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권력을 가졌음에도 온전히 여성으로서 존재하지 못하다 -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글 입력 2023.07.2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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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하며,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래한 민속예술인 플라멩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극의 배경은 1930년대 초, 스페인 남부 안달라시아 지방의 한 마을로, 극은 베르나르다 알바의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가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안토니오의 상은 8년 상으로, 베르나르다 알바는 그 동안 집안의 모든 문을 닫으며, 그녀의 늙은 어머니, 다섯 딸과 식솔들에게 극도로 절제된 삶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극의 배경은 ‘집’이다. 대개 집이란 공간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휴식처로서 여겨지는 것과 달리 본 작품에서는 베르나르다 알바라는 독재정권 하에서 그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숨이 막히고, 자유가 억압당하는 공간이다. 이는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거주지인 집이 여성들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인권과 자유의 억압이 가장 기초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나타낸다.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1).jpg

 

 

이처럼 모든 것을 억압하는 공간 속, 여성들이 숨 쉴 틈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되어 관객 또한 불편함을 느끼고, 베르나르다 알바의 독재적인 행동에 저항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극에서 여성과 남성은 종마로 종종 비유되곤 하는데, 이 또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스스로 박탈하는 듯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중 베르나르다 알바를 극진히 모시던 폰시아가 그녀의 경멸에 분노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베르나르다 알바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으로 귀결되지 않고, 혼자서 감정의 응어리를 푸는 정도에서 그친다.

 

다섯 명의 딸 중에서는  오직 장녀인 앙구스티아스만이 페페와의 결혼을 통해 이 집을 벗어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막내 아델라와 넷째 마르띠리오 또한 페페를 좋아한다. 아델라와 페페는 양방향이었고, 마르띠리오는 절절한 짝사랑이었다. 이들에게 페페는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을 이 감옥에서 나가게 해줄 수 있는 ‘탈출구’이자 ‘희망’이었다. 그렇기에 아델라는 페페와의 밀회를 마르뜨리오에게 들킨 후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베르나르다 알바에게 이를 들켰을 때도 그녀는 숨기는 것이 아니라, 정면 돌파한다. 하지만, 결국 페페가 죽었다는 오해를 하여 아델라는 자살한다. 이 와중에도 베르나르다 알바는 자기 딸은 ‘처녀’로 죽은 것이며, 그렇게 보이도록 치장하라고 말한다.

 

극 내내 여자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처녀성’임이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그리고 처녀성을 잃은 여자는 사법 체제가 아닌, 관습 속에서 사람들의 손에 의해 잔인하게, 짐승처럼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남들의 시선을 극도로 신경 쓰며, 이것을 딸들에게도 강요한다. 남편이 죽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군림하여 남성의 권력을 손에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습적으로 자신에게 내재한 ‘사회적으로 강요된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를 자신의 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강요하고, 이어 나가게 하는 자세를 보인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태도는 마치 우리 사회의 남존여비 사상의 대물림을 떠올리게 한다. “저 사람도 여자이면서, 여자인 나에게 왜 이리 가혹하게 굴까?”. 이 말은 사회 속에서 같은 성(gender)을 가진 여성들이 서로서로 견제하고, 옭아맬 때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즉, 베르나르다의 집에서 벌어졌던 일은 먼 옛날, 낯선 땅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국에서도 최근까지 벌어졌던 혹은 벌어지고 있는 일인 것이다.

 

숨 막히는 공간이 극 전반의 배경이 되는 만큼,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구분이 무색하게 100분의 공연 시간 동안 노래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20곡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넘버가 대개 아주 짧고 다른 뮤지컬과 달리 감정을 고조시키거나 감정의 해소를 가져오지 않는다. 각 넘버는 즉각적으로 특정 시점의 상황을 설명하거나, 그 순간 각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만을 간단하게 표현할 뿐이다. 전반적으로 음악은 스페인의 음악적 색채를 띠고 있으나, 멜로디를 굉장히 날카롭게 끝맺음 함으로써 즐거운 느낌이 아닌 불안하고 억압적인 느낌을 형성한다. 더불어 일정한 박자에 맞춰 계속해서 치는 박수는 모든 것이 통제되는 군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2).jpg

 

 

의상 또한 손과 얼굴을 제외하고 모두 검은 천으로 뒤덮인 옷을 입음으로써 억압당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치마를 들추는 플라멩코를 출 때는 여성의 신체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를 통해 억압 속에서 직접적으로 저항하지는 못하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유를 갈망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이처럼 본 작품은 비합리적인 여성의 삶을 그림으로써 여성을 여자답게 하는 ‘여성성’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을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동시에,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스페인의 시대상이 본 작품에 녹아있음을 시사한다. 당대 스페인에서는 큰 내전이 발생했다. 마누엘 아샤나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랑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있었던 내전이다. 이 전쟁은 계급 갈등, 종교 갈등, 정치 갈등 등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하였으며, 결론적으로 독재정권은 타도되지 못했다.

 

극에서 독재자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희생당하는 모습이 한 가정의 모습으로 비유되어 나타나고 있다. 자유를 갈망했던 아델라의 죽음 또한, 유의미한 촉발제가 되지 못하면서 그 죽음이 의미 없는 것이 되는 동시에 사회적 관습 속에 강제적으로 편입된다는 점 또한 당대 스페인 사회의 희망 없음을 보여준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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