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쩌면 평생 나에게 낯설 세상에서, 가장 보통의 나 자신 - 보통의 카스미 [영화]

가끔 세상이 너무나도 낯설고 사무치게 외로운 당신에
글 입력 2023.07.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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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보통의 카스미>라는 영화 자체에 엄청난 기대감이 있지는 않았다. 출연 배우 이토 마리카가 주연을 맡았던 <썸머 필름을 타고!>가 내 ‘인생 영화’ 중 하나이기에, ‘썸필타’에서의 좋은 연기를 또 보고 싶어서 본 영화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영관에 들어갔다.

 

상영관을 나서는 길의 발걸음이 상쾌했다. 기대 이상의 영화와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내 2022년 여름이 <썸머 필름을 타고!>였다면, 2023년의 여름은 <보통의 카스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격적인 감상에 앞서, 배우 이토 마리카의 탁월한 대본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나 ‘보통’의 퀴어 영화


 

한국의 그 어떤 마케터도 이렇게 홍보하지 않겠지만,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사실 한 가지. 이 영화는 퀴어 영화다. 그것도 잘 만든 무성애 영화다. <보통의 카스미>는 영화의 초반, ‘이거 이렇게 적나라해도 괜찮나?’라고 생각했을 만큼 사실적으로 무성애자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아마 괜찮을 것이다. <보통의 카스미>는,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무성애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내내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로 ‘사랑’이 모두에게 답일까?” 영화를 관람할 몇몇 관객에겐, 하다못해 적어도 주인공 카스미에겐 모두가 좇는 그 ‘사랑’이 허수다. 당연하게 기대되는 역할 수행이 누군가에겐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점차 많은 사람이 알아가고 있다. 슬프게도 아직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Love Wins”의 Love는 대부분 유성애자 퀴어의 사랑만을 뜻한다. 그래서일까, 상영 시간 내내 카스미는 온몸으로 ‘이런 사람도 있다’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가장 보통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카스미는 언제 어느 때에서나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보통의 사람이다. 재능의 한계에 부딪혀 꿈을 포기했고, 사람과 부드럽게 대화하는 게 서툴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는 아주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쉬쉬하는 직업을 가졌던 친구를 불쾌하지 않게 배려할 줄 알고, 우울증이 있는 아버지와 담담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숫기가 없지만 상냥한 현대인. 그는 흔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카스미는 배제당하는 기분을 느낀다. 계속해서 혼란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애’와 ‘결혼’에 대한 자신의 답은 긍정이 될 수 없는데, 모두가 긍정하는 명제를 혼자서 부정하기엔 세상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분명 퀴어 감수성이 기성세대보다 훨씬 민감할 동생조차 나를 잘못짚어 커밍아웃시킨다. 이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이렇게나 평범한 카스미인데도, 사람들은 카스미를 “모른다.”

 

바로 이 지점이 <보통의 카스미>를 잘 만든 영화로 이끈다. 카스미를 향한 사람들의 무지(無知)는 단순히 가시화가 덜 된 무성애자들만이 느끼는 감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의 중요한 무언가를 ‘모른다’라는 감각은 우리 세대의 많은 이들이, 사실은 그냥 보통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선득한 느낌으로 확장된다. 영문 모를 소리를 하던 카스미가 ‘보통의 카스미’가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보통의 카스미>는 아주 잠깐 엿본 삶만으로도 무성애자가 느끼는 외로움의 핵을 짚어내는, 이렇게나 ‘보통’인 퀴어 영화다.

  


 

매번 떨어져 나가는 나에게도 '우리'가 있어


 

어지럽게 또 평범하게 굴러가는 카스미의 일상을 함께하다 보면 영화의 끝이 찾아온다. 2시간 내내 무성애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외롭다. 아무도 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고, 나와 함께해줄 것 같지 않은 세상. 카스미의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카메라가 비추는 화면도, 내 감정도 같이 지직거린다.

 

그렇게 미묘하게 외로움에 젖은 영화의 끝자락, 새로운 직장 동료 덴도가 등장한다. 카스미에게 호감을 품은 듯한 덴도와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헤어질 때, 카스미는 여느 때처럼 ‘죄송한데, 제가 연애는 정말 곤란해서요,’라고 말한다. 또다시 ‘피곤한 카스미 씨의 일상’이 펼쳐지는 걸까, 머리를 부여잡던 순간 덴도는 “同じような人がいて、どっかで生きてるんならそれでいいやって思いました。(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고,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이 한마디에 전부 담겨 있었다.

 

영화가 덴도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연대하고 있었다. ‘혼자가 좋다’고 외치지만 이 세상 속의 외톨이로 살아가기는 너무나 외로운 우리에게,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너무나 장치적으로 등장하는 게이 친구도, 전 AV 배우 친구도, 한국과 질릴 듯이 똑같이 묘사되는 일본의 ‘성애 강요’ 문화도 전부 괜찮아졌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니! 나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영화가 있다니! 선물 같은 영화였고,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2시간이었다.

 

당신이 당연한 것들에 의문을 품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가끔 사무치도록 외롭다면, <보통의 카스미>가 당신에게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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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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