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월 1일이 싫은 사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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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입력 2023.12.3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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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난 어른이 되기 싫었다. 친구들이 독립이나 음주, 커피와 같은 어른만의 것들을 선망할 때도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다. 시원하다는 맥주의 거품 맛이 궁금하기는 했으나 나이를 먹으며 생길 책임감이 싫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게 좋았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던 첫날엔 두려움이 앞섰다. 동네 술집이 번화하던 그 시간에 홀로 복숭아 소주를 마시며 앞으로의 인생사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나의 스무 살은, 야무지게 불닭볶음면까지 안주로 먹었으면서 할 말은 아닌듯하지만, 괜스레 울적했던 기억이 있다.

 

뭘 해 먹고 사나. 그 생각은 그 뒤로도 아주 오랫동안 내 고민의 1순위였다. 작년 이맘때에는 친구를 데리고 사주까지 보러 갔었다. 선생님 저는 뭘 해야 할까요. 그러자 뭐라고 하셨더라.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 걸 보니 쓸데없는 말이나 들었던 것 같다. 덕분에 신년에는 사주팔자와 거리를 둔다.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고 세상은 어렵기만 한데 1월 1일은 온다.

 

 

 

떡국이 싫은 이유



젊음이 소모된다는 게 싫다. 아마 많은 사람이 새해를 싫어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된다. 그리고 1월 1일은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날인 것만 같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이렇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한계가 생기게 된다는 게 싫다. 발치에서 찰박이던 물이 점점 목전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처음엔 마음껏 걷고 뛸 수 있었는데 물이 점점 차오르는 바람에 걸음이 느려지는 것만 같다. 아직 수영을 다 배우지 못했는데도.

 

그리고 이런 조급함의 원천은 과거에 대한 미련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는 반성. 글을 조금 더 빨리 쓸 걸 그랬다는 후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점 도전이 무서워진다.

 

작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오늘이 제일 젊은 날


 

가만히 누워서 여느 때처럼 1월 1일을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1월 1일의 새벽이나 당장 오늘의 새벽이나 나는 노화하고 있다. 어차피 늙고 있는데 떡국을 먹는다고 해서 더 늙는 게 되나? 그리고 오늘은 남은 날 중에서 제일 젊다.

 

그렇다면 젊은 오늘에 뭘 해야 할까.

 

그날 2024년의 신년 계획을 짰다.


1월에는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할 거고, 2월에는 부산으로 여행을 갈 거다. 6월쯤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다. 글을 쓰기로 했다. 요즘 들어 변덕이 아주 심해져서 당장 내일 '그냥 회계를 배워서 취직할래' 할 수도 있지만 당장의 계획은 그렇다. 그렇게 12월이 되면 나는 얼마나 더 나아져 있을까? 그러고 보니 지금도 12월인데.

 

 

12월.jpg

 

 

작년의 12월을 생각해 봤다. 그때의 나는 확실히 더 어렸다. 더 감정적이었고, 더 혼란스러웠다. 그것도 많이 발전한 거였다. 스무 살이 되던 그날에는 처량맞게 캔소주를 기울이며 고뇌에 빠졌으니까. 하지만 올해에는 건강한 태도로 신년 계획을 짜고 내년을 기대한다. 이미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보다는 클로드 모네가 좋고, 햇볕이 내리쬐는 풀밭 위에서 진동하는 기타 소리가 좋다. 생각보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짧은 머리가 어울린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친구의 뜸한 연락에 울상 짓지도 않는다. 스무 살에 비하면 나는 이렇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하니 다가오는 2024년도 무섭지 않다. 내년에는 어떤 취향이 더 생길까. 얼마나 더 성숙해져 있을까. 그런 기대만 갖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오늘이 남은 날 중에 가장 어리기 때문에.

 

 

 

컬쳐리스트 이지연.jpg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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