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잉홈 프로젝트 - 음악이라는 집을 찾아서 [공연]

글 입력 2023.08.0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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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클래식은 듣는 장르인 동시에 보는 장르다. 사실상 후자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휘자의 손짓부터 독주자와 지휘자가 나누는 인사, 음악의 어떤 구간에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바이올린 연주자들, 심벌즈를 친 뒤 다시 조용히 내려 놓는 타악 연주자의 신중함. 이 모든 것은 클래식의 장르다.

 

만국 공통어인 음악과 움직임은 부러 집중을 요구하지 않지만 집중하게 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노력하게 한다. 사방이 음악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나는 어떠한 몸짓, 혹은 소리만으로 충분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배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클래식을 보러 가자고 말하는 일이다. “저에게 클래식 표가 하나 있는데, 함께 가실래요?”

 

좋아한다는 말을 말로 하지 않았지만 다 표현한 기분이라 괜히 마음이 움츠러들기도 한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클래식을 보러 가자고 더 귀엽게 말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라흐마니노프… 좋아하세요?”

 

모두 이렇게 묻도록 하자. 이렇게 묻기 위해 클래식을 보러 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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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홈 프로젝트 2023은 큰 주목을 받으며 시작했다. 1년 전 프로젝트 공연이 기획부터 연주까지 대단했을 뿐 아니라 고잉홈프로젝트의 의미에 관객들이 크게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주목 받은 것은 ‘봄의 제전’을 지휘자 없이 연주한 모험적 시도다.

 

이 공연을 위해 15개국 50개 악단 연주자들이 모였다. 한국인이지만 해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추진부터 어려웠다. 하지만 이들이 모인 것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한국이라는 고향일수도, 음악이라는 집일수도, 그것이 무엇이든 관객을 음악이라는 ‘집’으로 초대하는 여정임은 확실하다.

 

사실 한국은 클래식의 토양이 해외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한국에는 ‘클래식의 고향’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의미다. 고잉홈프로젝트의 행보는 한국에도 클래식의 토양을 다지는, 즉 집을 짓는 행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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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고잉홈프로젝트의 첫 공연인 8월 1일 ‘신세계’는 지난해 첫 공연 ‘봄의 제전’처럼 지휘자 없이 연주했다. 손열음이 협연하는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도 기대 되었으나 아쉽게도 첫 날 공연을 감상하지 못했다.

 

8월 2일에는 단원들이 솔리스트로 등장해 협연 무대를 펼쳤다. 호른, 바순, 플루트, 첼로의 솔로와 협연이 인상적이었을 거라 기대된다. 필자는 아쉽게도 둘째 날 공연 또한 감상하지 못했다.

 

8월 3일 공연이 바로 필자가 감상했던 공연으로 제목은 ‘심포닉 댄스’다. 1부에는 호주 작곡가 나이절 웨스트레이크의 오보에 협주곡 ‘스피릿 오브더 와일드’를 함경의 오보에 협연으로 감상했다. 본 연주는 한국 초연이었다고 한다. 2부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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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함경 연주자의 오보에 협주곡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오보에는 호른 다음으로 연주 난이도가 높고, 조율도 힘든 악기라고 한다. 이번 연주를 들으며 오보에의 음역대가 이렇게 넓구나, 감탄했다. 저음, 고음 모두 음역 난이도가 높은 악기라고 알고 있어 이렇게 제대로된 넓은 음역대의 오보에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금관, 목관 연주자들은 자리를 비우고, 현악, 타악기 연주자들과 지휘로 진행된 1부 공연은 섬세하고, 다채로웠다. 현대음악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클래식보다 의외의 흐름으로 진행되어 매력적이었다. 음악이 진행될수록 서사가 분명한 곡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관객이 집중도를 잃지 않도록 끌고 가는 힘이 대단했다. 오보이스트 함경의 탁월한 연주도 큰 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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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2부 라흐마니노프 ‘심포닉 댄스’ 또한 쉽게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연주였다. 심포닉 댄스는 라흐마니노프가 암으로 사망하기 전 마지막 작품이고, 작품성은 좋지만 인지도는 약한 작품이라고 한다.

 

1악장에서도 오보에의 솔로가 치고 나오는데 1부와 연결되는 느낌이라 재미 있었다. 이어서 색소폰이 솔로로 나왔는데 소리의 조합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2악장에서는 금관 팡파레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이어지는 현악의 왈츠 솔로도 아름다웠다. 전체적으로 신비로운 숲을 거니는 인상을 받았다. 3악장에서는 타악기의 힘이 대단했다.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터지는 느낌을 멋지게 표현했다.

 

연주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지휘자 발렌틴 우류핀이 서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를 말하고, 연주자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지휘자의 공간과 연주자의 공간이 합해지는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이후 발렌틴 우류핀은 클라리넷 연주를 시작하였고, 플루트와 현악이 소리를 더했다. 무대의 끝을 장식하기에 완벽한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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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오늘의 연주를 되짚으며 오케스트라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던 시기를 추억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초, 중, 고 내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속해 있었던 건 클래식이 아니라 클래식의 주변이 좋아서였다. 나는 점심 식사를 한 뒤 색소폰의 피스를 물기 위해 양치를 하고, 꼼꼼히 치실도 해야 했다. 악기 줄을 목에 걸고, 피스를 적시는 내 모습이 좋았다.

 

삼단으로 분리된 색소폰을 연결하고, 악기 줄에 연결하면 목에 묵직하게 전해지는 색소폰의 무게.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악기를 조율하고, 내가 소리를 내야 할 때까지 악보를 손으로 짚으며 기다리는 시간. 모두 다른 악기를 들고 서로의 음색에 집중하는 공간. 나는 그 모든 것이 꽤 좋아서 오케스트라를 계속했다.

 

그래서 언제나 클래식 근처에 있는 건 참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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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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