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순수하고 즐거운 상상의 세계 - 로렌 차일드: 요정처럼 생각하기

요정처럼 생각하기
글 입력 2023.12.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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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과 같은 세계적인 영문학부터 오늘날 조앤 K 롤링 작가의 <해리 포터>, BBC 드라마들까지. 내게 영국이란 흥미진진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빛나는 ‘이야기’의 나라이다. 그리고 이번엔 또 다른 즐거운 상상력으로 가득한 영국의 그림책 작가 로렌 차일드의 [로렌 차일드 : 요정처럼 생각하기] 전시를 관람하고 왔다.


로렌 차일드 Lauren Child는 영국을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어린 시절 동화책 코너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그린 작가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 역시 이번 전시에서 마주친 캐릭터들이 어딘지 친근하고 익숙했다.


그녀의 작품은 개성 있는 캐릭터와 콜라주 작업 등 다양한 표현 방식에 특징을 두고 있어 독자를 포함한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40여권 이상의 작품이 번역 및 출간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67년 영국 Wiltshire에서 태어나 자란 로렌 차일드는 런던 미술 학교를 마친 후 데미안 허스트의 어시스턴트부터 안감을 만드는 회사를 차리기까지 여러 일을 했다. 이후 그림책 작업을 시작하여 초기작인 ‘클라리스 빈’ 시리즈로 그리너웨이에 입상하고 스마티즈 북 동상을 수상하며 그림책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현란한 색감, 다양한 질감과 패턴들을 이용한 신선한 그림이 특징인 로렌 차일드의 작품은 아이의 시각에 상상력과 유머러스를 더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이끌어내며 고정관념을 허무는 오늘날 그림책의 특징을 보여준다. 더불어 누구에게나 있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과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하여 공감을 형성함으로서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Section 1. 로렌 차일드와 상상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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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차일드는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아이들의 자유로운 세계, 순수한 시각, 강한 호기심, 그리고 상상력을 유머러스한 이미지와 텍스트로 여과 없이 드러낸다.

 

아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표현하고자 캐릭터마다 다른 서체를 사용했고, 텍스트를 잘라 붙여 그림 주위를 떠다니는 그림의 일부가 되도록 만들었으며, 독자들에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색다른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재료들을 콜라주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로렌 차일드의 손길로 탄생한 첫 캐릭터인 클라리스 빈은 7살 어린 아이의 시점으로 가족을 소개하며 엉뚱하고 솔직한 생각과 말투를 보인다. 대표작인 <찰리와 롤라>에서 오빠인 찰리는 여동생 롤라의 상상력으로 비롯된 친구, 동물, 장소 등의 이미지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상상력을 동원하여 투정 부리는 여동생을 달래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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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차일드는 방 전체를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요소만을 보여주거나 추상적인 배경만을 넣음으로서 배경의 위치를 나타낸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그들의 집에서 발생하지만, 찰리와 롤라가 보고 있는 여러 장소들은 그들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렌 차일드는 찰리와 롤라의 모습을 통해 상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시각을 보여주고자 했다. 실제 세계와 상상 세계를 연결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배경화면이나 패턴이 찰리와 롤라가 상상하는 세계의 일부로 변하는 것이다. 찰리와 롤라는 함께 산맥을 오를 때나 바다 속 슈퍼마켓을 갈 때 항상 같은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곧 그들이 실제로 함께 있는 장소는 언제나 집이었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나 또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모험을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혼자서, 때론 꼭 끌어안은 인형이나 어린 동생과 함께 떠나곤 했던 그 모험의 세계는 때론 망망대해 위 바다가 되기도 했으며, 공주님이 사는 아름다운 성이 되기도 했다. 꿈 많고 재미있는 것 투성이였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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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친구 소렌 로렌슨이 있는걸’이라는 작품엔 롤라의 ‘상상친구’가 등장한다. 롤라는 걱정이 많을 때 상상친구를 만들어 말을 걸고, 이 상상친구는 롤라의 성격을 더 강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상상친구란 아이들의 상상력에서 태어난 가상 인물로, 남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내가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는 존재다.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아이들에게 있어 상상으로 그려낸 친구들은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줄 누군가가 항상 함께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은 동생이라는 존재에 대한 질투와 애정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엘모어, 어른들의 기대에 맞추어 ‘착한 아이’라는 틀에 갇혀버린 셔튼, 가족들을 사랑하는 똑똑한 천재 소년 허버트까지 이 섹션에는 다양하고 개성적인 어린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때론 엉뚱하고 불안정하기도 했던 어린 시절의 조각들을 찾아볼 수 있다.


 

 

Section 2. 고얀이와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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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생쥐 한 마리와 푸들 한 마리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요런 고얀 놈의 생쥐’는 다른 동물 친구들처럼 누군가의 애완동물이 되고 싶어 하며 이름을 갖고 싶어 한다. 반대로 트릭시라는 이름의 애완동물 푸들은 사람처럼 꾸며지는 것보다 강아지다운 삶을 원한다.


‘고얀 놈의 생쥐’는 눈이 좋지 않은 신사에게 ‘고얀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싫어하는 옷을 입으며 본래의 모습인 생쥐가 아닌 고양이의 삶을 살고 있음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애완동물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해한다. 반면 푸들 트릭시는 매일 사람처럼 옷을 입고 미용을 하는 애완견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다른 강아지들처럼 흙탕물을 뒹굴며 뛰어놀 수 있는 삶을 원한다.


로렌 차일드는 ‘고얀이’가 되어도 좋은 애완 생쥐와 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은 푸들의 상반된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고자 하는 아이의 모습을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누군가는 현실과 타협하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나’로서 살아가거나, 이를 거부하고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처럼 이 두 이야기 속 생쥐와 강아지는 서로 반대되는 삶을 원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누구도 볼 수 없는 내 안에 있는 나를 찾고 싶다는 소망을 은유하고 있다.


 

 

Section 3. 책 속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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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읽기를 좋아하는 허브는 동화책 속 캐릭터를 만나기도 하고, 책 속으로 들어가 그 세계를 직접 체험하기도 한다. 아이들읜 동화책의 이미지를 보며 이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으며 허브는 그러한 아이들을, 그리고 동화책의 공간을 구현한 전시장에 있는 관람객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한다.


늑대, 곰, 가족, 신데렐라와 계모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 속 캐릭터들을 만나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일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놀라운 일일 것이다. 허브는 책 한 페이지를 찢어서 다시 붙여 넣는 방식 등으로 기존 동화의 줄거리를 뒤튼다. 이는 동화를 여행하는 관람객들에게 기존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며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Section 4. 명작의 재탄생


 

<메리 포핀스>, <공주님과 완두콩>,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비밀의 정원> 등 널리 알려진 고전 명작이 로렌 차일드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로렌 차일드 고유의 그림체로 새롭게 재탄생한 삐삐는 자유분방하고 명랑한 아이들의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고전적인 주인공의 특성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인 메리는 고집이 세고 호기심이 많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격은 메리에게 버려진 정원을 찾아 나서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평소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왔던 로렌 차일드에게 있어 메리는 많은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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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차일드는 프란시스 호지슨 버넷의 책 <비밀의 화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삽화를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녀는 이 책의 내용이 그녀의 기존 작품보다 더 고풍스러워 보이는 이미지를 요구한다고 생각했기에, 이 작품에서의 삽화는 기존의 작품과는 매우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그렸다. 그럼에도 복잡한 층 구조를 만들어 정원 벽에 빽빽하게 자란 넝쿨들의 입체감이 돋보이는 고유의 콜라주 기법은 유지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섬세한 푸른 빛으로 가득한 <비밀의 화원> 작품들이 마음에 들었다. 푸릇하게 우거진 숲의 분위기 안에 모여앉은 아이들의 실루엣에선 이제 막 시작된 모험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쩐지 신비롭고 두근거리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Section 5. 요정처럼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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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처럼 생각하기'는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친절한 일을 베풀면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클라리스 빈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다.

 

로렌 차일드는 이웃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는 클라리스 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아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이웃들이 우리들의 행복한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가오는 연말과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섹션이었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트리를 꾸미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적힌 편지를 쓴 후 양말을 걸어놓고 잠들었던 순수했던 어린시절을 즐겁게 추억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즐거운 전시였다. 어린이 관객들에게도, 또 한때는 어린이였을 모든 어른들에게도 순수하고 즐거운 울림을 남기는 시간이었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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