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흑을 이기는 백 - 베르나르다 알바

자유를 노래하고 춤추다
글 입력 2023.07.2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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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1).jpg

 

 

공연장이 암전되고 무대 위로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같은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고, 다섯 명의 딸들은 디자인까지 같은 의상을 입고 무대로 나온다.

 

어딘가 정렬되고 격이 맞춰진 듯, 그들은 대칭적인 구조로 무대 중앙으로 나와 의자 앞에 조용히 앉아 신발을 신는다. 그 후 공연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발, 박수 소리는 한 치 오차도 없이 리듬감 있게 딱딱 들어맞는다. 모든 게 규칙적이다. 의상, 무대 구성, 안무까지.

 

그런 오감에 익숙해질 무렵, 어디선가 엇박자로 박수 소리가 들린다. 베르나르다 알바 공연의 흐름은 그렇다.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의 약혼자 뻬뻬를 중심으로 다섯 딸들의 감정의 실타래가 엉킨다. 이는 결국 자신들을 억압하는 베르나르다 알바와 배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 욕구로 귀결되어 풀린다.

 

극이 정점으로 치닫을수록 그런 욕구를 갈망하며 엇박자에 발을 구르는 딸들의 모습은, 불편하면서도 도드라지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런 매력과 더불어 주술적인 색채가 강한 넘버, 배우들의 연기와 이야기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공연은 후반부로 달려가고 있다.


그중 마르띠리오는 내외적인 결함으로 자신감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후에 언니의 약혼자 사진을 훔쳤다가 발각되는데, 이때 마음속에 억압된 자유를 표출한다. 마르띠리오뿐만 아니라 베르나르다 알바의 다른 딸들도 마찬가지로 온몸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에너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또 배우들의 성량과 이야기의 상황이 어우러져 감정이 극에 달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막내딸, 아델라의 독무와 그를 이루던 무대 구성이다. 아델라는 다른 딸들에 비해 저항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의 소유자다. 자신과 네 명의 언니를 통제하려는 엄마, 베르나르다 알바에 자유롭게 저항하는 힘을 가졌다. 온통 검은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빛나는 흰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데, 곧이어 조명이 그녀를 비추자, 격정적인 플라멩코 독무를 이어간다.

 

몸의 모든 면이 바닥에 맞닿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춤을 추는데, 그런 모습을 떠올릴 때면 매번 찌릿한 전율이 뇌에 닿는다. 그러면서 난 이제껏 무엇에 그런 열정을 뿜어본 적이 있는가? 질문을 해본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현대사회의 일상에 몸을 욱여넣어 순응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반추하게 된다.

 

그런 필자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서의 모든 노래와 춤은 억압된 욕구를 뿜어낸다. 성공, 실패와 관련없이 말이다. 그리고 엇박자, 유난히 밝은 옷 등의 시청각을 함께 자극하며 “튀어 오른다"는 점에서 아름답다. 인물들이 입은 옷은 흑과 백으로써 명백한 대비를 이루고, 억압과 자유의 대비를 이룬다. 마르띠리오와 아델라를 포함한 베르나르다 알바의 딸들은 당시 상황에서 용감한 선택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자유를 찾아 떠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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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델라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남은 네 명의 딸은 절규한다. 그런데도 베르나르다 알바는 독백으로 다시 남은 딸들을 통제하며 극은 마무리된다.

 

모두 같은 검은색 색의 옷을 입었을 때, 홀로 다른 흰색의 옷을 입는 것.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알고 날아오르려는 아델라의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이러니하면서도 대단해 보인다.

 

행복하지 않은 결말로 그녀의 인생과 공연은 암전되며 끝난다. 그때 어디선가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백색의 나비를 본다.

 

분명히 이 세계 너머의 어딘가에서 어둠을 밝히고 있으리라 믿으며 알지 못하는 그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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