이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며 배려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모임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재료 준비를 끝마쳐두려는 선애 씨와, 그럼에도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해 서둘러 귀가하는 철환 씨다. 그리곤 아내와 눈높이를 맞추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진짜 당신 대단하다고. 당신 최고야. 고마워.”라며 부부간에 쑥쓰러울 법도 한 인사말을 건네는 철환 씨의 모습에서 이 가정의 사랑이 물씬 느껴진다.


이러한 사랑의 힘은 김밥을 사러 찾아온 손님에게도 전달된다. 철한 씨는 분주한 출근길에도 손님 하나하나를 맞이하는데 정성을 가득 담는다. “감기 걸리셨어요? 목소리가 안 좋네”, “올해는 (저랑 세운) 약속 잘 지키시는데요. 요즘은 일찍 다니시네요?”와 같이 고객 맞춤형 스몰 토크를 건네고, 마지막은 늘 하이파이브로 마무리한다. 겨울 아침의 궂은 눈과 비에도 개의치 않고 긍정의 힘으로 아침을 밝히는 철한 씨 덕분에 손님들의 마음속에서도 덩달아 행복 에너지가 반짝 빛난다.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며 매일 마주하는 손님에게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철한 씨와 선애 씨가 피로한 일상 속에서도 반가운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부부의 이야기는 평범한 이웃들의 삶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분명한 감동이 있다. 누구나 응당 그렇게 해야 함을 알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쉽게 해내지 못하는 것을 두 부부는 매일 실천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것, 가까운 사람일수록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로 넓혀가는 것, 부족한 것에 불평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 번드르르한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신념을 지켜가는 것. 비록 완벽하게 윤택하지는 못할지언정 매일의 소중함을 알고 열심히 살아가는 부부를 보고 있으면 그들이야말로 참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에피소드 2. 사랑이 꽃피는 국수집


 

두번째로 소개할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2005년 첫 방영되어 인간극장에서 여러 차례 소개된 ‘민들레국수집’이다. 인천에서 가장 먼저 생긴 달동네에 자리잡은 민들레국수집은 천주교 수사 출신 서영남 씨가 수사로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문을 연 가게다. 이곳에서는 음식을 판매하지 않는다. 대신 오갈 곳 없고 외로운 노숙인 손님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한다. 간판 또한 민들레‘국수집’이지만, 국수는 배가 차지 않는다는 손님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면 대신 따끈한 밥과 국, 반찬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예상을 모조리 벗어나는 민들레국수집은 현재까지 21년째 숭고한 봉사 정신을 묵묵히 수행해오고 있다.


영남 씨가 민들레국수집을 차린 이유는 노숙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삶의 의지를 잃은 노숙인들 마음속의 괴로움을 해결해 줄 수는 없더라도, 따끈한 한 끼와 다정한 인사로 영남 씨가 항상 그들의 곁에 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영남 씨는 노숙인 손님들에게 관심 어린 질문를 건네곤 한다. “어제 얼마나 벌었어요?”, “OO 씨도 주방장 하셨는데. OO 씨는 주방장 몇 년 했어요?”와 같은 질문은 일상적인 인사말이지만 홀로 된 노숙인들이기에 더욱 소중한 관심이다. 이러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영남 씨와 손님들이 가까워지면, 그들은 더 이상 ‘노숙인 중 하나’가 아니게 된다. 대신 ‘7년간 주방장 일을 했고 밥그릇을 오른쪽에 놓는 왼손잡이’라는 특징을 지닌 하나의 인간으로 받아들여진다. 식사를 마치고 손님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면 영남 씨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 “내일 또 와야 해요”라며 배웅까지 한다. 내일의 만남을 기약하는 영남 씨의 인사는 노숙인 손님들이 존중받아야 마땅한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또 다른 내일을 살아가게 한다.


이렇듯 영남 씨는 노숙인 손님들의 굶주린 배를 채움과 동시에, 세상에 잊혀진 노숙인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며 그들의 내면까지 든든하게 채워준다. 그렇게 민들레국수집이 대접하는 노숙인들의 숫자는 무려 몇백 명에 달한다. 그렇기에 매달 적자를 거듭하는 민들레국수집이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영남 씨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도움을 준다며 생색을 내지 않는 것이다. 


영남 씨는 가난한 사람들만큼 체면을 차리는 사람이 없다며 작은 것을 내어주면서도 그 이상을 되돌려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정부의 지원이나 기부금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 공모는 일체 사절한다. 대신 민들레국수집은 선한 개인들의 후원에 의지하여 운영된다. 그리고 영남 씨는 귀중한 나눔에 감사하는 의미로 매월 민들레국수집 홈페이지에 후원자의 이름과 후원물품, 총 후원금액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받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 소중한 기부에 신뢰로 보답하는 마음, 그들의 귀중한 마음까지 모아 노숙인 손님들에게 정성껏 식사를 대접하려는 마음, 그리고 단지 식사를 대접하는 것에서 나아가 손님들의 내면에 귀 기울이려는 마음, 이 모든 것이 모여 민들레국수집의 매일을 연다.

 

그리고 마침내 노숙인들과 함께하려는 작은 마음이 모여서 의미 있는 결과를 꽃피우기도 한다. 식사를 하러 올 때마다 다정히 맞아주는 민들레국수집 식구들 덕분에 살아갈 희망을 얻은 노숙인 손님들이 자립을 꿈꾸게 된 것이다. 정성껏 대접한 식사는 마침내 한 사람의 재기까지 이루어낸다. 


그 누가 시간과 힘을 들여 이렇게 봉사를 실천할 수 있을까. 때로는 피곤함과 부담감에 괴롭기도 하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운영을 계속할 수 있을지 막막할 때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가끔씩은 자신의 노력과 헌신에 생색도 내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그렇지만 영남 씨는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꿋꿋하게 자신의 내면 속 믿음을 실천해 간다. 그릇된 의도 없이 노숙인 손님들에게 편안한 식사 한 끼 대접하겠다는 마음으로 애정을 담아 헌신한다면, 언젠가 그들의 내면에서도 삶에 대한 열정의 불씨가 타오를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한 끼 식사의 힘이 돌풍처럼, 또 민들레 홀씨처럼 일으킬 희망찬 미래를 믿으며 여전히 민들레국수집은 노숙인 손님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극장, 우리 모두의 이야기


 

지금껏 살펴본 두 에피소드는 우리 일상의 상처를 담고 있다. 서로 격려하는 부부의 대화 속에 숨겨진 생활의 고단함, 민들레국수집에 와야 식사 한 끼 대접받을 수 있을 정도로 좋지 못한 노숙인들에 대한 처우, 인간극장은 우리 사회의 결점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에 의미가 있다. 우리의 삶이 완벽하지 못하듯, 화면 속 그들의 삶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무형의 가치를 내면의 심지로 삼아 삶을 지탱해 나간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의 힘,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너그럽게 베풀 줄 아는 마음, 자기 주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순간 스치는 인연도 자기의 품으로 끌어들이는 사랑. 이러한 것들이 있기에 부족하고 아쉬운 우리네 삶이 고귀한 것이 되고 숭고한 것이 된다. 


한편으로 인간극장은 요즘 시대의 정서와는 조금 떨어진 프로그램이다. 오늘날은 결코 쟁취할 수 없는 완벽함을 정도(正道)로 여기고, 그것에 어긋난 것은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치부하는 모순적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극장은 시대의 흐름에도 굽히지 않고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우리의 것과 너무나 닮아있는 그들의 삶에 공감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일상의 상처가 떠오르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텔레비전 화면을 사이에 두고 보면 그들의 삶 속 아름다움이 보이듯, 우리의 삶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극장은 타인의 개인적인 삶을 조명하지만, 결국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그러한 기획 의도 속에서 인간극장 제작진들이 우리네 보통의 삶에 갖는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말한다. 때로는 어려움이 닥치고 못난 구석이 있는 우리네 삶이지만, 그 속의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비록 인간의 힘으로 삶을 완벽함의 영역까지 드높일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바른 것을 구하려는 인간의 삶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라고 말이다.


모두가 혼자 되는 세상에 인간 냄새 가득 풍기는 프로그램으로 사랑을 깨닫는다. 그것은 나의 내면을 압도하듯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빛나는 우리 모두에 대한 사랑이다. 큰 소동이나 드라마도 없이, 마치 어제가 오늘만 같은 인간극장 속 이웃들의 눈동자 속에서 빛나는 삶에 대한 열정을 바라보자. 그것이야말로, 미약하지만 분명 아름다울 우리네 삶을 사랑해가는 길일 것이다.

 

 

 

서지원.jpg

 

 

[서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10.0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