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채식주의 갈등 [음식]

채식주의에 관한 갈등의 본질
글 입력 2023.08.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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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시위를 한 환경운동가를 자신의 쇼에 초대한 모습

 

 

채식은 식물성 식품만을 먹는 생활양식을 말한다. 채식 관련 이슈가 최근 급부상하고 있지만 사실 채식은 환경과 종교 등의 이유로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 채식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채식주의자가 증가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과 대립이 발생하고 있다. 긴 역사가 있는 채식이 최근들어 화제가 될 뿐만 아니라 갈등을 만들어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의 채식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환경의 문제였다. 소나 돼지를 먹지 말라는 신의 말씀이나 낙농업, 축산업이 불리한 환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오늘날 이슈가 되는 채식은 ‘채식주의’를 의미한다. 채식주의와 채식은 다르다. 채식주의는 채식에 개인이 갖는 사상이나 신념을 더한 것이다. 이는 채식을 이데올로기적이고 주체적인 차원의 문제로 변화시켰다. 채식이 선택의 문제가 되고 신념의 문제가 되면서 갈등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생기고 있다.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사회적 이슈가 되는 쟁점은 크게 두 가지, 윤리적 이유와 환경적 이유이다. 윤리적 이유는 동물의 고통과 그것에서 비롯한 권리를 고려해 그들에게 도덕적인 대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가는 고기는 모두 잔혹한 환경에서 사육된다. 연간 수천억 마리의 동물이 오직 식량으로 소비되기 위해 태어나고, 사육되고, 도축된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생명체지만 생명체로서 대우받는 지점은 전혀 없으며 오직 사물로서만 대우받는다. 환경적인 이유는 낙농업과 축산업이 대량의 온실가스를 만들며 지구온난화를 가속하기 때문에 채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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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를 모욕하기 위해 빅맥을 먹는 모습

 

 

각 주장의 근거에 대한 타당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채식주의자(비건)와 비채식주의자(논비건)사이의 담론 진행 방식에 주목해야만 한다. 위 사진은 영국의 한 텔레비전 쇼 진행자가 비건을 초대해 빅맥을 먹는 모습이다. 진행자와 비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다가 그 누구의 말도 전달되지 않고 대화가 끝났다.

 

결국 진행자는 비건을 모욕하기 위해 방송도중 빅맥을 먹는다. 이뿐만 아니라 아나운서가 비건을 초대해 놓고 스테이크를 먹는다던가, 고기를 사와 길거리에서 시위하는 비건 앞에서 의도적으로 육식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모욕하는 영상을 온라인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논비건은 비건이 주장하는바 채식주의의 본질적 의미나 가치는 외면한 채 위선자라며 비난하거나 비아냥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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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온건하게 말해봤자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육식을 하는 가게에 들어가 영업을 방해하거나 논비건을 비난하고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곤 한다. 하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을 합리화하는 행동은 근시안적인 발상일 뿐이다.

 

최근 채식주의를 둘러싼 갈등을 주의 깊게 본다면 갈등의 본질이 동물권이나 환경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내용 자체는 동물의 도덕적 지위와 낙농업과 축산업의 환경적 영향을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저 감정적으로 싸우고 있다. 그들의 대화 너머에는 그 어떤 발전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사실 사람 간에 건강한 관계와 대화를 성립시키는 필수적인 요소는 단 하나, 존중이다. 상대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진심으로 대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과 같은 누구나 알고 뻔한 것 말이다. 모든 갈등의 본질은 이런 뻔한것들의 결핍이다. 다양화되는 갈등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뻔한 이야기밖에 없다는 게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본질이고 본질이 바뀌지 않으면 갈등은 반복된다. 동시대 한국 사회는 이러한 부분이 오히려 무너져 가고있다. 존중이 무너진 사회는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도 존중이 없는 사회의 구성원은 불행하기 때문이다. 존중은 의식적인 일임을 생각해야 한다. 웃음이나 슬픔과는 다르다. 우리는 존중을 행해야한다.

 
 
[김윤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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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공우석
    • 채식과 기후변화, 생태위기 등 환경과의 관계에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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