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국 모든 생명은 닮아있다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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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물고기가 산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엔 어항이 있었다. 아빠가 말해주길 새로 오픈한 가게에서 우연찮게 물고기들을 받아왔다고 했다. 그렇게 물고기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 나는 물고기와 함께 쭉 자라왔다. 어릴 적엔 물고기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강아지처럼 소통도 되지 않고, 만질 수도 없으며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 물고기들은 시시했다.
그러던 중 재작년 코로나로 집에 오래 머물게 되면서, 관심이 사그라든 어항이 눈에 들어왔다. 키우던 물고기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항엔 몇 마리 새우만 살고 있었다. 가족들은 우리 집에서 같이 살 물고기를 찾으러 수족관에 놀러 갔다.
수족관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왔던 주황빛의 건강하고 우아해 보이는 물고기들. 구피와 닮아 보이는 이 물고기는 미키마우스 플래티였다. 몸통과 꼬리 부분의 모양이 미키마우스와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게 사이좋게 살도록 암컷 4마리와 수컷 2마리를 분양받아 왔다. 2자 어항에 6마리의 물고기만 살면 큰 어항이 비어 보일 것 같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네온과 코리들도 함께 데려왔다.
그렇게 우리 집 어항은 플래티 가족과 네온들, 어항에 살아있던 관상용 새우들과 하스타투스 코리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우리 아빠는 물고기만큼 식물에도 관심이 많으시다. 그 탓인지 어항 속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식물들이 있다. 키 큰 풀들과 이끼들이 빼곡히 자리 잡았다. 이러한 식물들이 풍부한 어항은 물고기 살기에 좋은 환경이 되었다. 물고기들이 숨을 공간이 만들어지며, 물고기도 편하고 사람도 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환경 덕분일까. 번식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플래티의 새끼들까지 어느 순간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어미 몸속에서 부화된 새끼들은 생존을 위해 바로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겨야 한다고 한다. 어항 속 우거진 풀들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쪼끄만 물고기들이 자라고 번식하고 또 태어나고를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2년이 지난 지금, 플래티 6마리였던 어항은 50마리는 족히 넘는 대가족이 사는 시끌벅적한 어항으로 바뀌었다.
어린 물고기들은 보기만 해도 귀엽고 기분이 좋아진다. 저 조그만 몸과 지느러미로 이곳저곳을 잘도 헤엄치고 먹이도 잘 찾아 먹는다. 아직은 작고 어려 풀숲 사이에 숨어서 소심하게 왔다 갔다 거리지만 가끔 같은 크기의 친구들를 만나 당당해지면 함께 수초 밖으로 나와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 모습이 귀엽지 않을 수 없다.
아기물고기뿐만 아니라 플래티는 성체도 통통한 외형이 무척이나 귀엽게 생겼다. 배가 빵빵해진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 어항을 쳐다보고 있으면 평화 그 자체다. 그들을 쳐다보고 있다 보면 플래티들의 삶을 깊이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밥은 어떻게 먹는지, 친구 물고기들이랑은 어떻게 지내는지, 잠은 어떻게 자는지 보면서 그들의 삶을 알게되면 물고기를 키우는 게 더욱 재미있어진다.
요즘은 특히 어항을 돌보는 재미가 있다. 플래티들은 무척이나 먹이 반응이 좋아서 사람이 어항 앞으로 오면 늘 그 앞으로 몰려든다. 사람이 오면 먹이를 준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사람 형체가 먹이라 착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항에 손가락만 갖다 대도, 플래티들은 와다다다 헤엄쳐온다.
그렇게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슬픈 순간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젊음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물고기를 통해서 본 순간이다. 우리 집에 처음 왔던 대장 플래티. 그 친구는 배가 제일 통통하고 몸집도 제일 커서, 무리를 앞장서서 당당히 돌아다니던 암컷 플래티였다. 그 친구는 요즘따라 다른 물고기에 치여 먹이도 잘 먹지 못하도 느려져서 선두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주위 어린 친구들과 외형이 많이 달라져있다. 허리도 굽고 비늘도 오돌토돌 몇 군데가 떨어져 나갔고 눈도 까만색이 아닌 탁한 색으로 희미해졌다. 물고기에게도 노화가 온 것이다.
마치 인간과 닮아있었다. 나이 든 플래티를 보니 늙고 병들어 피부에 주름이 생기고 행동이 느려지고 허리가 안 좋아지는 노년기에 접어든 인간이 생각났다. 물고기에서 이 늙음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서글퍼졌다. 우리 어항에서 생을 마쳤던 물고기들은 행복했을까.
이 어항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또 사라져갔을까. 생명의 순환이 느껴졌다. 물고기를 키우며 삶의 유한함을 되새겼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삶을 조금 더 행복한 기억으로, 좋은 추억으로 쌓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 어항에서 살다 갈 물고기들이 조금 더 행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먹이를 주었다. 물고기들에겐 행복이 먹이와 편한 환경이듯, 인간에게도 행복이 되는 각자의 그 무언가를 찾아 매일을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이소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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